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을 빚는 세 가지
대체로 맞다. 요즘은 법무사나 온라인 설립 서비스에 맡기면 며칠 안에 등기가 끝난다. 직접 등기소에 갈 일도 없다. 그래서 많은 창업가가 설립을 "맡기면 끝나는 행정 절차"로 여긴다.
그런데 맡기는 것과 모르는 것은 다르다(또 이 얘기다). 설립 과정에서 결정되는 세 가지 — 정관, 자본금, 등기 — 는 대표가 직접 판단해야 하는 영역이다.
특히 정관은, 나중에 후회하는 1순위 서류다. 설립할 땐 "표준 양식으로 해주세요" 하고 넘겼다가, 몇 년 뒤 스톡옵션을 주려고 보니 정관에 근거가 없어서 다시 주주총회를 여는 식이다.
법무사가 빚어주는 건 그릇의 형태다. 하지만 그 그릇에 뭘 담을지, 얼마나 크게 만들지는 대표가 정한다.
투자 검토에 들어가면 나는 거의 반드시 정관을 본다. 정관은 회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정한 회사의 헌법이기 때문이다.
이사를 몇 명 둘 수 있는지, 주식을 어떻게 발행하는지, 스톡옵션을 줄 수 있는지, 신주를 발행할 때 기존 주주의 권리는 어떻게 되는지 — 회사의 중요한 결정 규칙이 전부 여기 들어 있다.
그래서 정관이 '복붙한 표준 양식 그대로'인 회사를 보면, 두 가지를 짐작한다. 아직 투자나 보상 설계를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거나, 정관이 그렇게 중요한 줄 몰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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