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 이후, 일상이 가장 낯설어지는 순간들

― 불안 속에서 배우는 것들 (2)

by이화윤 lee hwayoon

바카라장 한쪽에 어머니의 시가 적힌 노트가 아직 있다.


마지막 연에 이런 문장이 남아 있다. 해가 서쪽으로 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우리네 삶도 그러하니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겠느냐고.


어머니는 삶과 죽음을 그렇게 써두고 갔는데, 나는 아직도 그 노트를 제자리에 둔 채 가끔 꺼내 본다.


상실은 떠나는 날로 끝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떠나간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 그때부터 일상은 익숙한 얼굴을 한 채 전혀 다른 것이 된다.


아침은 어김없이 밝아온다. 창밖의 나무들은 철을 따라 연초록 잎사귀를 흔들고, 길가의 개나리와 목련과 벚꽃은 제때 피었다가 진다. 자연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다.


그런데 내 안에서는 한 계절이 오래 멈춰 있다. 남들은 같은 봄을 사는데, 나만 다른 시간대에 남겨진 것 같은 날이 있다.


불안은 많은 경우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하지만, 상실 뒤의 불안은 조금 다르다. 이미 일어난 일을 몸이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서 온다.

사건은 끝난 지 오래되었는데, 나는 아직 그 안에 머물 때가 있다.


상실 뒤에는 또 다른 사건보다 함께했던 소소한 일상이 더 낯설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쏟아지는 햇빛, 무심히 울리는 전화벨 소리, 습관처럼 손이 가는 때 묻은 서랍, 추억 속의 노래. 예전과 같은 시간인데, 그 안에는 예전의 누군가가 없다.


한 사람의 부재는 집 한가운데 구멍처럼 남지 않는다. 오히려 사물의 가장자리와 하루의 틈으로 스며들어, 모든 것을 조금씩 낯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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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동안 그 노트를 버리지 못한 것이 미련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것은 물건을 정리하지 못한 일이 아니었다. 그 글씨를 따라가면 잠시라도 어머니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 같은 순간이 열렸기 때문이다.


사람은 죽음을 머리로 먼저 이해하지만, 손은 훨씬 늦게 받아들인다.


노트를 꺼내는 손끝의 감촉, 오래된 글씨의 눌림, 접힌 종이의 모서리, 종이를 넘길 때 사그락거리는 소리, 다시 꽂아둘 때의 멀어져가는 좁은 틈새. 그것들은 모두 지나간 시간을 가리키는데, 나는 자꾸 그 앞에서 현재형이 된다. 머리는 끝났다고 하는데, 몸은 아직 모른다. 그 어긋남이 불안의 정체였다. 머리와 몸이 서로 다른 시간을 살 때, 나는 어디에도 온전히 서 있지 못했다.


그래서 상실 이후의 불안은 심오한 말로 오지 않는다.




갑자기 심장이 내려앉는 순간으로 온다. 잘 지내고 있다가도 문득, 이제는 더 이상 말해줄 수 없는 것들이 떠오를 때. 좋은 일을 가장 먼저 들려주고 싶던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 어떤 문장을 읽다가, 향수 어린 기억이 되살아나는 순간을 마주했을 때 내가 여전히 떠난 사람을 향해 마음을 두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어머니의 시는 소박하고 담담하다.


바다를 바라보며 산 사람답게, 흐르는 것은 흐르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나는 그 마지막 연 앞에서 늘 오래 머문다. 자연의 이치를 이해하는 일과, 그것을 견디는 일은 서로 다르다. 알겠다는 말은 할 수 있어도, 마음이 바로 따라오는 것은 아니니까.


한동안 내가 웃는 일조차 어색했다.


잠깐 다른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미안했고, 어떤 일에 집중하다 한순간 잊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 미안했다. 상실 뒤의 사람은 슬픔만 견디는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몸의 무심함도 함께 견뎌야 한다. 몸은 자꾸 앞으로 가려 하는데, 마음은 아직 뒤를 본다.


그래도 시간은 간다.


원해서가 아니라 밀려가듯이 간다. 해야 할 일을 하고, 연락을 받고, 가끔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한다. 그렇게 몇 번의 날을 건너고 나서야 알게 된다. 상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농도를 바꾼다는 것을. 어떤 날은 흐리고, 어떤 날은 또렷하다. 잊은 것이 아니라, 같은 자리에서 조금씩 더디어지는 것이다.


불안 속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것이다. 견디는 것과 무너지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지만, 그 한 장을 쥐고 있는 것이 살아가는 힘이라는 것.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 노트를 치우지 못한다.


정리하지 못한 것은 종이가 아니다. 떠난 사람이 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법이다.


살아 있을 때는 몰랐다. 없어지고 나서야 그 크기를 안다. 사랑을 받아보았기에, 그 사랑으로 부족하지만 세상을 품고 세상을 보다 따뜻하게 대하는 자리에 섰다는 것. 나는 이제 해가 지는 곳을 바라본다.


서해의 낙조는 아름답다. 마지막을 향해 가는 빛이 오히려 더 찬란해지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듯, 어쩌면 우리의 삶도 그 이치를 따르는 것일지 모른다.


누군가 떠난 뒤에도 해는 뜨고, 바다는 흘러가고, 별은 밤마다 제자리에 뜬다. 떠난 이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아직 그것을 다 받아들이지 못한다. 다만 가끔 노트를 펼쳐 마지막 연을 읽는다. 삶을 붙잡는 것과 놓아주는 것 사이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꼭 놓아버리는 일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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