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 1장
안녕하세요, 준쿠스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다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리뷰 시리즈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1막에 대한 리뷰는 지난 회차에서 마무리를 지었었지요. 오늘부터는 2막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시간에 다룰 내용은 2막 1장입니다.
1막의 커튼이 내려지고, 2막이 시작되면서 장소 역시 바뀝니다. 1막의 마지막 장인 5장의 배경은 리어의 장녀, 거너릴의 집, 즉 올버니 공작의 성이었지요. 거너릴과의 갈등 때문에 분노로 미치기 일보 직전인 리어가 광대와 종자들을 데리고 차녀인 리이건의 집을 향해 떠나는 것으로 1막이 끝났습니다.
2막은 글로스터 백작의 집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브리튼 왕가와 글로스터 백작 가문의 이야기들은 각각 메인과 서브 플롯으로서 서로를 반영하는 거울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은 이미 말씀드렸었지요. 그리고 1막까지는 이 각각의 플롯의 인물들이 크게 섞이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극의 핵심적인 갈등 관계에 각각의 역할을 본격적으로 할당받지는 않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2막에 이르러 이 두 플롯은 하나의 줄기로 합쳐지기 시작합니다. 즉, 리어와 코딜리어, 켄트, 에드가, 그리고 광대라는 주동인물들과 이들과 갈등 관계에 놓이게 되는, 거너릴, 리이건, 콘월, 그리고 에드먼드라는 반동인물들의 대립구조가 점차 극의 표면으로 현상화되기 시작하는 지점이지요. 앞으로 진행되는 걸 보면 당연히 아시게 되겠지만, 이 양축은 서로 완전히 대척되어, 결국에는 내전 비슷한 것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극의 필연적인 진행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일단 1막에서는 그저 암시와 예고 정도로만 던져졌던, 에드가와 에드먼드 사이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1막에서는 에드먼드 혼자 이 갈등을 느끼고 있었고, 에드가는 자신에 대한 에드먼드의 질시와 이로 인한 음모 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요. 그리고 에드먼드는 말 그대로 아무런 ‘흠결이 없는’ 에드가를 없애기 위해, 어떤 ‘명분’을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딱 자신의 천성(nature)에 따른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바로 ‘권력욕과 배신 본능’이지요. 그래서 에드먼드는 딱 본인다운 생각으로 에드가를 중상모략합니다. 즉, 에드가가 조금이라도 빨리 영지의 지배하고 싶어서, 아버지인 글로스터 백작에 대해 하극상을 일으키려는 계획을 짜고 있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글로스터는 너무도 쉽게 에드먼드의 말을 믿어버리지요.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쉽게 에드먼드의 거짓말에 넘어가버리는 글로스터 백작의 행동을 두고 현실감이 없다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법도 하지요. 하지만 셰익스피어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 보면, 딱히 그런 것도 아닙니다. 장미전쟁이라는 왕위를 둘러싼 친족 간의 오랜 동족상잔은 이후 튜더 왕조에서도 여전히 이어졌습니다. 예를 들어, 엘리자베스 1세가 자신의 5촌 조카인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를 결국에는 죽이는 경우가 그러하지요. 이 말인 즉, 어떤 큰 이익과 결부되어 있을 때는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믿을 수 없다는, 즉 말 그대로 믿을 사람 하나 없는 상태가 당시 슬롯 분위기였을 것이라는 걸 상상하면, 글로스터의 섣부른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튼 여기까지가 1막에서 표현된 글로스터 가의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2막 1장에서는 어떻게 전개가 되어야 할까요? 그건 당연히 에드가에게 씐 누명을 더욱 진짜인 것처럼 만들어 버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가짜(에드먼드)가 진짜 행세를 하며, 진짜(에드가)를 쫓아내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선 어디서 쫓아내야 할까요? 그거야 물론 집이지요. 그래서 2막 1장은 아버지의 글로스터의 백작의 오해와 그로 인한 (에드가 입장에서 볼 때) 영문을 알 수 없는 분노로부터 일단 피해, 에드먼드의 방 안 벽장 같은 곳에 숨어 있었던, 남을 의심할 줄 모르는 천성을 가진 순진한 에드가는 에드먼드의 말도 안 되는 거짓 촌극에 속아, 아무런 잘못도 없이 집에서 도망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이런 식으로 어이없게 집에서 쫓겨나게 되지요.
한편, 자신을 피해 에드가가 도망갔다고 생각한 글로스터 백작은 이 행위로 인해, 에드가의 모반 계획이 정말 사실이었다고 믿어버리게 되지요. 그리고는 급기야 영지 내 사람들에게 에드가를 발견하는 즉시 죽이라는 명령까지 내리게 됩니다. 이처럼 정말 말도 안 되는 촌극이지만 말이 된다는 게 정말 웃기고 어이없는 장면이 펼쳐지는 게 바로 이 2막 1장입니다.
