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40년 저금리 시대를 끝낼까

버냉키의 자연이자율로 읽는 AI 시대의 돈값

byBeomView

1980년대 이후 세계의 금리는 긴 흐름에서 내려왔다.

벤 버냉키는 그 배경 가운데 하나로 느려진 경제성장과 자연이자율의 하락을 설명한다.

그런데 AI가 생산성을 다시 끌어올린다면, 지난 40년 동안 우리가 익숙해진 저금리의 공식도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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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0년 동안 ‘돈의 가격’이 떨어졌다

1980년대 초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한때 15%를 넘었다.

지금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 숫자다.

돈을 빌리려면 그만큼 비싼 비용을 치러야 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후 장기금리는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도 큰 흐름에서는 계속 낮아졌다.

금리는 쉽게 말하면 돈을 빌리는 가격이다.


그렇다면 왜 지난 수십 년 동안 돈의 가격은 이렇게 내려왔을까.

벤 버냉키는 '21세기 통화정바카라' 에서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개념 하나를 설명한다.


바로 자연이자율이다.


자연이자율은 중앙은행이 정하지 않는다

자연이자율이라는 말을 처음 들으면 중앙은행이 정하는 금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나 한국은행이 회의를 열어 '올해 자연이자율은 2%로 합시다'라고 결정하는 숫자가 아니다.


자연이자율은 경제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균형 수준의 실질금리다.


경제가 너무 뜨거워 물가가 계속 오르지도 않고, 반대로 너무 차가워 기업들이 투자를 멈추지도 않는 상태를 생각해보자.

경제가 적당한 속도로 성장하고 물가도 안정될 때 형성되는 금리를 자연이자율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문제는 이 숫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앙은행과 경제학자들은 성장률과 물가, 고용, 저축과 투자 같은 여러 지표를 살펴보며 자연이자율이 어느 정도인지 추정한다.


자연이자율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찾아내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금리가 왜 중요할까

이 개념이 중요한 이유는 중앙은행의 기준금리를 판단하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 금리가 자연이자율보다 지나치게 낮으면 돈을 빌리기 쉬워진다.

기업은 투자를 늘리고 사람들은 소비를 늘린다.

경제가 너무 뜨거워지면 물가가 빠르게 오를 수 있다.


반대로 실제 금리가 자연이자율보다 너무 높으면 돈을 빌리는 부담이 커진다.

기업은 투자를 줄이고 사람들은 소비를 미룬다.

경제는 식기 시작한다.


그래서 중앙은행은 자연이자율이 어디에 있는지를 계속 추정하면서 금리를 그 위나 아래에 놓는다.

경기가 너무 뜨거우면 금리를 높이고, 너무 차가우면 낮추는 것이다.


결국 자연이자율은 대출과 투자, 주식과 부동산 가격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제의 기준점이다.


AI 시대의 금리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를 알려면 다음 기준금리 인하 시점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아래에 있는 자연이자율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봐야 한다.


왜 자연이자율은 오랫동안 내려갔을까

버냉키가 주목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경제성장 속도의 둔화다.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시대를 생각해보자.

기업들은 새로운 공장을 짓고 사람을 더 뽑는다.

새로운 시장이 생기니 사업을 시작할 기회도 많다.

자연히 돈을 빌리고 싶어 하는 기업도 많아진다.

돈을 원하는 사람이 많으면 돈의 가격인 금리는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성장이 느려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새 공장을 지을 이유가 줄고 새로운 사업에 투자할 기회도 감소한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돈이 줄어들면서 자연이자율을 낮추는 힘이 생긴다.


돈은 많아졌는데 투자할 곳은 부족했다

여기에 또 하나의 변화가 더해졌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에는 투자할 돈이 크게 늘었다.


선진국에서는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노후를 위해 돈을 모으는 사람이 많아졌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제조업과 수출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축적했다.


문제는 돈이 늘어난 만큼 좋은 투자처가 함께 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빌려주고 싶은 돈은 많아졌는데 빌려가려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부족해졌다.


돈도 다른 상품처럼 수요와 공급의 영향을 받는다.

공급이 넘치는데 찾는 사람이 적으면 가격이 내려간다.


돈의 가격인 금리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돈이 귀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돈보다 좋은 투자처가 귀한 시대가 된 것이다.


