시지프는 왜 내려가는 길에서 행복했을까?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가 지친 우리에게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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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살았는데도 하루가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은 날이 있다. 시지프가 밀어 올린 바위가 다시 굴러떨어지듯, 우리도 내일이면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 그런데 알베르 카뮈는 그중에서도 시지프가 빈손으로 산을 내려오는 순간에 주목했다.


그 짧은 하산길에는 바위를 밀어 올릴 때와는 다른 시간이 흐른다.


바위가 다시 굴러떨어진다면

그리스 신화 속 시지프는 신들에게 형벌을 받았다.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는 일이었다. 온몸의 힘을 다해 정상에 도착하면 바위는 어김없이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시지프는 산을 내려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에게는 끝이 허락되지 않았다.


우리가 하는 일에는 대개 목적이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오늘의 고생이 내일의 성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품는다.


오랫동안 준비한 사업이 실패하기도 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이 뜻밖의 불행을 겪기도 한다. 누군가는 온 힘을 다해 달렸지만 출발선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지 못한다.


노력과 결과 사이에 반드시 공정한 관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는 이러한 인간의 처지에서 '부조리'를 발견했다.


부조리란 삶에서 의미와 질서를 찾으려는 인간의 갈망과, 그에 대한 답을 보장하지 않는 세계 사이의 충돌이다.


우리는 세상이 합리적으로 움직이기를 바라지만, 세계는 인간의 기대에 맞춰 답해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삶에 확실한 의미도, 노력에 대한 보상도 보장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까?


카뮈가 주목한 내려가는 시간

시지프가 바위를 밀어 올리는 동안에는 쉴 틈이 없다.


두 손으로 바위를 붙잡고 어깨를 기댄 채 온몸의 무게로 밀어야 한다. 힘을 늦추면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갈 것이다.


그러나 정상에 도착한 뒤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바위는 굴러떨어졌고, 시지프는 빈손으로 산을 내려간다.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이 내려오는 순간을 특별하게 다룬다. 시지프가 자신의 운명을 의식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바위를 밀어 올릴 때 시지프는 형벌에 매달려 있다. 그러나 산을 내려오는 동안에는 잠시 그 무게에서 벗어난다.


산 아래에는 여전히 밀어야 할 바위가 기다리고 있다.

시지프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카뮈에게 이 시간은 단순히 평온한 휴식이 아니다. 자신의 비극을 분명히 깨닫는 의식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가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내려오는 길 역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자신의 운명을 똑바로 아는 순간, 시지프는 그 운명에 맞설 수 있게 된다.


신들은 시지프에게 끝없는 노동을 강요했다. 그가 어떤 형벌을 받을지는 신들이 결정했다. 그러나 시지프가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까지 완전히 지배할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알고 있다. 바위가 다시 굴러떨어질 것이라는 사실도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자신의 존재 전체를 형벌의 의미에 내맡기지는 않는다.


그에게 남은 자유는 작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나는 이 내려가는 시간에서 또 하나의 의미를 발견한다.


쉼이다.


산을 오를 때 그는 온 힘을 다해 바위와 싸운다. 내려갈 때는 잠시 그 바위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과 마주한다.


시지프의 삶은 바위를 밀어 올리는 순간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산을 내려가는 동안에도 계속된다.


<이방인>의 뫼르소가 거부한 것

카뮈의 또 다른 대표작 <이방인>에도 부조리한 세계를 마주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주인공 뫼르소다.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슬롯가 기대하는 슬픔을 표현하지 않는다. 이후 한 사람을 총으로 쏴 죽이고 재판에 서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기묘한 장면이 펼쳐진다.


재판에서는 살인이라는 행위뿐 아니라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그의 인간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물론 뫼르소의 태도가 그의 살인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그의 행위와 바카라임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그러나 소설은 그 너머의 질문도 던진다.


우리는 타인의 삶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이 실제로 한 행동과 우리가 기대하는 인간의 모습을 얼마나 구별하고 있을까?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뫼르소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현실을 마주한다.


그는 자신이 믿지 않는 구원의 약속으로 현실을 덮으려 하지 않는다. 피할 수 없는 죽음과 세계의 무관심을 직시한다.


