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안 속에서 배우는 것들 (5)
고등학교 시절의 이야기다.
어느 날, 나는 무작정 새벽 첫차를 탔다.
한 번도 혼자 바깥세상에 나가보지 못한, 조용하고 겁 많은 아이였다. 그 겁 많은 아이가, 불안을 안은 채로 첫차에 올랐다. 오랜 시간 우울의 강물에서 아픔만 노래하던 아이가, 처음으로 세상에 나온 날이었다. 빛을 만나기 위해.
젊은 날의 방황이 유독 길었다. 딱히 살 만한 이유가, 그때는 보이지 않았다. 세상이 정해준 길 위에 서 있는데, 그 길이 도무지 내 것 같지 않았다. 무조건 해야 하니까 해라. 성공하려면 참아라. 현실은 어쩔 수 없다.
나는 유독 묻고 살펴보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그 길이 더 답답했는지도 모른다. 나와 상관없는 것이 강제되는 순간, 지독한 어둠을 느꼈다. 안개 속에 던져진 그림자와, 그 속에 뿌옇게 빛나는 가로등 같은 비현실적인 세계처럼. 차라리 침묵하자. 조용히 내면으로 침잠하는 것은, 그 시기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 무렵, 같은 꿈을 자주 꾸었다. 한쪽은 백색, 다른 한쪽은 흑색이었다. 나는 검은 곳을 향해 앉아 있었다. 영원히 움직이지 않는 의자처럼. 세계가 온통 암흑 같아서, 한 치 앞도 내디딜 수 없었다. 그곳은 끝없는 심연으로, 사멸이고 죽음이었다.
한 발자국만 떼면 죽을 것 같아서, 나는 거기 오래 머물렀다. 수술을 위해 몸을 조이는 통 안에, 혼자 갇힌 듯한 답답함. 이해할 수 없는 갈망과 낯선 이질감. 지금의 내가 비정상인 것처럼 분리되는, 그런 이원화. 내 속의 또 다른 나는, 세계에 부적응하는 나를 비난하고 용서하지 않았다.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죽어라. 나는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아무 응답도 하지 않았다. 최초의 혼돈과, 허무의 소용돌이 속에 갇힌 느낌.
불안도 극단에 이르면, 평온하기까지 하다. 생각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사유의 죽음.
벗어나고 싶었다. 빛처럼 다가오는 무언가를 희구했다. 수단으로서의 내가 아니라, 온전한 존재로서의 나를 깨닫게 하는 참된 것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았다. 가장 높은 곳, 하늘과 맞닿은 그곳에.
새벽잠에서 깨어나니 낯선 시골 정류소였다. 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타고, 덜컹거리는 시골길을 한참 지나, 한적한 지리산 기슭에 닿았다.
한 번도 올라가 보지 않은 계곡을 따라 올랐다. 단풍이 붉게 물든 가을날이었다. 시리도록 투명한 물속에, 내가 비쳤다. 어딘가 슬프지만, 마음이 여리고 상처받은 아이가 거기 서 있었다. 그 깨끗하고 순수한 물결 속에 들어가, 내 영혼을 씻어 내리고 싶었다.
몸속 깊은 곳의 회색빛 먼지들이, 햇살을 머금은 물결 속에서 조금씩 흩어져 갔다. 응어리진 상처를 어루만지는 듯한 차가운 평온이, 살짝 열이 오른 정수리를 타고 천천히 내려왔다.
정상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힘들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마냥 앉아 있기보다, 지금 내 몸이 주는 감각에 충실하고 싶었다. 웅크린 채 어느새 지친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이제 일어설 때가 되었다는 목소리가 안에서 들렸다.
닫힌 세계 앞에 머물지 말자. 닫힌 것은,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아서다. 그 길이 아닐 수도 있다. 네가 잘못해서가 아니다.
그제야 나는 일어섰다. 뒤돌아 섰다.
줄곧 어둠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돌아보니 등 뒤에 이미 빛은 있었다. 빛이 사라진 적은 없었다. 다만 내가, 어둠을 향해 앉아 있었을 뿐이다.
그래 다시 걸어보자. 이런 마음이 들었다.
너덧 시간을 쉬지 않고 올랐다. 마침내 정상에 올라섰을 때,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푸른 하늘이 거기 있었다. 땀으로 온몸이 젖었는데, 마음은 무언가가 씻겨 나간 듯 개운했다.
내딛는 발은 힘겹다 못해 천근의 무게로 다가오는데, 어두운 생각들이 조금씩 사라졌다. 오직 나와 광활한 산야와, 푸르디푸른 하늘이 하나가 되는 시간이었다.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하고, 심장 소리가 들렸다.
무엇인가가 다시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래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다.
그날 이후로도, 미래는 여전히 두려웠다. 앞날은 불확실하고, 예전처럼 다시 흔들렸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해보고 싶은 것은 해본다는 것. 그게 자유다. 가다가 아니면 돌아오면 되고, 가서 좋으면 그걸 살리면 된다. 너무 갇혀 있지 말자. 시도하는 것은, 나쁜 게 아니다.
무거운 발걸음이라도 한 발 떼면, 조금 달라진 나와 만나게 된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멈춰 있지 말자. 마음먹은 대로 가보고 싶은 길을 걸어보자. 어떤 경험에서든 얻어지는 것도 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그냥 한 번 더 걸어보자.
불안이란 살아있다는 증거다.
미래의 불확실성은 자신을 흔들리게 한다.
그것을 담담히 바라본다.
어둠과 빛, 멈춤과 이동,
평지와 산을 선택하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다.
누구도 대신 살 수 없다.
힘들어도 어딘가에 도달하고 싶으면
불안의 무게를 감당하고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