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웃음은 내 것이 아니다

― 나 자신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에 대하여

by이화윤 lee hwayoon



협력 업체와의 회식 자리였다. 삼겹살 연기가 천장까지 올라가고, 옆자리에서 누군가 내 잔에 맥주를 가득 채워줬다. 술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한다. 서로 잘하자고 웃는다. 한동안 반달형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다.


자리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을 때, 이어폰도 꽂지 않은 채 창에 비친 지친 얼굴을 본다. 아까 그 웃음이 아직 거기 남아 있는 것 같다.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그게 내 얼굴이 아니다.



소외는 불안을 데리고 온다

외로운 게 아니었다. 사람들 사이에 있었으니까. 슬픈 것도 아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몸 어딘가에서 아주 조용한 이질감이 일어난다. 이름을 붙이지 못하는 감각. 나중에야 그것이 소외라는 걸 알았다.


사람들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조율하다 보면, 어느 순간 경계가 흐려진다. 상대가 원하는 표정을 짓고, 분위기에 맞는 말을 고르고, 자신이 어떻게 보일지를 빠르게 계산한다. 그것은 의식적인 노력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몸이 배운 반사에 가깝다. 숨을 쉬듯, 심장이 뛰듯, 먼저 움직이고 나중에 알아차리는 것. 그러다 어느 순간 묻게 된다. 지금 웃고 있는 이 사람이 나인지, 내가 오랫동안 연습해온 누군가인지.


그 경계가 흐릿해지는 순간, 소외가 온다. 타인으로부터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부터.


인간은 관계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한다. 상대가 내 말에 반응할 때, 내 이름을 불러줄 때, 나를 알아볼 때, 그 순간들이 쌓여 내가 이 세계 안에 있다는 감각을 만든다. 소외는 그 감각을 조용히 지운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데도, 내가 거기 있다는 느낌이 없어지는 것. 그 자리에 불안이 들어온다.



혼자이고 싶은데, 혼자인 게 두렵다

사람들 속에서 시달리다 보면, 지쳐서 혼자이고 싶을 때가 있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고요하다. 몸에서 뜨겁고 어두운 기운이 서서히 연기처럼 빠져나간다. 몇 시간을 멍한 상태로 보낸다.


그런데 막상 혼자가 되면 다른 종류의 불안이 온다. 아까 그 자리에서 나는 제대로 있었는가. 웃었는데 왜 피곤한가. 좋은 시간이었는데 왜 허전한가.


그 고요 속에서 속으로 미뤄둔 생각들이 올라온다.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가. 이 관계들은 진짜인가. 내가 원한다고 믿어온 것들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가.


이 질문들이 두려운 이유는 답을 모를까 봐서가 아니다. 그 반대이다.


그 두려움의 가장 깊은 곳에는 아주 오래된 예감이 있다. 자신이 원래부터 어딘가 틀렸을지 모른다는.


처음에 소외는 바깥에 있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내가 발견하게 되는 것으로. 그런데 그것이 자꾸 반복되면 안으로 이동한다. 더 이상 누군가 말해주지 않아도 내가 나에게 말하기 시작한다. 나는 여기 속하지 않는다고. 그 목소리를 믿고 싶다.



여기 있는 것

소외를 없애려 하면 더 짙어진다.


더 잘 맞으려 할수록. 더 완벽하게 연결되려 할수록. 경계는 더 흐려진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냥 두기로 했다. 이질감이 올라올 때. 고치려 하지 않는 것. 아까 그 웃음이 내 것이 아니었다는 걸, 그냥 아는 것.


누구나 그런 밤이 있다.

불을 끄지 않았다. 나를 한동안 바라봤다. 창이 서서히 밝아올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 불안을 끝까지 들으면, 거기에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것이 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속하고 싶다는 것.


아침에 다시 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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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 오는 것은, 내가 아직 여기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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