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불안, 우리는 왜 끝내 벗어나지 못할까

― 불안 속에서 배우는 것들 (1)

by이화윤 lee hwayoon


밤하늘을 좋아한다. 별들이 빛나기 때문이다. 별이 없다면, 달도 사라질 것이다. 어둠만이 우주를 지배할 것이다. 별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가 태어난 것도 빛이 있어서다.


별이 있는 하늘은 거울처럼 맑고 선명하다. 손을 담그면, 아이의 하얀 피부에 금방이라도 별가루가 반짝거리며 빛날 것 같은 그런 날에는 가끔 별을 보러 간다.


태양계에서 유일한 별은 태양이다. 별은 스스로 빛나는 천체를 말한다. 어릴 때 사람은 별에서 태어나서, 다시 죽으면 별이 된다고 들었다.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여전히 그렇게 믿고 싶다. 아마도 다른 별로 떠난 사람들이 어딘가에 빛나고 있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상실의 불안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이다.



서해의 어느 해변에서 바라본 어두운 하늘은 푸른 물고기처럼 빛나는 별들의 향연이다. 나는 광대한 우주에서 직녀와 견우처럼 애절한 사랑을 하다, 현실에서는 보통 부부처럼 살다 사라진 두 남녀의 사랑의 결실이다. 한 떨기 들꽃이다. 잠시 이 땅에 왔다가 사라지는 운명.


그분들은 이미 자신들이 왔던 곳으로 사라졌다. 왜 아름다운 사람들은 아프게 떠나는 걸까. 고통 없이 떠나는 것도 축복이다. 그 아픔을 지켜보면서 깨달았.


이제는 혼자라는 생각이 정오의 햇살처럼 내려와 내 눈을 불현듯 멀게 한다. 강렬한 통증이 뇌의 표피에서 중앙을 가로질러 심장까지 찌른다. 그 통증에는 이름이 없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고통이 오래간다.


롤랑 바르트는 어머니를 잃은 상실의 마음을 일 년 넘게 일기로 기록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고백한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가르쳐 준 것은,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을 절대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나는 그에 비하여 부족하다. 상실의 불안은 어쩌면 그 미완의 사랑에 대한 죄바카라감이기도 하다.


사랑할수록 아프다는 것. 더 많이 사랑할수록 더 아파해야 한다는 것. 많이 아픈 것은 사랑이 많아서다. 눈물이 많아서다. 가슴이 따뜻하기 때문이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동경과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윤동주 시인은 「별 헤는 밤」에서 그리움의 대상들을 별 하나하나에 담는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그리고 다시 지웠다. 존재의 부끄러움과 소멸의 두려움이 한 문장 안에 공존하는 이 시는 상실의 불안이 자기 성찰과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어머니라는 빛나는 언덕, 자신의 근원적인 것에 이름을 쓰고 지운 시인의 손끝에서 시린 아픔이 느껴진다.


부재가 주는 상실감이 있다.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것. 어릴 때 죽음이 두려웠다. 아니 조금 더 커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어릴 때 천둥, 번개가 치고, 폭풍우가 몰아칠 때, 단단하지 못한 창문이 덜컹거리고, 바람 소리가 공포스럽게 휘몰아칠 때와 같은 충격이다.


꿈속에서 도망치다가 떨어질 때의 공포와도 비슷하다. 다시 올라가려고 해도, 위에서 짓누르는 힘에 다시는 그곳에 도달하지 못하는 단절감. 마지막으로 건넨 그분의 손을 잡았는데, 타의에 의해 강제로 분리되는 초현실적인 실재.



어릴 때 잔병치레가 잦았다. 어지럼증이 자주 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지럼증이 찾아온다. 한 번 오면 몇 시간에서 한나절을 움직이지 못한다.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무기력함. 그것은 내부에서도 오고 외부에서도 온다.


감당하기 힘든 폭풍은 언제나 내가 예상하지 못할 때 와서 나를 흔들어 놓고 떠난다. 창문이 부서지고, 지붕이 파손되어 날아가고, 아끼던 나무가 쓰러지듯이. 겉은 멀쩡해 보여도, 속은 비어 있는 그런 막연한 불안.


어지럼증의 근원을 모른다. 다만 가난해서 혼자서 낳다가 피를 많이 흘렸다고 한다. 죽을 뻔했다고 한다. 엄마는 자주 아팠다. 나를 낳다가 그렇게 되었다. 내가 태어날 때 머리가 너 컸다고. 왜 하필 내 머리가 그렇게 컸던 걸까. 미안하다는 말이 가슴에 울컥 걸린다.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한 사과. 지금이라도 건네고 싶다. 태어남이 누군가에게 고통이었다는 것. 상실의 불안 밑바닥에는 그리움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갚을 수 없는 것을 안고 살아가는 무게가 있다.


가끔 혼자만의 여행을 떠난다. 낯섦, 외로움, 비어 있음. 그 여백의 공간이 나를 대양(大洋)에 내던져진 돛단배처럼 내가 서 있는 땅에서 멀어지게 한다. 내가 집착한다고 영원히 지금 가진 현재를 소유할 수 없다는 진실. 사랑하는 사람도, 나의 현존도 변화하고, 사라진다.


상실의 아픔이 주는 불안은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사건이기에. 이미 알지만 애써 회피하는 그런 단절의 경계선, 막다른 절벽과 같은 지점이다. 사랑하는 이가 떠났다는 현실은 처음에는 인정되지 않는다. 마지막 숨이 멎어도 납득하기 힘들다. 후회와 연민이 찾아온다.


사랑할수록 서로의 아픈 곳을 더 정확히 알게 되고, 알게 된 만큼 더 날카로운 말을 던진다. 자신의 잘못을 상대의 가장 여린 곳에 투사하는 비열함. 나도 그랬다.


가시로 찌르면서, 정작 자신이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을 몰랐다. 그것이 소유와 집착이라면,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덧없이 연기처럼 사라진다면. 그때 아무 말도 하지 않던 그 침묵의 의미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새벽에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한다. 로드킬을 당한 들짐승을 만난다. 빛이 누군가에게는 공포다. 우리는 어둠을 싫어하지만, 어둠 속의 빛이 반드시 희망이 아니라 절망과 죽음일 수도 있구나. 상실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빛이 역으로 어둠이 될 수 있다는 걸. 행복할 때 더 불행해지는 역설. 내가 겪은 경험이 절대적이라고 보지 않음은 반대의 상황을 견딘 누군가도 있기 때문이다.


불안은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옅어지고, 희미해진다. 바쁘게 살다 보니 기억마저도 상실한다.


신체적 결핍에서 오는 불안은 약으로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실존적 불안은 불현듯 찾아와 폭풍우를 만난 배처럼 비구름이 걷힐 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감기에 치료약이 없는 것과 같다. 증상을 다스리며, 견디며 사는 게 불안한 인생을 그나마 살아내는 길이다.


나는 그렇게 견뎌왔다. 힘들 때 쉬었고, 쉰 뒤에 다시 일어섰다. 이를 악물 때도 있었고, 이를 악물 힘조차 없어서 가만히 누워 있기만 한 날도 있었다. 그래도 일어났다. 마음의 근력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상실을 통과하면서 한 겹씩 더 단단해지는 것이었다.


상실로 인한 불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잊혀질 만하면 반복된다. 그때마다 버티고 이겨내는 것이다. 그러면서 담담히, 나도 언젠가 맞이할 그 상실을 준비하는 것이다.


우리는 현재를 사랑하며 살 수밖에 없다. 별은 스스로 빛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소멸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금 이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다.



별은 어둠 속에서 태어나, 어둠 위에 빛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