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교 경쟁이 낳은 부작용, 불안한 슬롯를 살아가는 법
어머니는 아버지가 나를 나무라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그런데 정작 내가 시험 성적이 나쁘면 회초리를 드셨다. 종아리를 맞으면서 나는 울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참았더니 더 때리셨다. 그러더니 먼저 우셨다.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그 뒤로 열심히 공부했다. 배움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미래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맞는 것도 싫었지만, 엄마가 우는 것이 더 싫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맞을 때면 종아리가 따끔거렸다. 밤에 이불 속에서 그 자리를 손으로 만져보면, 아직 매맞은 자국과 열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더 아픈 것은 종아리가 아니었다. 울지 않으려는 마음이 더 아팠다.
시험 때가 되면 혼나지 않으려고 무조건 외웠다. 그래서인지 성적이 잘 나왔다. 반에서 앞자리에 섰고, 반장도 했다. 부모님은 기뻐했고 자랑스러워하셨다.
그런데 나는 별로 기쁘지 않았다. 그냥 해야 하니까 했다.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게 나와 맞지 않았다.
잘한 날에도 어딘가 어색했다. 언젠가 성적이 떨어지면 다시 그날이 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참 뒤에야 알았다. 어머니가 왜 그렇게 성적에 매달렸는지를.
외할아버지는 어부이면서 농부였다. 한평생 그렇게 사셨고, 고집이 센 분이었다. 여자는 공부를 할 필요 없다. 시집만 잘 가면 된다. 그 한마디가 어머니의 삶을 오랫동안 아프게 했다.
어머니는 초등학교만 나왔다. 배우고 싶었지만 배울 수 없었다. 부엌 살림을 하다가 배우자를 만났고, 그렇게 한 평생을 살아왔다.
어머니는 말하지 않았다. 자기가 얼마나 배우고 싶었는지를. 끝내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훨씬 나중에야 알았다. 알았을 때야, 종아리의 기억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어머니가 왜 먼저 울었는지도.
돌아보면 어머니의 회초리 안에는 한이 있었다. 자기가 빼앗긴 것을 자식에게서는 놓치고 싶지 않았던 마음. 사랑이 회초리의 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는 데 반평생이 걸렸다. 이해한다고 해서 종아리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미워하는 일은 멈출 수 있었다.
미워하는 것이 멈추니까, 어머니의 얼굴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회초리를 들고 아파하며 울던 얼굴이.
시험이 끝나면 우리는 늘 서로의 점수가 궁금했다. 내가 어디쯤인지 확인해야 집에 돌아갈 수 있었으니까. 그때는 왜 시험이 그렇게 잦았는지. 월말고사, 중간고사, 기말고사, 심지어 주초고사 주말고사까지.
보이지 않는 회초리는 어디에 가도 있었다. 누가 때리는 것도 아닌데, 멈추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느낌은 시험지를 받아들기 전에 손이 떨리던 것과 닮아 있었다.
세상은 일등만 기억하고 나머지는 소거한다. 그 안에서 살다 보면, 언제부턴가 내 안에도 회초리를 든 누군가가 서 있게 된다.
그것이 나였다.
자녀를 키우면서 나는 더 분명히 보았다. 내가 어머니에게서 받은 기준을, 무심코 내 아이에게도 들이밀고 있다는 것을. 아이의 시험 성적을 보면서 내 목소리가 어머니의 목소리와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것이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가. 아니면 내가 물려받은 불안을 물려주려는 것뿐인가.
생각해 보니 후자였다. 나는 그 회초리를 부러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전해줄 유산이 아니라, 여기서 멈춰야 할 낡은 기준이었다.
하지만 내가 부러뜨린다고 해서 세상까지 회초리를 내려놓는 것은 아니었다.
세상은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때린다. 성적은 스펙이 되고, 스펙은 연봉이 되고, 연봉은 그 사람의 가치가 된다. 그렇게 비교당하고, 불안해지고, 스스로를 깎아내린다.
회초리보다 조용하다. 그런데 더 아프다.
플랫폼을 열면 알고리즘은 잘된 사람들만 보여준다. 세상에는 능력 있는 사람이 넘치는 것처럼 보이고, 평범한 나는 자꾸 작아진다. 지인의 좋은 소식에 축하한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쪽이 내려앉는다. 그 감각이, 어릴 때 시험 성적을 들고 현관문 앞에 서성이던 느낌과 닮아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내가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던 상대가 사실은 내 안에 있었다. 그 평가자의 첫 번째 얼굴은 회초리를 든 어머니였다. 두 번째 얼굴은 그 어머니를 내면화한 나였다. 세 번째 얼굴은 그런 나를 끊임없이 부추기는 슬롯였다.
