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빌어주는 사이

by배지

며칠 전 사랑스러운 조카가 태어났다.

벌써 나에게 있어 세 번째 조카지만

나의 아이들이 벌써 내 키를 넘어서는

장정이 되어버려 그런지

태어난 지 하루가 된 나의 조카는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덩어리 그 자체로 보였다.

유리 너머로 보는 순간 사랑에 빠진 것과 동시에

그 아기가 아주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작고 소중한 나의 세 번째 조카.


우리 집 강아지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맛있는 간식을 잔뜩 주고 싶다.

오늘은 간식을 주는 걸 잊고 있다가

개가 말은 할 줄 몰라서 말은 못 하고

씩씩대면서 인형에 매달린 플라스틱을

마구마구 뜯길래 그제야 생각난 내가

아이구 미안해하면서

기다란 우피간식을 던져주니

아주 세상에서 제일 신이 나서

하찮은 수제비 귀를 달랑거리면서 물고 가는데

우리 강아지가 행복하니까 나도 행복했다.


우리 집 아들들도 맛있는 거 먹으면서 신나 해 하면

나도 너무 신나고 행복하다.

땀 찔찔 흘리면서 꼬질꼬질하게

자전거 타면서 기뻐하면

나도 같이 기쁘다.


사실 나는 스스로의 행복을 매우 잘 찾는 편이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특별히 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게 아니면

하고 싶은걸 모두 다 하는 편이다.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쿠팡으로 재료를 시켜서 해 먹고

사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걸어가서 사 먹고

노래를 하고 싶으면 크게 노래하고

길거리에 쭈그려 안고 싶으면 그냥 철퍼덕 안기도 한다.

달리다가 길거리에 열려있는 오디열매를 보면 대충 손으로 막 집어 먹기도 한다.

그냥 나는 그런 것이 행복하다.

여행이 가고 싶으면 무리다 싶어도 어찌저찌

엄마한테 애들 부탁하고 적당히 못하는 게 있어도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간다.




40이 되니 PT를 받아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11자 복근이 만들고 싶어졌다.

마라톤 완주를 해보고 싶었을 때는 대강 나 혼자

꾸준히 달리기 연습을 하면 되었었는데

태어나서 한 번도 PT를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11자 복근을 만들기 위해서는 PT 도움이 꼭 필요해 보였다.

그래서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마음을 먹고

무심코 남편에게도 내 계획을 정보차 공유했다,

PT를 받을 거라고.


남편의 얼굴이 표정이 싹 굳어지면서 샐쭉해진다.

내가 PT를 받는다는 게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었다.

본인은 하고 싶은 것도 별로 없어서 할 것도 없는데

내가 하고 싶은 걸 야무지게 찾아서 하는 게 베알이 틀리고

남자 트레이너한테 받는 것도 너무 싫다고 한다.


남편은 명백하게, 내가 행복한 것이 본인은 불행하다.

자기는 안행복한데

내가 너무 행복하게 잘 지내는 게 배가 아파 죽는다.

내가 혼자 알아서 행복하면

그게 남편은 너무 기분이 나쁘다.


나의 행복을 불행해하는 남편과

남편의 행복에 별로 관심 없는 나.


남편은 내 행복을 알게 되면 알 수록

심기가 불편해하니

새초롬하게 불편해하는 그 얼굴을 보면

나도 너무 불편해져서

나는 내 행복을 남편에게 공유하지 않는 게

내가 행복한 길이 된다.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할 망정

혼자 찾은 행복도 공유할 수 없는,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지 않는 그런 부부관계.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던 것 같다.

당신도 좋아하는 걸 찾으라고 남편을

격려도 하고 떠밀기도 하고 했는데

남편은 행복을 느끼는데 별로 재능이 없고

게다가 내가 행복할 때마다

남편이 못마땅해하는 모습을 보면 볼수록

그냥 저렇게 살다 가겠네 어느 순간 포기했던 것 같다.


서로를 웃겨주고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부부들을 보면

참 부럽고 아름답다.


행복을 빌어주는 사이는

정말 아름다운 관계다.


적어도,

나와 나의 개의 관계,

나와 내 신생아조카 사이의 관계는

아름답고 충만하다.

그래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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