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지키고 있던 것들
예전 같으면 넘겼을 일을 넘기지 못하는 날이 있다.
별일도 아닌데 마음에 오래 남는다. 상처받을 일도 아니고, 따져 물을 일도 아니다. 그런데 돌아오면서까지 자꾸 되새긴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속이 타오르는 듯하다. 곧 자신에게 들이닥칠 불행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가슴이 서늘해지고, 무언가 자신을 누르는 압박감이 속으로 죄여든다.
예전에는 이 정도쯤은 아무렇지 않았는데. 아마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불안을 견디기 위해 저마다 방법을 만든다.
예상할 수 없는 사건이 찾아온다. 이직, 해고, 실패, 기대와 다른 결과. 그동안 평온했던 마음이 순간 아수라장이 된다. 그래서 사람은 대처법을 만든다. 신체 반응이 와도 일단 참는 법을 배운다. 예전의 불쾌했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같은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애쓴다. 감정을 숨기거나, 자신의 감정을 다르게 해석하기도 한다. 남보다 더 잘하려 한다. 최악을 먼저 상상해서 실망을 줄이기도 하고, 기대 수준을 아예 낮춰버리기도 한다.
처음에는 꽤 효과가 있다. 상처받을 가능성을 줄이고, 갈등을 피하고, 어려운 시간을 버티게 해준다. 한동안은 그 방식 덕분에 지나온 시간이 많다. 그래서 유사한 상황을 마주칠 때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나는 왜 이렇게 걱정이 많을까. 그래도 잘 참으니까 다행이야.
그런데 이렇게 계속 반복되면, 습관처럼 굳어진 정체된 어딘가에서 비 오지 않은 습지처럼 흐려지고 탁해지는 것들이 있다.
그러면서도 '괜찮아지면'이라고 말한다. 괜찮아지면 바꿔야지. 괜찮아지면 시작해야지. 그런데 괜찮아지는 때는 잘 오지 않는다.
나도 오랫동안 그렇게 살았다.
불안하면 더 준비했다. 힘든 일이 닥치면 지나갈 때까지 버텼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안으로 삼켰다. 감정보다 바카라임을 앞세우면 하루가 어떻게든 지나갔다. 불안이 올 때마다 견디고, 무너지면 다시 일어서고, 또 무너지면 기력이 조금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일어섰다.
그런데 몸이 먼저 멈추었다.
극심한 허리 통증이 왔다. 걷기도 힘들고, 누워 있을 때조차 아픔이 파도처럼 쉬지 않고 몰아쳤다. 맡은 일을 잘하려고 무리한 모양이다. 쉼이 없이 일하다 보니 눈이 먼저 망가졌다. 망막이 손상되어 수술을 했고, 6개월간 안대를 하고 다녔다. 허리도 망가졌다. 그동안 몸이 힘든 줄도 모르고 살았나 보다.
그래도 처리해야 할 일들은 연이어 밀려왔다. 참고 해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전혀 서운하지 않았다. 누구나 내가 아픈 만큼의 깊이를 알지 못한다. 모든 것은 내 바카라임이라고 생각했다.
몸이 아프니 세상의 모든 것이 아무 의미가 없었다. 내가 소유한 것들이 신기루처럼 사라져갔다. 세상이 초현실주의 그림처럼 일그러져 보이는 현실적 충격 속에서, 나라는 존재의 약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이 비현실적 현실이 실제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다행히 시력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다시 회복되었다.
내가 가치 있다고 판단한 길을 걸어왔으니 후회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길을 돌이켜보니, 선택한 것보다 놓쳐버린 것이 더 선명했다.
엄마, 아빠가 먼저 떠올랐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할 걸. 더 자주 여행 가고,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드릴 것을. 이미 돌아가신 뒤에야 후회했다. 살아 계실 때는 항상 다음이 있을 줄 알았다. 다음은 없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곁에서 더 지켜주고 사랑해 줄 걸. 아내를 더 아끼고, 더 자주 사랑한다고 말할 걸. 세상에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쏟은 열정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나눠줄 걸.
가장 쉬운 것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깨닫고 후회하는 일. 그것이 사랑이었다.
조금 더 사랑할걸.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
이 시련이 없었다면, 죽을 때까지 온몸으로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스치는 생각이다. 현실은 언제나 나를 가만두지 않는다.
돌이켜보니 '괜찮아지면'이라고 말했던 시간이 길었다. 조건은 시대마다 바뀌었다. 하나가 해결될 즈음이면 다음 것이 이미 와 있었다. 한 번도 동시에 충족된 적이 없었다. '괜찮아지면'이라는 말은 시작의 조건이 아니었다. 시작하지 않기 위한 변명이었다. 그 핑계를 내세운 것이 세상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불안한 상황을 피하려고 미뤘던 수많은 시간이, 정작 가장 중요한 것들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든 시간이기도 했다. 차라리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가갔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내려놓지 못해서 생긴 수많은 불안이, 정작 가장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을 놓치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아무도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
불안했던 자리마다 내가 놓지 못한 것이 있었다.
성과가 불안했던 자리에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미래가 무서운 자리에는 살아보고 싶은 삶이 있었다. 사람이 불안한 자리에는 잃고 싶지 않은 누군가가 있었다.
불안은 빈 곳에서 오지 않았다. 소중한 것이 있는 곳에서 왔다.
누워서 아플 때 '조금 더 사랑할걸'이라고 후회한 것도 같은 자리에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불안했고, 불안했기 때문에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더 잘하느라 정작 사랑하는 일을 미뤘다.
지금도 괜찮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부족하고 나약하다.
다만 부족하고 나약하다는 것을 인정한 뒤, 자아에 대한 집착이 많이 줄었다. 나의 존재적 취약성을 알고 나니, 집착했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보았다. 무거운 것이 내려갔다. 그래도 일의 무게, 내게 주어진 삶의 무게 자체는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내가 누군가에게 주는 무게는 조금 더 가볍게 할 수 있다. 그게 내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면 좋겠다.
예전에는 뭔가를 해야 했다. 성과가 있어야 했다. 의미가 있어야 했다.
지금은 나를 위한 의미가 아니라 내가 세계와 더불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날들 쪽으로 마음이 향한다.
그것이 불안 속에서 배운 것이라면, 배운 것치고는 너무 쉬운 것이었다.
그런데 그 쉬운 것을 알기까지 이렇게 오래 걸렸다.
사랑은 내가 받은 불안과 상처를 상대에게 건네지 않으며,
서로에게 완전한 빛이 아니어도 정작 필요한 그 때에 곁에 머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