어머니가 든 회초리는 어찌 보면 이 슬롯가 먼저 만든 회초리였다.
이런 순환 속에서 나는 자주 물었다. 왜 살아야 하는가.
까뮈는 부조리한 세상 앞에서도 삶을 사랑했다. 정상에 닿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돌을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에게서 반항을 보았다. 처음에 나는 그것을 영웅의 이야기로만 읽었다. 지금은 안다. 그것은 위로가 아니었다. 직시였다.
그래도 산다. 밀어 올린다. 그것이 부조리에 대한 반항이라는 것을, 나는 조금 늦게 배웠다.
그렇다면 우리는 비교당한 것일까. 아니면 비교한 것일까. 아마 둘 다일 것이다.
상처는 종종 회초리가 된다. 상처는 같은 방식으로 남을 향한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멈춤은 후퇴라고 여긴 적이 있었다. 누군가의 쉼을 나태로 오해한 적이 있었다. 그 사람에게는 그 멈춤이 버티기였을지도 모르는데.
비교로 상처받은 사람이 더 날카롭게 타인을 비교한다. 이것이 비교 슬롯의 진짜 잔인함이다. 적이 밖에만 있지 않다.
불안한 슬롯를 살아가는 법이 있다면, 나는 여기서부터라고 생각한다.
내 안의 회초리를 알아보는 것.
내가 나를 때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 비로소 그 회초리를 내려놓을 가능성이 생긴다. 내려놓는다는 것이 비교를 멈춘다는 뜻은 아니다. 그건 불가능하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서로를 본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견주어 본다.
중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회초리를 맞던 아이는 말했다. 나는 왜 이것밖에 못하지.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르게 말할 수 있다. 아, 또 남의 회초리로 나를 때리고 있었구나.
비교의 반대말은 비교하지 않기가 아니다. 비교의 반대말은 나만의 기준을 갖는 것이다. 남의 기준이 아니라, 내가 세운 회초리를 내려놓고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은 세계가 든 회초리에 대한 가장 조용한 반항이다.
어머니는 예순에 공부를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내 큰아이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손주를 돌보아주셨다. 안아주고, 업어주고, 먹여주셨다. 그러다 목디스크가 왔다. 아이를 돌보는 일을 그만두어야 했다. 오래 무언가를 쥐고 있던 손이, 비로소 조금 비게 된 때였다.
그 빈 손으로 어머니는 펜을 다시 잡았다.
중졸 검정고시를 봤다. 붙었다.
고졸 검정고시를 봤다. 합격했다.
여기까지도 이미 오래 걸렸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 외우고, 틀리고, 다시 외우는 일이 쉬울 리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멈추지 않았다.
방송통신대학교에 들어갔다. 몇 해 동안 학점을 따느라 애를 쓰셨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자식들에게 물었다.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때마다 눈이 반짝였다.
몇 해가 지났다. 그래도 기어코 졸업했다.
졸업식 날, 어머니는 학사모를 썼다.
초등학교만 나온 여자는 공부할 필요 없다고 했던 오래전의 그 한마디를, 어머니는 반평생이 지나서야 뒤집은 것이다. 누구와 비교해서가 아니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자기 안의 회초리를 마침내 자기 손으로 내려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해 겨울, 어머니는 떠나셨다.
그 학사모를 쓴 어머니의 사진을 나는 오래 들여다본다. 몸이 안 좋아 힘든 기색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침내 다다른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 웃음에는 비교가 없었다. 누군가를 이긴 사람의 웃음이 아니었다. 공부하고 싶어도 오래 참아야 했던 사람이, 자기 시간에, 자기 속도로, 끝내 자기가 원하던 것을 해낸 사람의 웃음이었다.
비교 경쟁의 사슬은 대물림된다. 그러나 그 사슬을 끊는 방법도 대물림될 수 있다. 자기 기준으로, 자기 속도로, 자기 시간에.
불안한 슬롯를 살아가는 법은 불안을 없애는 데 있지 않다.
내 안의 회초리를 알아보고, 오늘만큼은 그것을 내려놓는 데 있다.
어머니가 그랬듯이.
학사모를 쓴 어머니의 사진이 서랍 위에 놓여 있다. 오래된 사진이다. 가장자리가 조금 바랬다.
사진 속 어머니는 이제 없다. 그 웃음만은, 아직도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