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21세기 어느 여름 아침, 지구 행성.
창가를 스치는 새벽빛에 K는 눈을 떴다. 나침반은 위도 37.57, 경도 126.98에서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자기장의 세기는 50 마이크로 테슬라(μT)를 가리켰다. 태양 시계는 굵은 글씨로 7월 23일을 알려주고 있었다.
세면을 마친 그는 평소처럼 출근을 채비했다. 하이브리드 차에 몸을 싣고 도로 위를 달려 회사 건물 주차장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그는 오늘이라는 하루의 긴장감이 본격적으로 깨어나는 것을 느꼈다.
복도에서 마주친 동료들과 짧게 인사를 나눈 뒤, 사무실 창가에 자리한 바카라상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모니터에 차례로 뜨는 전자서류들을 능숙한 손길로 살펴보며 서명하고, 오늘 해야 할 업무를 정리하였다.
정보 자료를 스크린하며 가십거리를 찾던 중, 블루하우스에서 큰 부부싸움이 있었다는 소식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도 들었던 이야기라서 ‘또’라는 묘한 감정이 잠시 스쳐갔다. 팀원이 가져다 준 믹스커피를 들고 예정된 간부회의에 참석했다.
상무는 조간신문 몇 가지를 빠르게 훑어보며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K를 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칭찬을 늘어놓았다. 팀원 중 한 명이 작성한 자료가 오늘자 경제신문에 1면 톱으로 실렸기 때문이다. 인터넷 시대에도 신문은 여전히 영향력이 크다. 사람들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종이 위 활자에 더 큰 권위를 부여할 모양이다. 문자에 각인된 인류 문명은 아직은 플라스틱판에 비치는 것보다 종이에 스며드는 형식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어서 전사적으로 추진 중인 인공지능 기반 예측모델에 대해 부서별로 의견을 교환했다. 경제분석 담당인 K는 시계열 데이터 분석에 의한 예측의 실패를 여러 차례 경험한 바 있기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지 않을 수 없었다. K는 임팩트를 주기 위해 유발 하라리를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기상예측과 같은 카오스 1계는 통계분석으로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지만, 정치·경제·주가와 같은 카오스 2계는 예측 자체가 결과에 영향을 주어 안정적인 모델을 만들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어쩌다 한 번 맞더라도 그것을 금과옥조로 믿었다가는 낭패를 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과거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했다.
카이스트에서 인공지능을 전공하고 이번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L팀장은 K의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시계열 분석보다는 패턴 분석 기법을 활용하면 어느 정도 안정적인 모델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지금은 인공지능에 비관적이었던 90년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난공불락이라 여겨지던 바둑 게임에서조차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섰고, 복잡하기로 소문난 단백질 구조가 예측 가능해진 이상, 인공지능 앞에서 불가능을 이야기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일이다.
상무는 K에게 대안이 있느냐고 물었다. K는 잠시 숨을 고른 뒤, 지금으로서는 ‘죄수의 딜레마’가 최선인 것 같다고 답했다. 이는 예측모델을 만들지 말자는 주장으로도 해석될 수 있어 조심스러웠다. 죄수의 딜레마는 합리적 선택이 오히려 시장을 비합리적으로 만든다는 역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K의 주장을 요약한 것이다.
예컨대, 시장은 균형을 지향한다는 지식이 인간에게 내재화될수록 시장은 오히려 균형에서 멀어진다. 동전 던지기에서 한 면이 나올 확률이 2분의 1이라는 믿음이 강화될수록, 다음 던지기에서 이전과 같은 면이 반복될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균형을 중시하는 자일수록 실패할 확률은 더 높아진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사람이나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 실패할 가능성을 더 키운다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 이를 수긍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가 극적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행동을 전제로 한다면, 이에 대응하는 구체적 전략이 ‘팃포탯(Tit for Tat)’이다. 협력에는 협력으로, 배신에는 배신으로 대응하는 방식이다. 핵무기 감축에 협력하기로 한 두 국가 중 A국이 배신해 핵무기 증강을 선택하면 B국도 즉시 증강으로 맞선다. 일정 기간이 지나 별 이득이 없다고 판단한 A국이 다시 감축으로 돌아서면, B국 역시 감축에 협조해 상호 이익을 극대화한다.
기업 간 경쟁에서도 이 전략이 적용된다. A기업이 갑자기 가격을 낮추면 B기업도 가격 인하로 대응한다. 그러나 성과가 없다고 판단한 A기업이 원래 가격으로 돌아가면, B기업도 복귀해 협력 관계를 유지한다. 어찌 보면 ‘만년 2등 전략’이라 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두 기업의 역학관계에 따라 시장이 좌우되기에 이야기는 더 복잡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