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본 행동과 그 사람의 사정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민수는 그 남자를 가끔 마주쳤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었다.
전동휠체어를 탔고, 혼자서는 공동현관의 무거운 문을 여는 일이 쉽지 않아 보였다.
처음에는 별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 민수가 현관으로 나가려는데 남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말은 없었다. 그저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민수는 자연스럽게 다가가 문을 열었다.
남자의 전동휠체어가 낮은 모터음을 내며 문턱을 지나갔다.
그게 전부였다.
고맙다는 말도 없었고, 눈이 마주치지도 않았다.
남자는 앞만 본 채 그대로 멀어졌다.
민수는 잠깐 열린 문을 붙잡고 서 있었다.
이상했다.
감사 인사를 받으려고 문을 열어준 것은 아니었다.
어려워 보였으니 도왔을 뿐이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걸렸다.
‘원래 이런 건가.’
잠시 그렇게 생각하고는 잊었다.
며칠 뒤였다.
민수는 이어폰을 끼고 휴대폰을 보며 공동현관 쪽으로 걷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큰소리가 들렸다.
“어!”
민수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
문 앞에 그 남자가 있었다.
전동휠체어에 앉은 채 민수를 보고 있었다.
무슨 뜻인지 설명은 필요 없었다.
민수는 이어폰 한쪽을 빼고 문으로 다가갔다.
버튼을 누르고 문을 잡았다.
남자는 다시 그 문을 지나갔다.
이번에도 아무 말이 없었다.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민수는 닫히는 문을 바라보다가 순간적으로 얼굴이 굳었다.
‘내가 문지기인가.’
아까보다 훨씬 화가 났다.
따라가서 한마디 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도움을 받고 싶다면 부탁을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적어도 고맙다는 표시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이렇게 당연하게 받아도 되는 건가.
민수는 몇 걸음쯤 그 남자의 뒤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냥 돌아섰다.
하지만 집에 도착해서도 기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신발을 벗으면서도 생각났고, 물을 마시면서도 생각났다.
아까 그 짧은 '어!'소리가 계속 귀에 남았다.
그때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저 사람은 말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인가?’
민수의 손이 잠시 멈췄다.
생각해보니 그는 그 남자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것.
전동휠체어를 탄다는 것.
혼자 문을 열기 어려워 보인다는 것.
그게 전부였다.
민수는 그동안 눈에 보이는 장애 하나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의 어려움이 언제나 눈에 보이는 모습 하나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말을 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었다.
소리를 듣는 데 문제가 있을 수도 있었다.
다른 사람과 자연스럽게 눈을 맞추거나 슬롯적인 신호를 주고받는 일이 어려울 수도 있었다.
아까 자신을 부른 그 큰소리도 다시 생각났다.
“어!”
민수에게는 무례한 호출처럼 들렸다.
하지만 어쩌면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가장 익숙한 의사 표현일 수도 있었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그냥 무뚝뚝한 사람일 수도 있고, 정말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 가능성도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민수는 그제야 한 가지를 깨달았다.
자신이 화가 났다는 사실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기분 나빴다.’
이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저 사람은 장애를 특권처럼 생각한다.’
그건 사실이 아니라 민수의 해석이었다.
두 문장은 얼핏 비슷해 보였지만 전혀 달랐다.
우리는 이상할 만큼 빠르게 그 사이를 건너간다.
누군가 인사를 받지 않으면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하고,
답장이 늦으면 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줬는데 아무 말 없이 나가면 예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회의에서 말이 없으면 관심이 없다고 판단한다.
우리가 보는 것은 언제나 짧은 장면인데,
우리가 내리는 결론은 자주 한 사람 전체를 향한다.
민수는 소파에 앉아 한동안 그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행동을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 자신에게 큰소리를 내서 불쾌했다면 불쾌하다고 느껴도 된다.
다음에 같은 일이 생긴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해주세요. 갑자기 큰소리를 내시면 제가 놀랍니다.”
그것은 차가운 말도 아니고, 배려가 없는 말도 아니다.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도 경계는 있다.
배려란 누군가의 요구를 무조건 받아주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날 이후 민수의 생각에는 작은 문 하나가 생겼다.
사람을 판단하기 직전에 한 번쯤 열어보는 문이었다.
‘혹시 내가 모르는 게 있는 건 아닐까.’
그 한 문장이었다.
며칠 뒤 민수는 다시 그 남자를 보았다.
이번에도 공동현관 근처였다.
남자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전동휠체어를 움직이고 있었다.
민수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먼저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었다.
남자는 천천히 다가왔다.
여전히 말은 없었다.
그리고 그대로 문을 지나갔다.
예전과 똑같은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민수의 마음은 전과 같지 않았다.
그가 친절해진 것도 아니었다.
남자를 완전히 이해하게 된 것도 아니었다.
단지 한 가지를 알게 되었을 뿐이었다.
사람의 행동은 보이지만, 그 행동의 사정까지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수없이 만나게 된다.
그때마다 모든 사람을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싫으면 거리를 둘 수도 있고, 불편하면 말할 수도 있다.
다만 한 사람을 너무 빨리 완성해버리지만 않으면 된다.
무례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
이상한 사람.
그렇게 마침표를 찍기 전에 아주 작은 쉼표 하나를 남겨두는 것.
어쩌면 우리가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조용한 배려는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본 것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