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보다
어떤 말을 자주 하는지를 유심히 듣는 편이다.
같은 상황을 두고도
사람마다 사용하는 언어는 놀라울 만큼 다르다.
누군가는 말한다.
"어쩔 수 없지."
또 다른 누군가는 말한다.
"그래도 방법은 있을 거야."
누군가는
"나는 원래 안 돼."
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이번에는 안 됐네."
라고 말한다.
비슷한 뜻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전혀 다른 세계가 담겨 있다.
'나는 원래 안 돼'에는
이미 결론이 내려진 삶이 있고,
'이번에는 안 됐네'에는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삶이 있다.
그래서 언어는 단순한 말이 아니다.
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고,
자신을 대하는 태도이며,
삶을 해석하는 프레임이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2-30대의 나는,
"안되면 어떻게 하지?"
"최악의 경우를 먼저 생각해야지."
라는 말을 습관처럼 사용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늘 불안했었다.
내가 원하는게 뭔지, 내가 좋아하는게 뭔지, 내가 잘 할수있는게 뭔지
모르고 살았던 20대였다.
그 상태로 맞이한 30대는
낯선 타국살이의 불안함과 맞물려
말 그대로
'불안 덩어리'였다.
그 결과,
그 좋은 시절,
나의 모든 말 끝에는
불안과 걱정, 부정적인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물론 바카라임감 때문이기도 했다.
잘 살아야해, 꼭 성공해야해, 부모님께 걱정 끼쳐드리면 안돼...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말들은 어느 순간부터
나 자신을 지나치게 작게 만드는 언어가 되어 있었다.
문제가 생기면
상황보다 먼저 나를 탓했고,
의견이 다르면
내 생각보다 상대의 생각을 먼저 의심했다.
결국 내가 반복적으로 사용하던 언어가
나의 사고방식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반대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쉽게 단정하지 않았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다시 해보면 되지."
그들의 언어에는 이상하게도
여백이 있었다.
실패할 여백,
실수할 여백,
사람을 이해할 여백.
그래서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나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돌아보면
브랜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사람들은 흔히 브랜드를
특별한 이미지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브랜드는
훨씬 사소한 것들에서 시작된다.
어떤 말을 반복하는지.
어떤 문장을 좋아하는지.
어떤 상황에서도 지키는 표현이 있는지.
그 작은 언어들이 쌓여
한 사람의 분위기가 되고,
태도가 되고,
결국 그 사람만의 브랜드가 된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내가 자주 사용하는 말을 돌아본다.
그 말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는
매일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조금 더 신중하게 말을 고른다.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말이 결국
내 안에 가장 오래 남는 사람이
나 자신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딸아이에게 종종 해주는 말 중 하나도 같은 맥락이다.
"너의 말을 가장 많이 듣는 사람은 언제나 너 자신이야.
그러니까 같은 말이여도 이왕이면 부드럽게, 가장 이쁜 말들을 써봐.
그건 너 자신을 위하는 길이야."
무심코 내뱉은 말들이
어느 순간 나를 설명하는 문장이 되고,
그 문장들이 반복되다 보면
결국 내가 믿는 진실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언어는 무섭다.
말은 공기 중으로 사라지는 것 같지만,
생각보다 오래 마음속에 남는다.
반대로 좋은 언어도 그렇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누군가에게 건넨 위로가
어느 날 나를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나는 좋은 언어를 가진 사람들을 좋아한다.
긍정적인 말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함부로 규정하지 않는 사람.
상황은 비판할 수 있어도
사람 자체를 쉽게 단정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 곁에 있으면
이상하게 숨이 편해진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에게도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결국 언어는
타인을 대하는 방식이기 전에
자신을 대하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조금 더 좋은 말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더 화려한 언어가 아니라,
나를 무너지게 하지 않는 언어.
타인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언어.
그리고 무엇보다
나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붙들어주는 언어.
어쩌면 사람의 브랜드는
그 사람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문장 속에서
이미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내가 사용하는 말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