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작고 하신 아빠의 생일이다.
나의 비번에는 주로 전 남자 친구들의 생일이거나 기념일이 들어가는데
동생의 비번에는 꼭 아빠의 생일이 들어간다.
생각해 보니까 나와 아빠의 정이 동생과 아빠의 정과는 다른 결이었다.
아빠와 동생은 술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십 가까운 나이에 본 막내이기도 하지만
외모적으로 너무 예뻤던 동생과 나는 객관적인 외모에서도 못났지만 아빠가 싫어했던 엄마와 너무 닮았던 외모가 한 몫하기도 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 아빠가 한 말이 충격적이었다.
"이거 이래 못생겨서 어떻게 치워먹냐!"
28년생이신 아빠, 군생활 이십 년 하신 아빠, 상주에서 태어나 보수의 텃밭 대구에서 통장을 오래 하시면서
민정당시절에 빨랫비누를 돌리고, 전두환 사진과 태극기를 복덕방에 걸어두고 영업하셨던 아빠.
그런 아빠가 돌아가 시 전에 김대중 태통령에게 한 표 찍었다가 동네에서 뭇매를 맞으셨던 나름 깬 의식을 가지신 분이라 나는 아빠를 좋아했지만 아빠는 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아빠는 기분이 태도가 되는 대표적 가장이었다.
우리 시대는 다 그렇지 않았나? 그게 당연했던 시대였다.
간장종지를 들고 오다가 자신이 실수로 쏟아도 화를 자식들에게 풀었던, 그때의 밥상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뿐 아니라 군생활을 오래 했던 아빠의 폭언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말 안 들으면 발가벗겨서 전봇대에 매달아 놓을 거란 그 대사.
그 말을 정말 자주 들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한 대사였지만 그때는 그게 이상할 게 없었던 말이었다.
세 살던 아주머니의 딸이 자꾸 귀찮게 해서 방에 못 들어오게 했다는 이유로 그 아주머니와 싸웠는데
그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빠가 이유불문하고 보자마자 내 뺨을 후려쳤던 일.
오죽하면 그 모습을 보던 이웃집 아주머니가 집에 들어가기 무서우면 자기 집에서 자라고 했을까!
어릴 때 악대부에서 색소폰을 불렀던 나는 가끔 집에 악기를 들고 와 연습을 했는데
그때 아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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