중국은 저금리 흐름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중국이라는 거대한 변화가 더해졌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떠오르면서 엄청난 양의 상품이 낮은 가격으로 세계시장에 공급되기 시작했다.

옷과 가전제품, 생활용품처럼 사람들이 자주 구입하는 상품을 이전보다 훨씬 싸게 만들 수 있게 됐다.

상품이 넘쳐나면 가격이 빠르게 오르기 어려워진다.


중국의 거대한 생산능력이 세계의 물가 상승 압력을 낮추는 방향으로 작용한 것이다.


중국의 영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달러의 일부는 미국 국채를 비롯한 금융자산으로 다시 흘러갔다.

중국은 한쪽에서는 세계에 싼 물건을 공급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세계 금융시장에 많은 자금을 공급했다.


다만 지난 40년의 금리 하락을 중국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미국의 장기금리는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 잡기 전부터 내려가기 시작했다.


중국과 세계화는 이미 시작된 저금리 흐름을 더 강하게 만든 힘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런데 이 세계에 AI가 등장했다

여기서 이야기가 흥미로워진다.

버냉키가 설명했던 자연이자율 하락의 중요한 배경 가운데 하나는 느려진 경제성장과 생산성이었다.


그런데 지금 AI가 등장하고 있다.

만약 AI가 문서를 조금 빨리 쓰고 검색을 편하게 해주는 도구에 그친다면 경제 전체의 방향을 바꾸기는 어렵다.


하지만 AI가 사람 한 명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생산량을 크게 늘린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같은 사람이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다.

기업은 같은 비용으로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새로운 사업과 시장도 생긴다.

이것이 바로 생산성 향상이다.


생산성이 높아지면 경제가 더 빠르게 성장할 가능성도 커진다.

그리고 성장은 다시 투자를 부른다.


AI는 화면 속에서만 움직이지 않는다

AI는 소프트웨어지만 AI 산업을 키우려면 현실 세계에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다.

고성능 반도체가 필요하고 수많은 서버를 설치할 데이터센터도 지어야 한다.

데이터센터가 늘어나면 전력도 더 많이 필요하다.

발전시설과 송전망에 대한 투자도 함께 커진다.


AI가 로봇과 자율주행, 공장 자동화로 이어지면 새로운 기계와 설비도 필요해진다.

결국 AI의 발전은 컴퓨터 화면 안에서 끝나는 변화가 아니다.


반도체와 전력, 통신, 건설, 제조업까지 돈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투자 사이클을 만들 수 있다.

이 지점에서 AI는 자연이자율과 연결된다.


지난 시대와 반대 방향의 힘이 생길 수 있다

지난 수십 년의 상황을 아주 단순하게 줄이면 이랬다.

돈은 많은데 투자할 곳이 부족했다.


그래서 자연이자율을 아래로 누르는 힘이 강했다.


하지만 AI가 거대한 투자를 만들어낸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기업들은 반도체 공장을 짓고 데이터센터를 건설하며 전력망을 확충하기 위해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 새로운 사업에 뛰어드는 기업도 늘어난다.

그만큼 돈을 원하는 곳이 많아진다.


과거에는

성장 둔화 → 투자 감소 → 자연이자율 하락

이라는 흐름이 강했다면,


AI 시대에는

생산성 상승 → 성장 기대 확대 → 투자 증가 → 자연이자율 상승

이라는 반대 방향의 힘이 생길 수 있다.


AI가 충분히 큰 생산성 혁명을 만들어낸다면 지난 40년 동안 이어졌던 저금리 환경도 더 이상 당연한 조건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이 등장했다고 생산성이 바로 오르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다고 경제 전체의 생산성이 다음 날부터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과거 컴퓨터가 빠르게 보급되던 시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기업들은 컴퓨터를 샀지만 생산성 통계에서는 그 효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았다.

새로운 기술을 제대로 사용하려면 기업이 업무방식을 바꿔야 한다.


직원들도 기술을 익혀야 하고, 조직과 산업 전체가 새로운 방식에 적응해야 한다.

시간이 필요하다.


AI도 마찬가지다.

지금 데이터센터와 반도체에 막대한 돈이 들어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경제 전체의 생산성 향상을 뜻하지는 않는다.


