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지나간 일들이 현재의 일보다 더 큰 상처를 남긴다.
나는 작년 겨울,
짧게 재직했던 연구원에서 계약기간 만료와 함께 퇴사했다.
당시 정규직 채용 공고가 났고,
함께 일하던 박사들 역시 지원했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은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곳에서 겪은 여러 경험들은
내게 한 가지 확신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내가 오래 머물 곳은 아니구나.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곳도,
나의 역량을 온전히 펼칠 수 있는 곳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당시 내가 보지 못했던 장면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남았고,
나는 떠났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들도 있었다.
그 사실 자체보다
더 크게 다가온 건 따로 있었다.
나는 그 관계를 나만 다르게 이해하고 있었구나.
돌이켜보면
이미 결정된 일들이 있었고,
이미 형성된 관계들이 있었다.
다만 나는 그것을 너무 늦게 알아차렸을 뿐이었다.
왜 배제되는 것 같다고 느꼈는지,
왜 설명되지 않는 불편함이 있었는지,
왜 어떤 일들은 특정 사람들에게만 주어졌는지.
시간이 지나서야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탈락보다 더 큰 상처가 찾아왔다.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것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관계를 믿고 있었는데,
상대는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
그게 더 아팠다.
오늘 우연히
그 연구원의 채용공고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지냈던 기억들이
생각보다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배려를 가장한 배제의 순간들,
슬롯라고 포장된 이기심들...
사람은 참 이상하다.
지나간 일이라 생각했는데,
어떤 장면 하나만으로도
그때의 감정이 그대로 돌아온다.
그런데 예전과 달라진 점도 있다.
예전의 나는
그들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왜 나는 그 안에 포함되지 못했을까.
하지만 지금은
굳이 이해하지 않으려 한다.
모든 사람을 이해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나와 다른 기준으로 살아간다.
관계를 바라보는 방식도,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일을 대하는 방식도 다를 수 있다.
그 차이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
어쩌면 그것이
나를 지키는 가장 건강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사람을 믿는다.
다만 이제는 안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방식으로 관계를 맺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앞으로도
나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며 살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인정받아 왔던 방식으로 일하고,
지금까지 소중하게 여겨왔던 태도로 사람을 대할 것이다.
그들과 나는 다르니까.
그리고 이제는
그 다름을 굳이 증명하려 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나와 결이 같지 않은 사람에게
마음을 조금 덜 나눠주고,
나와 결이 같고 고운 사람들과
함께할 일을 더 많이 만들려 한다.
그게 나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