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공부, 그리고 교수라는 직업, 연구자라는 틀.
오랫동안 붙잡고 있던 것들이었다.
정확히는 일보다
그 일을 향한 마음이었다.
잘하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고,
끝까지 해내고 싶었다.
무엇보다 내가 무척이나 사랑했던 것들이었다.
그래서 참 오래도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국가를 이동해 가는 과정에서
어쩔수 없이 내려놓았어야 했던 것들이었고
그래서 그때는 그게 너무나 애틋하게 간절했었다.
그런데 최근,
그 일을 비로소 내려놓기로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 가장 먼저 찾아온 감정은 허무함이 아니었다.
편안함이었다.
'이렇게 편해질 수 있었구나.'
나 스스로도 놀랐다.
사람들은 내려놓으면 후회할 거라고 말한다.
미련이 남을 거라고도 한다.
니가 살아온 인생 전부를 부정당하게 될거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렇지 않다.
후회도 없고,
미련도 없다.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만큼은 최선을 다했구나.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내려놓았다고 해서
그 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밤을 새워 고민했던 시간도,
실패했던 순간도,
기뻐했던 기억도
모두 지금의 나를 만든 시간이었다.
그래서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시간을 부정하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여기까지 잘 왔다.'
하고 스스로를 인정해 주는 일이었다.
예전에는 끝까지 붙잡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아보니
때로는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 더 단단했다.
무엇을 포기해서가 아니라,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을 내려놓았지만
나를 내려놓은 것은 아니었다.
직함을 내려놓았지만
가치를 내려놓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직함 하나를 내려놓고 나니
비로소 나 자신이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마음을 비우자 새로운 생각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것도 해보고 싶다.'
'이 길도 괜찮겠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가능성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아마 두 손에 무언가를 꽉 쥐고 있으면
새로운 것을 잡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안다.
내려놓음은 끝이 아니라
공간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무언가를 잃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나를 맞이할 자리를 비워두는 일이라는 것을.
돌아보면
내가 붙잡고 있었던 것은
일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내려놓으면 끝날 것 같았고,
실패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내려놓고 보니
끝난 것은 두려움뿐이었다.
그리고 남은 것은
지나온 시간을 믿는 마음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충분히 열심히 살아왔다.
그 시간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고,
어떤 결과 하나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앞으로가 두렵지 않다.
지금까지의 나를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통과해 온 사람이라면
앞으로 어떤 길을 만나더라도
분명 또다시 배워가며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내려놓았더니
무언가를 잃은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다시 얻게 되었다.
그래서 나 스스로에게 이 말은 꼭 해주고 싶다.
"선아야, 나는 앞으로의 너도 무한히 응원할게.
잘 해왔고, 잘 할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