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지문 - 뺨을 스치는 차갑고도 따스한 안부

by박순동

[제9화]

바람의 지문 - 뺨을 스치는 차갑고도 따스한 안부

박순동


창가에 기대어 서면 보이지 않는 손길이 뺨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살결에 닿는 선명한 감촉, 나는 그것을 '바람의 지문'이라 부르고 싶어집니다. 이 밤의 바람은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봄밤의 바람은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낮 동안 머물던 햇살의 잔열이 가시고 나면, 바람은 비로소 제 본연의 온도를 드러내며 우리 곁을 서성입니다. 옷깃을 여미게 할 만큼 여전히 서늘하지만, 그 끝에는 분명 이름 모를 꽃눈을 틔워낸 다정함이 묻어 있습니다.

이 온도는 마치 헤어진 연인이 먼발치서 보내는 안부와도 같습니다. 차마 다가오지는 못하고 먼 곳에서 바람의 결에 실어 보낸 마음. 차갑지만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온기를 품고 있기에, 우리는 이 바람 앞에서 속수무바카라으로 솔직해지고 맙니다.

바람이 머물다 간 자리마다 보이지 않는 지문이 남습니다. 그 지문은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슬프고 잔잔한 이야기들을 가만히 어루만집니다. "아직 거기 있느냐"고, "이제는 놓아주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바람의 손길에 기대어, 우리는 비로소 상처를 꺼내 봄밤의 품에 안겨줍니다.

사랑은 번뇌의 시작이었으나, 이 밤의 바람은 그 번뇌조차 아름다운 무늬로 바꾸어놓습니다. 뺨에 남은 서늘한 지문이 따스한 위로로 변하는 시간. 우리는 이 애매한 계절의 틈새에서 비로소 상처를 갈무리하고, 새로운 계절로 나아갈 채비를 합니다.

오늘 밤, 당신의 창가를 스치는 바람의 지문을 읽어보세요. 그 속에는 당신이 잊고 지냈던 다정한 안부와, 이제 막 아물기 시작한 당신의 예쁜 상처들이 함께 반짝이고 있을 것입니다.

2026년 봄,

박순동 쓰고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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