뫼르소는 죽음 앞에서, 시지프는 산을 내려오는 길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의식한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얻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외면하거나, 세계가 자신에게 반드시 의미 있는 결말을 제공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하루에도 끊임없이 성과를 요구한다.


우리는 언제부터 쉬는 시간에도 성공해야 했을까?

하루가 끝나면 우리는 오늘 무엇을 이루었는지부터 헤아린다. 끝낸 일과 번 돈을 세고, 목표까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따져본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날에는 괜히 마음이 무거워진다.


분명 하루 종일 애썼는데 남은 것이 없는 것 같다. 어제와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들면 자신이 제대로 살고 있는지조차 의심하게 된다.


우리는 그렇게 삶의 가치를 결과로 평가하는 데 익숙해졌다.


바위가 다시 굴러떨어져도 시지프가 산을 올랐던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세상은 좀처럼 산을 내려오는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는 기록되지만, 아직 바위를 밀고 있는 사람의 하루는 쉽게 잊힌다. 그런 사람에게는 조금만 더 노력하라거나 포기하지 말라는 격려가 돌아온다.


그 말이 힘이 되는 날도 있다. 그러나 어떤 날에는 다시 밀어야 할 바위 하나를 더 얹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쉬는 시간조차 마찬가지다.


우리는 잘 쉬어야 내일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다고 말한다. 휴식을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재충전으로 생각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낭비처럼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휴식이 반드시 다음 성과로 이어져야만 가치 있는 것일까?


산을 내려가는 시지프를 다시 떠올린다.


그는 바위를 밀지 않는다. 잠시나마 두 손이 자유롭다.


그 시간에 무엇을 이루어야 할 이유도 없다.

내일 다시 바위를 밀어야 하더라도 오늘만큼은 두 손을 쉴 수 있다.


그럼에도 다시 바위 앞에 선다면

하룻밤 쉬고 나면 어제의 문제가 다시 기다리고 있다. 감당해야 할 바카라임도 여전하다.


하지만 다시 바위 앞에 섰을 때 달라질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그 바위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다.


어제는 어쩔 수 없이 밀었다면, 오늘은 자신의 의지로 밀어볼 수 있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바위라면 잠시 내려놓거나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다.


우리는 신화 속 시지프와 다르다. 모든 바위를 영원히 밀어야 하는 형벌을 받은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은 존재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카라임지는 일도 그렇다.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서 우리는 불확실한 내일을 견뎌야 한다.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일만큼 어려운 것은 그 바위가 다시 굴러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카뮈는 <시지프 신화>의 마지막에서 우리에게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고 말한다.


형벌은 끝나지 않았고, 신들이 그를 용서하리라는 기약도 없었다.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 운명에 대한 의식과 반항을 잃지 않는다.


우리는 행복을 미래의 어느 지점에 놓아두는 데 익숙하다.


돈을 충분히 벌면, 원하는 것을 이루면,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면 그때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날이 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평생 행복을 기다리기만 해야 할까?


나는 내 행복을 바위가 정상에 머무는 날까지 미뤄두고 싶지 않다.


나는 이 투쟁 속에서 존재할 것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자신의 바위를 밀어 올렸을 것이다.


누군가는 산꼭대기 가까이 도착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몇 걸음 나아가지 못한 채 주저앉았을 것이다.

내일이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늘은 잠시 산을 내려와도 좋겠다.


오늘은 산을 내려와 숨을 고른다.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동안만큼은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생각도 내려놓는다.


그리고 다시 바위 앞에 섰을 때, 그것을 밀어 올리는 일이 여전히 자신이 원하는 삶이라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


바위가 다시 굴러떨어지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늘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는 내가 결정하고 싶다.


나 뫼르소처럼, 나 시지프처럼, 내 의지로 오늘 이 바위를 힘차게 밀어 올려주겠다.

그리고 나는 이 투쟁 속에서 존재할 것이다.



세상은 복잡하지만, 핵심은 단순합니다.
저는 당신에게 정보가 아닌 ‘프레임’을 건넵니다.
- 범뷰(BeomVie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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