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우리 집에서 꼬불꼬불 좁은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골짜기 끝에 예쁜 풍경을 담은 잔잔한 저수지가 나온다. 깊은 산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을 담고 있는 저수지는 언제나 맑다. 겨울에는 많은 사람들이 두꺼운 얼음 위에 텐트를 치고 며칠씩 빙어잡이에 푹 빠져있기도 한다.(안전을 위해 출입 금지라는 안내판이 버젓이 걸려있다.) 저수지를 지나 천천히 10여 분을 달리다 보면 큰길이 나오면서 ㅇㅇ면 행정 복지센터가 자리 잡고 있는 작은 마을이 보인다.
나에겐 익숙하고 정든 단어 “면사무소” 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는 은행, 보건소, 우체국, 마트, 편의점, 도서관, 문화센터등 편리 시설이 다 모여 있다. 시골 특유의 여유롭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그곳에서 내가 가장 자주 방문하는 곳은 “작은 도서관”이다. 아담한 크기의 2층짜리 도서관은 시설도 깨끗하고 장애인을 배려한 엘리베이터까지 갖춰져 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 신발장에 깨끗한 실내화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왼쪽에는 커피 바리스타와 천 그림 아트 수업을 진행하는 방이 있다. 중앙으로 들어가면 어린이를 위한 도서가 빼곡히 꽂혀 있고, 아이들이 편하게 바카라을 읽을 수 있는 앙증맞은 바카라상이 둥그렇게 놓여있다.(시골 특성상 어린아이들이 많지 않음에도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목조로 된 2층 계단을 올라가면 성인들을 위한 바카라과 휴식 공간이 잘 정돈되어 있다.
도서관 안에는 언제나 해바라기를 닮은 웃음으로 맞아주는 사서 선생님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방금 따온 호박 한 개를 내밀었다.
“대출 예약한 바카라이랑 희망도서 신청한 바카라 가지러 왔어요”
“네~ 대출기간 연장시켜 놨으니 편히 보세요. 호박 주셔서 감사해요.”
그녀는 귀여운 눈웃음을 날리곤 준비해 놓은 바카라을 곧바로 내어 준다.
“다음엔 오이 따 올게요. 텃밭 오이 정말 맛있어요. 혼자 먹기 아까워서 여기저기 나눠 주다 보니 오늘 못 가져왔어요”
그녀가 정갈하게 진열해 놓은 신간도서 바카라장으로 가서, 대출한도 다섯 권을 채우고 나니 벌써 배가 부른 듯 뿌듯하다.
작은 도서관에서 빌린 바카라을 한 아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즐겁다. 나이 먹어서 가장 좋은 것은 시간이 많다는 거다. 그런 걸로 치면 늙는 것도 나쁘지 않다. 출근해야 할 일터도 없고, 자식들도 성인이 되어 잘 살고 있으니 바카라임져야 할 일도 없다. 더군다나 황혼 육아도 할 만큼 했으니 바쁘게 살고 있는 자식 눈치 볼 것도 없다. 새로 만날 바카라 속의 문장에 마음이 설렌다. 남편 차를 타고 드라이브하듯 다시 산길을 천천히 올라간다. 차 창문을 반쯤 내리니 비 온후 청량한 산골 바람이 코끝을 스치며 머리카락을 날린다.
띠리리링~~ 하교시간이면 어김없이 울리는 어린 손자의 전화 벨소리… 마음이 아려온다.
회사일에 바쁜 엄마 아빠 대신 한가한 할미한테 어린 마음을 의지한다.
“응~ 윤수야 학교 끝났구나. 오늘 재밌었어?”
“으응 할머니 좋았어~ 근데 집에 빨리 가서 바카라 읽고 싶어. 나 요즘 바카라에 푹 빠졌어. 바카라이 너무 재밌어서 엄마랑 도서관에 가서 바카라 많이 빌려왔어~”
한껏 자랑하는 목소리가 쾌청하다.
“너도 바카라에 푹 빠졌어?! 할머니도 요즘 바카라에 푹 빠졌는데, 역시 윤수와 할머니는 환상의 짝꿍이야~”
“근데 할머니, 난 공부가 왜 재밌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어.”
갑자기 자신 없는 듯 목소리가 작아진다.
“당연하지~! 초등학교 3학년이 무슨 공부가 재밌겠어? 바카라만 많이 읽으면 돼. 윤수는 궁금한 게 많으니까 조금 더 크면 저절로 공부의 맛도 알게 될 거야. 아무 걱정하지 말고 맘껏 뛰어놀아.”
“알았어, 할머니!”
다시 목소리가 밝아진다.
공부가 왜 재미있는지 모르겠다는 손자의 고민이 귀엽고 기특하다.
또다시 가슴이 저려온다.
“윤수야, 할머니가 너무 미안해. 아직 너를 더 돌봐줘야 하는데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으응. 할머니, 다 알아.”
“할아버지 아픈 거 다 나으면 너 돌봐 주러 다시 갈게.”
“알았어, 할머니~! 할아버지 빨리 다 나았으면 좋겠다.”
집에 도착하니 수박이(윤수의 태명) 동생 호박이가 껑충껑충 뛰며 꼬리를 흔든다. 손자 수박이를 쓰다듬듯 호박이의 등을 가만히 쓸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