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두 국가나 두 기업 간 힘의 격차가 확실하다면, 약한 쪽이 강한 쪽을 따라가는 전략이 가장 유효하다. 이는 몇 가지 실험으로도 검증된 바 있다. 불특정 다수의 개인으로 구성된 시장에서는 힘 없는 개인이 시장 흐름에 끝없이 순응하는 전략이 그렇지 않은 전략보다 더 효과적이다.
시장이 동전 던지기에서 앞면이 나올 것이라 주장한다면, 개인도 앞면에 서는 것이 유리하다. 이와 반대로 “그동안 앞면이 너무 많이 나왔으니 이번에는 뒷면이 나올 확률이 높다. 그래야 정규분포와 균형 이론에 부합한다.”고 지극히 합리적인 근거를 토대로 시장과 반대 입장에 서면, 합리적인 만큼 실패할 가능성이 커진다.
현존하는 게임 전략 중 ‘단순한’ 팃포탯 전략이 가장 우수하더라도, 이 전략에는 ‘시간 범위’를 설정하기 어렵다는 약점이 있다. 어떤 게임은 하루가 범위일 수도 있고, 다른 게임은 수십 년이 될 수도 있다. 시간 데이터를 분석하는 모든 도구는 시간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범위를 좁히면 답은 빨리 나오지만 실패 확률이 높아진다. 범위를 넓히면 답은 늦게 나오지만 실패 확률은 줄어든다. 답이 너무 늦게 나오면 지나간 버스에 손을 흔드는 꼴이 될 수 있다. 이는 카오스 2계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TFT 전략은 지나치게 수동적이고 단순하여 실전에서는 모델이라 부르기도 어렵다. 그러나 결과는 강력하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전략을 따라가지 못하는가. 이는 수많은 지식이 모여 오히려 모럴 해저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지식을 많이 활용하면 할수록 유리하다는 가정 자체가 잘못되었다. 영리한 자들이 많이 모인 시장에서는 오히려 우매한 자가 승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시장균형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장이 수요와 공급의 다이나믹스에 의해 균형에 수렴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함정이 숨어 있다. 첫째는 시간의 함정이다. 주머니가 텅 빈 뒤에 찾아오는 균형은 의미 없는 균형이며, 그 게임에서 패자로 남을 것이다. 둘째는 균형점에 대한 착각이다. 보통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점을 균형이라 여기지만, 3차원 공간에서는 외견상 균형으로 보이는 점들이 무수히 존재한다. 지금의 균형이 그 많은 균형점 중 어느 하나인지는 알기 어렵다. 설령 통계학적으로 무수한 균형점들 중 최적의 균형점을 알아낼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런 균형은 빙벽처럼 순식간에 도달하고 지나가 버린다. 결국 균형론자는 시장을 설명하는 데는 유능할지언정, 실전에서는 패자로 남을 가능성이 높게 된다.
시장에서 영향력 있는 상대방을 따라가며 실속을 챙기는 방법이 가장 유용하다면, 이는 지식으로 충만한 전문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보니 실전 현장에서는 자존심을 자극하고 지적 탐험을 유혹하는 수많은 경우의 수가 펼쳐진다. 자극과 유혹의 강도가 심해지면 실전은 도박판으로 변하고 심지어는 환청이나 섬망 수준까지 치달아 오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결국 시장은 멘탈 게임이 된다.
시장을 설명하는 지적 데이터가 늘어날수록 팃포탯 전략을 무시하거나 도외시하게 된다. 그러나 그럴수록 가장 단순한 방법이 가장 유효한 방법이 된다. 어렵게 이야기할 것도 없다. 그날 가장 운이 좋고 승률이 높은 사람의 패에 얹어가는 것이 이기는 방법이다. 일단 승리 열차에 편승하면 다소 무리한 베팅일지라도 그날의 운세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작용하여 승리로 이끈다. 최종적으로는 승리의 기운을 지닌 자의 편에 서서 ‘광’을 파는 자가 승리한다.
회의가 끝난 뒤, K는 바카라상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조금 전에 본 블루하우스 관련 정보가 생각이 나서 포털사이트를 검색해 보았다. 이미 유사한 뉴스가 지천으로 깔려 있었고, 저마다 댓글 논쟁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었다. 서로 면전에서 말다툼하듯 치고받는 댓글들 사이로 눈에 거슬리는 글 하나가 보였다.
“니 엄마가 너 같은 인간을 낳고도 미역국은 드셨겠지?”
처음 보는 말투는 아니었다. 익숙한 관용구였다. 익명의 장이라는 특성상, 강도가 심한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날따라 부모를 걸어 모욕하는 행위에 더해 혼자서 나라를 걱정하는 듯한 말투가 더욱 불쾌하게 다가왔다.
K는 평소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막상 전쟁이 나면 먼저 도망칠 궁리부터 한다는 의견에 동조하는 편이었다. 웬일인지 ‘미역국’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댓글이 참기 어려웠다. 그는 험한 댓글 밑에 몇 글자를 적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