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마리 새끼 고양이
모처럼 얻은 한가로움에 방안에 벌렁 누웠다. 늦은 오후 흐린 날씨 때문일까? 더 고요해진 산골마을 뒷산에서 뻐꾸기가 뻐꾹뻐꾹 울고 있다.
눈을 감고 뻐꾸기 우는 소리를 따라 산속을 헤매고 있는데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휴. 왜 또 부르는 거지? 가만히 쉬는 꼴을 못 보는구나.” 하면서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텃밭에서 고춧대를 고정시키고 있던 남편이 창고에서 끈을 가져오란다. 남편이 건강했을 때는 모든 일을 혼자 다 했는데, 아프고 나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도 꼭 나와 함께 하길 바란다.
혼자 일하는 게 외로워서인지 내가 쉬고 있는 걸 훼방 놓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지만, 다툼의 빌미를 만들고 싶지 않아 끈을 가지러 창고로 갔다.
어머나!!! 깜짝이야!! 아휴 어떻게 해!?
조용한 산골에 울려 퍼지는 내 비명 소리에 남편이 놀라 급히 창고로 왔다.
“왜? 왜 그러는데?”
나는 펄떡이는 심장을 누르며 아무런 대답도 못하고 뒷걸음질 치면서 수납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내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던 남편은 "어! 이게 뭐야? 고양이가 여기에 새끼를 낳았구나" 하며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띠었다.
나는 유독 고양이를 무서워한다. 그런데 아무 생각 없이 끈을 꺼내려고 수납장 문을 벌컥 열었다가 아기 고양이 두 마리의 커다란 눈과 딱 마주쳤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고양이를 본 건 처음이었다.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커다란 눈도 놀라웠지만, 발톱은 어찌나 길고 날카로운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새끼들도 나를 보고 놀랐는지 구석으로 꾸물꾸물 숨어 들어갔다. 그 녀석들이 들어간 구석에는 또 다른 세 마리의 새끼 고양이가 서로 엉켜 붙어 있었다.
모두 다섯 마리의 커다란 열개의 눈이 동시에 내 얼굴에 꽂혔다. 날카롭고 긴 발톱까지.
마음을 진정시키고 자세히 보니, 작고 가여운 새끼들이 어미도 없는 곳에서 서로 의지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다. 남편도 나도 처음 겪는 일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우선 수납장에서 새끼 고양이들을 꺼내 놓기로 하였다. 상자를 가져와 스티로폼을 깔고 부드러운 천을 그 위에 다시 깔았다. 남편은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웃음을 흘리며 "이놈들!! 가만히 있어." 하며 조심조심 한 마리씩 상자에 옮겨 담았다
나는 어미 고양이가 걱정되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리저리 찾아보아도 어미 고양이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새끼를 낳고 먹이는 제대로 먹었는지, 홀로 다섯 마리 새끼를 어떻게 건사하고 있는지, 산모 고양이에 대한 측은함이 밀려왔다. 평소에 들고양이가 비닐하우스 안을 헤집어 놓고 온통 발자국을 남겨 놓는 통에 고양이라면 질색하였지만, 지금 옆에 있다면 당장이라도 고깃국을 끓여 주고 혼자 애썼다고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새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것은 얼마나 신비롭고 숭고한 일인가.
새끼 고양이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 이웃집으로 갔다. 얘기를 들은 이웃분들이 새끼 고양이를 본다며 우리 집으로 모두 모였다. 새 생명을 바라보는 이웃분들의 얼굴에 어린아이 같은 미소가 흐른다.
"복덩이가 들어왔네. 다섯 마리씩 낳아 놓다니. 내쫓지 말고 다 키워." 모두들 한 마디씩 던진다.
