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했던 그 얼굴에 차마 돌을 던질 수 없었다

영화 <암살자(들)>를 보고 돌아오는 저녁 버스 안에서

"칼바람 부는 벌판에 홀로 선 채, 온몸으로 겨울을 견뎌야 했던 그 시절의 우리처럼."



극장을 나와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익숙한 가을밤의 네온사인이 번져 흐르고, 덜컹이는 버스의 리듬에 맞춰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오랜 기억들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영화 <암살자(들)>. 1974년의 그 비극적인 총성과 혼돈을 다룬 스크린 속에서, 극장을 나서는 사람들은 유해진 배우가 연기한 그 나약한 인물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곤 했습니다. 왜 더 일찍 말하지 못했느냐고, 왜 박해일처럼 끝까지 맞서 외치지 못하고 비겁하게 입을 다물었느냐고.


하지만 나는 어두운 객석에 앉아 그 메마르고 흔들리던 눈빛을 보는 내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먹먹함에 짓눌려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차마 돌을 던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침묵은 비겁함이라는 두 글자로 쉽게 베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살아야만 했던 자의 처절한 공포였고, 지켜야 할 가족의 온기 앞에서 꺾여야 했던 한 연약한 인간의 눈물이었습니다.


문득 80년대, 매캐한 최루탄 연기가 청춘의 하늘을 덮어버렸던 그 시절의 캠퍼스가 떠올랐습니다.


손수건으로 코를 틀어막고 눈물을 흘리며 달아나던 골목길, 그리고 어디론가 끌려가 차가운 지하실에서 뼈마디가 부서지는 고문을 당했던 내 벗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평생을 성치 않은 몸으로 골골대며 시대의 형벌을 고스란히 짊어진 채 살아가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같은 시대를 건너면서도 시류를 타고 안락한 삶의 궤도에 오른 이들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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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곳이 있어 차마 용감할 수 없었던, 무거운 발걸음의 슬픈 뒷모습."



삶이란, 그리고 역사란 얼마나 가혹하고 부조리한지요. 총칼이 눈앞을 겨누던 그 엄혹한 시절, 끝까지 양심의 깃발을 들고 부서져 내린 이들도 있었지만, 살아남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숨죽여야 했던 수많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안전하고 온화한 오늘날의 잣대로, 그 시절 가족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떨리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던 그들의 나약함을 누가 감히 단죄할 수 있을까요.


영화 속 박해일이 우리가 영원히 닿고 싶은 '용기의 표상'이었다면, 유해진은 거대한 역사의 맷돌 사이에 끼어 바스러지던 '우리 대다수의 초상'이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그 시절의 그 자리에 서 있었다면 총구 앞에서 당당하게 진실을 외칠 수 있었을까요. 아니면 처자식의 얼굴을 떠올리며 흐느끼듯 침묵을 삼켰을까요.


대중은 너무나 쉽게 선과 악을 가르고, 타인의 나약함에 가차 없는 분노를 쏟아냅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게 단순한 흑백으로 칠해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살아남는 것 자체가 매일의 공포였던 시대를 통과해 온 이들에게, 나약함이란 때로 가장 서글프고 인간적인 생존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 찬 바람이 옷깃을 스칩니다.


분노와 심판의 목소리가 가득한 세상이지만, 나는 오늘 밤 그 모진 시대를 온몸으로 버텨낸 모든 아픈 청춘들과, 끝내 영웅이 되지 못해 슬펐던 그 시절의 수많은 나약한 영혼들에게 조용히 마음의 꽃 한 송이를 건네고 싶습니다. 비겁해서가 아니라, 그저 살아가야 해서 슬펐던 그 모든 당신들에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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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속에 메마른 상처를 품은 채, 우리는 또다시 묵묵히 내일의 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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