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지 않는 부모의 시선이 머무는 곳
6월의 초록이 창밖을 가득 채우는 이맘때가 되면, 교육 현장과 상담실은 묘한 긴장감으로 채워집니다.
학년말이라는 반환점을 돌며 아이들이 받아드는 성적표와 결과물 때문입니다.
"한 학기 동안 고생 많았다"라는 다정한 말 대신,
나도 모르게 숫자를 먼저 확인하고 날카로운 화살을 던진 후
밤새 후회하는 부모들의 한숨 소리가 상담실 문턱을 넘어오곤 합니다.
상담학을 전공하고 오랜 시간 특수교사로 살아가며 수없이 되뇌는 문장이 있습니다.
아이와 부모 사이의 대화가 평행선을 달리는 것은 결코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단지,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이 조금 달랐을 뿐입니다.
몇 해 전, 등수와 서열이 존재하지 않는 캐나다의 교실을 깊이 마주했을 때의 일입니다.
그곳의 풍경은 신선한 충격을 넘어 제 교육 철학에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그곳에는 1등도, 꼴찌도 없었습니다.
학기 말에 아이들이 받는 성적표에는 차가운 숫자가 아닌, 아이가 지난 학기에 비해 얼마나 성장했는지,
어떤 부분에 땀방울을 흘렸는지가 따뜻한 문장으로 빼곡히 적혀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친구의 점수를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신이 완성한 서툰 그림과 프로젝트를 당당하게 소개했고,
친구들은 그 고유한 색깔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교사 역시 누가 가장 잘했는지를 묻지 않고, "이 과제를 하며 너의 마음은 어땠니?"를 질문했습니다.
비교가 사라진 그 자리에는 온전한 '내 아이의 속도'와 '내 아이의 고유함'이 숨 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옆집 아이의 진도와 타인의 시선이라는 자대로 내 아이의 가치를 재단하곤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자녀 대화법의 비밀은 화려한 말재주나 대단한 심리학적 기술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이의 '결과'가 아닌 '과정'을 지지해 주는 부모의 단단한 시선에서 시작됩니다.
"이번 시험에서 몇 점 맞았니?"라는 다그침 대신,
아이가 바카라상 앞에서 보낸 묵묵한 시간을 읽어주는 것.
다른 아이와 비교하며 등을 떠밀기보다,
"너만의 속도로 차근차근 나아가면 돼"라고 아이의 과거와 현재만을 비교해 주는 것.
그리고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쏟아내는 서툰 감정들을
이성적인 잣대로 훈계하기 전에 온전히 안아주는 것.
그것이 제가 캐나다의 숲과 교실에서 배운 가장 아름다운 소통의 기술이었습니다.
모든 나무가 저마다의 계절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듯,
우리 아이들도 저마다의 속도로 자라납니다.
옆 나무가 먼저 꽃을 피웠다고 해서 내 나무를 흔들거나 다그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오늘 밤, 한 해의 절반을 무사히 지나온 아이의 손을 가만히 잡고 온기를 나누며
이렇게 한마디 건네보면 어떨까요.
"올 상반기 동안 네 자리에서 피어나느라 정말 고생 많았어.
엄마는 네가 네 모습 그대로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하단다."
부모의 시선이 결과에서 '존재'로 옮겨가는 그 찰나의 순간,
아이의 닫혔던 마음 문이 열리고 우리 가정 안으로 치유와 회복의 따뜻한 바람이 불어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