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직접 계획한 4박 5일의 여행, 그 길 위에서 건네받은 삶의 온기
거친 파도를 건너 삶을 일구어낸 이들의 바다 앞에서, 평생 가족의 든든한 돛대가 되어준 두 아버지의 깊고 묵직한 세월을 가만히 보듬어봅니다.
살아가다 보면 부모와 자식의 자리가 조용히 교차하는 순간을 마주하곤 합니다. 늘 아이의 손을 쥐고 앞장서서 세상을 가르쳐주던 부모가, 어느 날 문득 훌쩍 자란 아이의 듬직한 등을 바라보며 그 뒤를 따르게 되는 그런 순간 말입니다.
어제, 저희 집에는 아주 특별하고도 뜻깊은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들이 오랜 친구와 함께 두 집안의 아버지를 모시고 4박 5일 핼리팩스 로드트립을 떠난 것입니다.
비행기 편을 알아보고, 숙소와 렌터카를 챙기고, 늦가을 대서양의 바람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동선을 짜는 일까지. 어느 것 하나 어른의 손을 빌리지 않고 아들이 스스로 모든 일정을 계획했습니다. 평소 서로 각별한 신뢰를 나누어온 남편과 친구의 아버지를 위해, 두 청년이 직접 길잡이를 자처하고 나선 것입니다.
공항으로 떠나는 아들의 손을 맞잡으며 "정말 잘했다, 참 고맙다" 하고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 말끝에는 대견함을 넘어,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정성을 내어줄 줄 아는 어른으로 자라주었다는 벅찬 감사가 담겨 있었습니다.
늦가을 하늘 아래 우뚝 솟은 오래된 돛대처럼, 언제나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던 아버지의 손을 이제는 훌쩍 자란 아들이 다정하게 이끕니다.
오후 늦게 핼리팩스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과 함께 사진 몇 장이 도착했습니다. 미리 예약해 둔 차를 타고 늦가을의 차분한 공기가 내려앉은 한적한 고속도로를 달려, 노바스코샤의 유서 깊은 항구 마을 루넨버그에 닿았다고 했습니다.
보내온 사진 속 루넨버그 하버는 참 고즈넉했습니다. 낮 동안의 분주함을 비워낸 포구에는 출항한 배들의 빈자리 위로 잔잔한 물결만이 일렁이고 있었고, 늦가을 하늘 아래 우뚝 솟은 오래된 범선의 돛대가 서정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특히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이들을 기리는 '어부의 헌사(Fishermen's Tribute)' 기념비 사진을 보며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가족이라는 배를 온전히 이끌기 위해 평생 거친 인생의 파도를 묵묵히 버텨냈을 두 아버지의 세월이 그 검은 석비 위로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청춘과 피로는 늘 깊은 바닷속에 묻어둔 채 가장의 바카라임을 다해왔던 두 아버지. 이제는 그 아버지들이 다 자란 두 아들이 놓아준 징검다리를 딛고 서서, 비로소 어깨의 짐을 내려놓은 채 편안하게 바다를 마주하고 계셨습니다.
마주 앉은 자리마다 따뜻한 눈빛이 오가고, 정성스레 채워진 식탁 위로 두 세대가 나눈 다정한 웃음이 은은한 불빛처럼 번져갑니다.
루넨버그의 호젓한 산바카라로를 걸은 후, 네 사람은 밤이 내린 핼리팩스 다운타운으로 돌아와 첫날의 저녁 식사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목재 데크로 이어진 워터프론트의 불빛을 배경으로, 신선한 붉은 참치와 연어 구이, 바삭한 크로켓이 놓인 따뜻한 식탁이 차려졌습니다.
두 아버지가 건네는 오랜 덕담과, 그 여정을 든든하게 이끄는 두 청년의 밝은 웃음소리가 그 식탁을 얼마나 따스하게 채웠을지 눈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여행의 참된 의미는 명소를 둘러보는 것에만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제는 아들이 아버지의 보폭을 배려하며 길을 안내하고, 아버지는 자식이 건네는 손을 기꺼이 잡으며 느긋하게 세상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 그렇게 두 세대가 나란히 발을 맞추며 서로의 인생을 위로하고 지지해 주는 시간이야말로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늦가을 대서양의 바닷바람은 차가웠겠지만, 아들이 정성스레 열어준 그 길 위에는 사랑과 다정함이라는 온기가 가득했습니다.
두 아버지에게는 자식에게서 받는 더없이 평온한 쉼표가, 두 아들에게는 부모와 친구를 향한 깊은 사랑을 확인하는 단단한 계절이 되기를. 남은 나흘의 여정 동안 네 사람의 마음에 평생 따스하게 빛날 아름다운 기억들이 소복이 쌓여가기를 조용히 응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