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좋은사람' 컴플렉스가 있다.
물론 좋은사람이라는게 나쁜건 아니다.
하지만 좋은사람이라는 틀 속에 갇혀서
결국 나 스스로를 위하지 못하게 되었던 나는
좋은게 좋은거 라는 말이
언제나 늘 맞는 말은 아니라는걸 실감한다.
맞다.
한때의 나는 좋은 사람이 옳은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누군가 부탁하면 쉽게 거절하지 못했고,
불편한 상황이 생기면 내가 먼저 맞추려 했다.
관계가 틀어지는 것이 싫었고,
누군가에게 실망을 주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늘 조금 더 이해하는 쪽을 선택했다.
조금 더 참고,
조금 더 배려하고,
조금 더 양보했다.
그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살수록 점점 지쳐갔다.
관계는 유지되었지만
정작 나는 편안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기대에 맞추느라
내 마음을 뒤로 미루는 일이 많아졌고,
싫은데 괜찮다고 말하고,
힘든데 웃으며 넘기고,
서운한데 이해하려 애썼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조차 흐려지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나는
좋은 사람은 되려고 했지만
편안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특히 연구를 하며,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과
사람들이 오래 곁에 두는 사람은
꼭 같지 않았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
배려심이 많은 사람,
좋은 평판을 가진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자꾸 찾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그들은 함께 있으면 편안했다.
실수해도 괜찮을 것 같고,
조금 부족한 모습을 보여도 괜찮을 것 같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생각해보면 나 역시 그랬다.
누군가를 떠올릴 때
그 사람이 얼마나 훌륭했는지보다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를 더 오래 기억했다.
나를 긴장하게 만드는 사람보다
나를 편안하게 만드는 사람.
나를 평가하는 사람보다
나를 이해하려는 사람.
어쩌면 사람은
좋은 사람보다 편안한 사람을 더 오래 기억하는지도 모른다.
다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를 잃어버릴 필요는 없다는걸
마흔이 넘은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좋은 사람보다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다.
어쩌면
조금은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얼마전 동료박사님이 그러셨다.
"박사님한텐 어떤 이야기든 술술 하게되는것 같아요."
"이상하게 마음이 좀 편안해 지는데, 그래서 자꾸 제 말이 독백처럼 길어지네요."
나는 그 말이
단순한 칭찬을 넘어서
그간 나 혼자 끊어내려 애썼던
좋은사람 컴플랙스에서 벗어나
조금은 편한 사람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는
결과지처럼 들렸다.
누군가 앞에서
굳이 완벽한 척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상대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사람.
내 기준을 지키면서도
상대의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과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
살아보니
좋은 사람은 노력으로 될 수 있지만,
편안한 사람은
오랜 시간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사람만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좋은 사람보다
편안한 사람이 되기를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