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르지 않아도, 숲은 우리를 품어준다

늦가을 완만한 둘레길에서 만난 성장과 비워냄의 시간

계단이 없어도, 가파르지 않아도, 길은 우리를 숲의 가장 깊은 곳으로 다정하게 이끕니다.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 끝이 서늘해지면, 산자락의 나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한 해 동안 품어온 초록빛을 내려놓기 시작합니다. 초록이 물러간 자리에는 저마다의 시간을 묵묵히 견뎌낸 붉고 노란 결들이 깊고 맑은 채도로 차오릅니다.


어릴 적이나 젊은 시절의 산행은 늘 정상을 향한 분투였습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허벅지가 팽팽해지는 가파른 바위산을 악착같이 올라야 무언가를 해냈다는 안도감을 얻곤 했습니다. 뒤처지지 않으려 보폭을 넓히고, 앞선 이의 뒤꿈치를 쫓으며 흘리던 땀방울을 우리는 열정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삶의 계절이 깊어지며 걸음걸이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굳이 가파른 능선을 오르지 않아도, 턱과 계단이 없는 완만한 데크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숲의 온기는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것을 알게 된 덕분입니다.


경사도 8% 이하의 완만한 무장애 숲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다정한 풍경들이 비로소 눈높이로 다가옵니다. 바람에 바스락거리며 길 위로 사뿐히 내려앉는 낙엽의 궤적, 굽이진 나무 기둥의 묵은 나이테, 그리고 잎을 비워낸 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투명한 늦가을 햇살까지. 발밑을 조심하느라 땅만 보며 오르던 시절에는 결코 보이지 않던 다정한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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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르지 않고 곁을 돌아볼 때, 비로소 눈높이로 다가오는 작은 온기들이 있습니다.



상담실과 교실에서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마음을 마주할 때도 문득 이 완만한 둘레길을 떠올립니다. 우리는 종종 아이에게도,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가파른 계단을 한 번에 두 칸씩 뛰어오르라며 등을 떠밀곤 합니다. 남들보다 한 걸음이라도 먼저 정상에 닿아야 한다는 조급함이, 곁에 핀 들꽃을 바라볼 여유조차 앗아가 버리는 것이지요. 발걸음이 조금 느린 아이를 보며 애를 태우는 부모님의 떨리는 손을 잡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가만히 읊조리곤 합니다. '성장의 온전한 시간은 결코 가파른 직선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요.


조금 돌아가더라도 평평한 길 위에서 차분히 숨을 고르고, 흔들리는 발걸음을 다독이며 함께 보폭을 맞추는 그 완만한 시간 속에서 비로소 마음의 단단한 근육이 자라납니다. 가파르지 않아도, 길은 마침내 숲의 가장 깊고 그윽한 중심으로 우리를 데려다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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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워내야만 새봄을 맞이할 수 있다는 순리처럼, 오늘 하루 무거운 짐을 가만히 내려놓습니다.


발밑에 부드럽게 밟히는 낙엽을 보며 생각합니다. 나무는 왜 그토록 눈부시게 물들인 잎들을 미련 없이 바닥으로 털어내는 것일까요. 무겁게 쥐고 있던 것들을 기꺼이 비워내야만, 다가올 겨울의 모진 한파를 견디고 찬란한 새봄의 싹을 틔울 수 있다는 것을 자연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채우는 것에만 익숙해져 숨이 찰 때, 비워내는 나무의 순리는 우리에게 참 많은 위로를 건넵니다. 오늘 하루, 너무 높이 올라가려 애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거친 바위산이 아니어도, 이 고즈넉하고 완만한 숲길은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따스하게 품어주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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