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나를 무너뜨리지 않고, 버티게 했다

― 불안 속에서 배우는 것들 (3)

by이화윤 lee hwayoon


물속에서 눈을 뜨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위가 어딘지도 모른 채 발을 계속 찬다. 살고 싶기 때문만이 아니다. 몸이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때 내 몸은 나를 살리려 하고, 나는 아직 그곳에 도달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불안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인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질문이 있다. 나는 왜 세상에 태어난 거야. 언제까지 살 수 있어. 크면 어떻게 살아야 해. 어른들은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고 놀렸지만, 나는 진심으로 묻고 있었다. 진심을 농담으로 받는 어른들 앞에서 아이는 자주 입을 다물었다.


막내 동생이 태어나던 날, 백열등 아래 방문 밖으로 한참을 나가 기다리던 기억이 있다. 엄마가 나를 낳았듯이 그렇게 동생도 태어나는 것이라고 믿었다.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정작 아무것도 묻지 못했던 아이였다.


u3945294588_Cinematic_wide_shot_editorial_magazine_spread._A__3a02a400-b706-4046-8483-e752ea03919c_0.png


겨울, 바닷속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조부모님 댁에서 지내다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었다. 겨울이었다. 엄마가 사준 두툼한 외투를 입고 선착장에서 큰 배에 올라타서 발을 내딛던 순간이다, 미끄러웠는지 몸이 그대로 평형을 잃고 바닷속으로 떨어졌다.


물에 젖은 외투가 나를 끌어내렸다. 올라오려 했지만 물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숨이 가빠왔다. 눈을 뜰 수 없었다. 심장 소리가 귓속을 가득 채웠다.


어린 나이였지만 알았다. 이것이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겁이 벌컥 났다.

젖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발을 힘껏 걷어찼다. 몸이 순간 위로 솟아올랐다. 동네 아저씨들이 끌어올렸다.


그날 이후 몸이 먼저 기억했다. 맑은 날 햇빛이 물결 위에서 부서질 때, 아무 이유 없이 심장이 조여들었다. 높은 곳에 오르면 발이 굳었다. 겨울 냄새가 나면, 그날의 찬물이 콧속으로 다시 스며드는 것 같았다.


죽음은 계절처럼 찾아왔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랐다.


u3945294588_A_childs_silhouette_seen_from_behind_sitting_alon_5c44f6d9-f8d8-4686-ac3f-6e7a708963dd_0.png


혼자 앓은 계절

초등학교 4학년 어느 봄날이었다. 창밖으로 햇살이 부서지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언젠가는 저렇게 아름답게 죽어가겠지.


그 생각이 무섭지 않다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그냥, 그랬다.


사춘기가 되자 두려움은 다른 방식으로 나를 괴롭혔다. 세상이 허무했다. 내가 살아 있기 위해 다른 생명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견디기 어려웠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소유하고 애쓰며 살아가는 일이 모두 빚을 지는 일처럼 느껴졌다.


어느 저녁에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수도승이 될까. 신부의 길을 걸을까.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쪽이 더 깨끗한 삶 아닐까.


하지만 묻고 싶어도 물을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한 어린 마음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혼자 앓았다. 어둠의 계절은 오래 지속되었다.

답을 구하기 위해 바카라을 읽었다. 철학이든 경전이든 가리지 않았다. 대답해 줄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

그 깊은 절망에서 나를 붙잡은 것은 철학도, 의지도 아니었다. 엄마였다.

내가 사라지면 엄마가 가장 가슴 아파할 것이라는 생각. 그 한 가지가 내 방황을 붙들었다.


존재의 이유가 자기 안에서 발견되지 않을 때, 사람은 다른 사람의 슬픔에서 자기를 발견한다. 한 사람을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해 사는 일이 자기를 위해 사는 일보다 정직할 때가 있다. 어쩌면 그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가장 늦은 방식이었다.


물속의 발짓이 본능이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연민이었다. 두 번 다, 나를 살린 것은 내가 아닌 자리였다. 무너지려는 나를 버티게 한 것도, 결국 그 자리였다.


그날의 발짓

그날 물속에서 발을 찬 것은 나의 의지였을까, 아니면 몸의 의지였을까. 지금도 모른다. 다만 그 발짓이, 살고 싶었다는 가장 정직한 증거라는 것만은 안다.


그 시절의 나는 살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었다. 너무 살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불안은, 살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진지해서 자기를 견디지 못한 자리에서 자란다.


지금도 어떤 저녁의 빛, 어떤 사람의 목소리,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춘다. 그 멈춤이 어린 시절의 순수에 대한 갈망과 같은 자리에서 온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u3945294588_A_poetic_abstract_image_of_a_single_foot_movement_9feed83b-1cb8-4485-9fd8-5f7af1b791ff_2.png


파도는 사라지지 않는다

젊은 날의 불안은 나를 짓누르는 바위였다. 물의 강한 압력이었다.

지금의 불안은 다르다. 불안이 찾아오면 나는 속으로 말한다. 아, 또 무언가 시작되는구나.


파도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 위에서 발을 차며 버티는 법을 배웠을 뿐이다.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이 질문은 결국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로 돌아온다.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절망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게 하는, 가장 조용하고 강력한 욕망이다.




살고 싶었다.

그 불안의 발짓을 나는 아직도 계속하고 있다.

불안은 나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버티게 한다.

흔들린다는 것은, 아직 무언가를 원한다는 뜻이다.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상실 이후, 일상이 가장 낯설어지는 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