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타 지우기(6)

단편소설

by김진광

K는 되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 같은 사람은 과학적 사고에 익숙해져 있어 가이드님의 설명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를 수식으로 설명해 주실 수는 없겠습니까? 머지않아 과학을 내려놓고 긴 여행을 떠나야 할 입장에서, 마지막으로 과학적인 해답을 알고 싶네요.”


가이드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런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전혀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지구에는 없는 공식으로, 지극히 과학적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지상에서 당신이 가지고 태어났거나 일생 동안 축적한 총에너지는(편의상 ‘에너지’라 하겠습니다) 물질 에너지와 사유 에너지의 총합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ΔT ≡ Δm + Δθ


여기서 m(매터)은 질량 즉, 에너지 보관소이며, 육신의 흔적으로서 사망과 함께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m의 존재만을 믿지만, 사유의 흔적 θ(세타)는 엄연히 존재합니다. 오히려 m 보다 더 중요합니다. 따라서 위 식은 다음과 같이 고쳐 쓸 수 있습니다.


Δθ ≡ ΔT - Δm


흔히 암흑물질, 우주구름 등으로 불리는 세타(θ) 에너지는 우주 전체의 95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며, 우주 팽창에 중요한 재료로 쓰입니다. 인간의 사유가 늘어날수록 우주는 팽창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 사유의 흔적 중 에너지 부분은 총에너지의 일부로 수집되고, 감정 기억은 우주 기억 장치에 보관됩니다.


그래서 오늘 같은 날에 대대적인 청소 작업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대청소가 끝나야 비로소 사유의 흔적들은 완전히 지워집니다. 이제 이해가 되었으면 자유로운 영혼 여행을 준비하기 위한 청소를 시작하십시오. 청소할 것이 많지 않은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청소가 거의 끝나갈 즈음, K는 가이드에게 질문하였다.


“영혼의 마을에 들어가면 저도 당신과 같은 가이드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어차피 다 알게 될 일들이지만, 궁금하면 물어보세요.”


“말기암이나 중증 치매처럼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인생들에게는 어떻게 조언해야 합니까?”


가이드는 차분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편안하고 친절한 죽음을 맞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일 죽을 운명임에도 오늘까지 물질에 집착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안타깝습니다. 더구나 자녀들이 고인이 남긴 옷가지를 두고 제비 뽑기를 하는 광경은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잘 죽는 것을 운수소관이라 여기며 우연에 맡길 것이 아니라, 사전에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일은 결코 비참하지 않습니다. 지나온 인생을 회고하며 정리하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일이기도 하지요.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죽음 연습은 곧 생명 연습이기도 합니다. 각자 자신만의 죽음 매뉴얼을 만들고 이를 연습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가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병원 의사나 가족에게 의지하는 것은 스스로 불행의 함정에 뛰어드는 것일 수 있습니다. 운이 좋아 훌륭한 의사를 만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렇게 이야기해도 나의 조언을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더군요. 그것 또한 그 사람만의 한 편의 인생이겠지요.”


K는 이어서 질문하였다.


“육신이 죽은 뒤에도 의식은 살아 있습니까? 그렇다면 의식과 영혼은 어떤 관계인가요?”


가이드는 대답했다.


“생각, 정신, 마음, 지혜, 의식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개념입니다. 인간이 바라보는 각도와 선입견에 따라 달리 표현될 뿐입니다. 의식은 흔히 뇌파의 작용으로 이해되어 육신이 사망하여 뇌 기능이 소실되면서 의식도 함께 사라진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다릅니다. 의식은 임종 시 파노라마 극장이 상영되는 가운데 제2의 엔지니어로 작용합니다. 물론 제1의 엔지니어는 나와 같은 가이드가 담당합니다. 의식은 기억의 청소 작업이 끝난 후에야 나의 처치에 따라 변주되어 영혼과 합일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상에서 의식은 장차 영혼 여행을 위한 사전 연습을 담당합니다. 세상 싸움에서 타락하거나 오염되기도 하지만, 임종 과정에서 세탁되어 순수한 본연의 실체만 남아 본향인 영혼의 세계로 귀환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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