마을분들은 들고양이 피해가 많다 보니 고양이를 싫어하고 개체수가 많아질까 염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태어난 생명에 대해선 관대하다. 온 눈으로 뒤 덮인 겨울이 되면, 먹이를 찾아 헤매는 고양이가 안쓰러워 길가에 먹이를 놓아주기도 하고 서식지에 담요를 놓아둔다. 어차피 태어난 생명체이니 상생의 길을 택한 것이다.
"사람 손을 탄 새끼 고양이는 어미가 와서 데려갈 거야. 상자를 길가 한쪽에 잘 놓아두면 돼."
오랜 시골 생활에 익숙한 이웃분이 난처해하는 우리에게 해결바카라을 주었다.
혹시 몰라 물그릇을 넣은 상자를 어미 고양이가 다닐만한 길에 놓아두었다. 새끼 고양이들은 배고픈 듯 애타게 야옹거리며 어미를 찾고 있다. 행여 우리가 있으면 어미가 오지 못할까 봐 멀리서 어미가 나타나기만 기다렸다.
캄캄한 밤이 되었는데도 어미 고양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으니 고양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 하는 수 없이 챗 GPT에게 사진을 찍어 보여주고 배고픈 아기 고양이를 어떻게 할지 물어보았다. 챗 GPT가 가르쳐 준 대로 강아지 사료를 뜨거운 물에 불려 입자를 묽게 만든 다음 그릇에 담아 넣어 주었다. 춥지 말라고 상자 위에 타월도 덮어 주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아기 고양이를 살피러 갔다. 텅 빈 상자를 기대하며 타월을 걷어보았다. 그러나 다섯 마리 모두 옹기종기 모여 낑낑대고 있었다. 우리가 아기 고양이를 옮겨 놓아 어미가 새끼를 못 찾은 것인지, 아니면 새끼를 포기하고 어디로 멀리 떠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섯 마리의 생명을 나 몰라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저 많은 고양이를 다 키울 수도 없어 너무 걱정되었다. 어미 고양이가 물 먹으러 오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상자를 한적한 개울가 근처로 옮겨 놓았다.
외출하고 돌아오자마자 개울가로 갔다. 다행히 세 마리는 옮겨갔는지 두 마리만 남아 아등바등 상자를 벗어나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아기 고양이와 사람 눈을 피해 새끼들을 옮기고 있는 어미 고양이 모두 안쓰러웠다.
“너희들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엄마가 곧 데리러 올 거야.”
얼마 후 다시 가 보았을 때 아기 고양이가 다 사라지고 덩그러니 빈 상자만 놓여 있었다. 조렸던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휴우. 안심이다. 다섯 마리를 내가 키우게 될까 봐 무척 걱정했는데 데려가 줘서 고맙다.”
나중에 어미가 먹을 수 있게 사료를 듬뿍 담아 후미진 개울가에 놓아주고 뒤돌아섰다.
며칠 후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에, 도로 한 복판에서 어미 고양이와 아기 고양이 다섯 마리를 만났다.
온 가족이 산바카라을 하는지 어미는 양쪽에 아기 고양이들을 거느리고 평화롭게 도로 한 복판을 걷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차를 세우고 고양이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하지만, 순식간에 고양이 가족의 평화가 깨졌다. 차를 보고 놀란 아기 고양이들이 당황하여 사방으로 흩어졌다. 어미 고양이는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못하며 애타게 아기 고양이들을 불러 모은다. 새끼 다섯 마리를 건사하느라 동분서주하는 어미 마음에 동질감이 느껴졌다.
"얘들아, 괜찮아. 너희들 다 갈 때까지 차가 움직이지 않을 거야. 걱정하지 말고 엄마 따라가."
"근데!! 너희 아빤 어디 갔니? 엄마 혼자 다섯 마리 독박육아잖아!!"
문득 아빠 고양이의 행방이 궁금해졌다.
'아빠 고양이는 어디 있을까?'
어미 개가 올망졸망 주먹만 한 강아지에게 젖을 먹이고,
어미 닭이 노란 병아리 떼를 이끌고 모이를 찾아다닐 때.
정말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