결국 AI가 자연이자율의 방향까지 바꿀지는 AI 투자가 실제 생산성 증가로 얼마나 넓고 빠르게 연결되느냐에 달려 있다.

AI 시대를 판단할 때 투자 규모만큼 생산성 통계를 함께 봐야 하는 이유다.


정부도 더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

AI만 새로운 변수는 아니다.

세계 각국의 높은 재정적자와 정부부채도 금리를 생각할 때 함께 봐야 한다.


정부가 지출을 늘리면서 세금으로 부족한 돈을 마련하려면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국채를 발행한다는 것은 정부 역시 시장에서 돈을 빌린다는 뜻이다.


한쪽에서는 기업들이 AI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정부가 많은 국채를 발행해 자금을 필요로 한다면 어떻게 될까.


과거처럼 돈은 넘치는데 빌려갈 곳은 부족한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기업과 정부가 동시에 많은 돈을 원하면 금리를 위로 밀어 올리는 힘도 강해진다.

AI 투자만으로 미래 금리를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그래도 저금리 시대가 끝났다고 말하기에는 이르다

반대쪽에는 여전히 자연이자율을 낮추는 힘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고령화와 저출산이다.


아이를 적게 낳고 인구 증가가 느려지면 경제 전체의 성장 속도도 낮아질 수 있다.

노후를 대비해 저축하려는 돈도 계속 쌓인다.


결국 앞으로의 세계에서는 서로 반대되는 힘이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는 자연이자율을 끌어내리려 한다.


AI의 생산성 혁명과 대규모 투자, 정부의 자금 수요는 반대로 금리를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미래 금리는 어느 힘이 더 강한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금리가 달라지면 자산을 보는 방법도 달라진다

이 이야기는 경제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금리는 우리가 주식과 부동산을 평가하는 기준에도 영향을 미친다.


금리가 낮을수록 미래에 벌어들일 돈의 현재 가치는 커진다.

그래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이어진 금리 하락은 주식과 부동산 같은 자산에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었다.

우리는 이런 세계에 오랫동안 익숙해졌다.

경기가 나빠지면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싼 돈이 풀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 믿음의 출발점에는 자연이자율 자체가 낮은 세계가 있었다.

만약 AI가 생산성을 높이고 기업의 투자수요까지 크게 늘려 자연이자율의 방향을 바꾼다면, 앞으로의 자산시장을 지난 40년과 같은 기준으로 바라볼 수 없다.


그래서 투자자에게 중요한 것은 다음 금리 인하 시점을 정확히 맞히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더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


‘금리는 결국 다시 낮아진다’는 지난 40년의 경험이 AI 시대에도 계속될 것인가.


버냉키가 틀린 것이 아니라 조건이 바뀌고 있다

'21세기 통화정바카라' 에서 버냉키가 설명한 세계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실제로 존재했다.

경제성장은 느려졌고, 저축은 많아졌으며, 투자수요는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그 과정에서 자연이자율을 낮추는 힘이 오랫동안 작용했다.


하지만 경제의 조건은 영원하지 않다.

새로운 기술이 생산성을 바꾸면 기업의 투자도 달라진다.

투자수요가 달라지면 돈의 수요가 달라지고, 결국 자연이자율도 움직인다.


AI가 기대만큼 생산성을 높이지 못한다면 버냉키가 설명한 저금리 구조는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

반대로 AI가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생산성 향상을 만들어내고, 그 과정에서 기업과 정부가 동시에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한다면 우리는 지난 40년과 다른 금리 환경을 맞게 된다.


그래서 지금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히

“미국은 언제 금리를 내릴까?”

가 아니다.


더 긴 시간으로 봐야 한다.

AI는 지난 40년 동안 자연이자율을 끌어내렸던 힘을 뒤집을 만큼 강력한 생산성 혁명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 답에 따라 AI 시대의 성장률도, 금리도, 자산가격도 달라진다.


우리가 지켜봐야 할 것은 다음번 금리 인하가 아니라, 돈의 가격을 결정하는 세계의 구조가 바뀌고 있는지 여부다.





세상은 복잡하지만, 핵심은 단순합니다.
저는 당신에게 정보가 아닌 ‘프레임’을 건넵니다.
- 범뷰(BeomVie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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