하지만 이는 매우 핍진(逼眞)적, 즉 매우 현실적이고 개연적입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불신이 팽배한 슬롯에서 지배적인 정서는 바로 ‘불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주도권을 잡는 자는 과연 누구일까요? 그 ‘불안’을 어루만져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은 그저 희생양으로 전락할 뿐이며, 오히려 이 상황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이런 ‘불안’을 더욱 부추기고 야기하는 사람들, 즉 ‘선동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선동을 통해 불안을 더욱 부추기려 합니다. 왜냐하면 ‘분노’를 일으키기 위함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일으킨 사람들의 ‘분노’를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철저히 이용합니다. 말하자면, 이 사람들의 ‘분노’를 이용해서 자신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자신들의 장애물을 처리해버리지요. 에드먼드가 글로스터의 분노를 이용해서 에드가를 한순간에 집에서 쫓겨내고, 장자로서의 그의 권리를 박탈하고, 급기야는 그의 목숨까지 위태하게 만든 것처럼 말이지요.
그럼, 이제 이 에드먼드가 감독과 주연을 맡은 이 웃기지도 않는 촌극을 그대로 인용해드리겠습니다.
Edmund. My father hath set guard to take my brother; and I have one thing, of a queasy question, which I must act. Briefness and fortune, work!
Brother, a word; descend; brother, I say!
My father watches; O sir! fly this; Intelligence is given where you are hid; you have now the good advantage of the night.
Have you not spoken ‘gainst the Duke of Cornwall?
He’s coming hither, now, i’the night, i’the haste, and Regan with him; have you nothing said upon his party ‘gainst the Duke of Albany?
Advise yourself.
Edgar. I am sure on’t not a word.
Edmund. I hear father coming; pardon me; In cunning I must draw my sword upon you; Draw; seem to defend yourself; now ‘quit you well.
Yield; -come before my father, Light, ho! here!
Fly, brother. Torches! torches! So, farewell.
[Exit Edgar.]
Some blood drawn on me would beget opinion
[Wounds his arm.]
Of my more fierce endeavour; I have seen drunkards do more than this sport. Father! father! Stop, stop! No help?
에드먼드: 아버지가 형을 잡으려고 경비병을 풀어놓으셨다. 그럼 이제 내가 할 일은 한 가지이지. 꽤 골치 아픈 일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해야만 해. 재빠르게 그리고 행운을 기대하면서!
형, 할 말이 있어요. 좀 내려와 보세요, 형!
아버지가 감시하고 계세요. 오 이런, 어서 여기서 벗어나세요. 형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이미 정보가 샜어요. 이 밤의 어둠을 이용해서 어서 달아나세요.
그런데 형 혹시 콘월 공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한 적이 있으신가요?
그가 지금 여기로 오고 있어요. 이 야밤에, 급한 용무가 있다는 듯이 말이에요. 그것도 리이건과 함께 말이에요. 형, 혹시 올버니 공과 대척 중인 콘월 공 쪽 당파에 대해 무슨 소리를 하고 다니신 건 아니에요?
잘 생각해보세요.
에드가: 아니 맹세컨대, 전혀 아무 말도 한 적 없어.
에드먼드: 아버지가 오시는 소리가 들려요. 죄송해요. 어쩔 수 없이 칼을 뽑는 척을 해야겠어요. 형도 칼을 뽑으세요. 방어하는 척을 하세요. 자 이제 잘 달아나서 건사하세요.
칼을 버려라! 내 아버지 앞으로 나와라! 불! 불을 가져와!
형, 빨리 달아나세요. 횃불을! 횃불을 가져와! 그럼, 무사하시기를.
(에드가 퇴장)
피가 좀 보이는 게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용맹스럽게 잘 싸웠다고 생각하게 만들겠지.
(자신의 팔에 상처를 내는 에드먼드)
예전에 술주정뱅이들이 이보다 더 한 짓을 장난으로 하는 걸 본 적이 있지. 아버지! 아버지!
그만해, 멈춰! 거기 누구 없나?
자 어떠신가요? 아주 재미있는 원맨쇼이지요? 먼저 파란색으로 볼드 처리한 부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 밑줄이 쳐진 부분은 지금 에드먼드가 혼자 말 그대로 ‘연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아마도 이 부분에서는 일부러 밖에서 들리라고 목소리를 크게 냈겠지요. 한편, 그 중간중간에, 즉 밑줄이 그어져 있지 않은 부분에서는 작은 목소리로 에드가를 향해 걱정하는 척하며 속삭이거나, 혼자서 냉소적으로 중얼거렸을 겁니다. 그런데 이 냉소가 꽤나 의미심장합니다. 그는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악행을 술주정뱅이들이 하는 장난 정도도 안 되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지요. 즉, 아무리 야만의 시대였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상식에 벗어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 말이 진심이라면, 그의 천성(nature)은 극도로 이기적이고, 죄의식을 잘 느끼지 못하며, 남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 정도로만 여기는 000패스에 가까울 겁니다.
그럼, 이제 빨간색으로 볼드 처리한 부분을 설명하고 이번 시간은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마침 에드먼드가 이 촌극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을 찰나에, 그는 글로스터 백작의 성으로 리어의 둘째 딸 부부, 즉 리이건과 콘월 공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들이 여기에 오는 이유는 사실 에드먼드의 계바카라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저, 거너릴과 리어로부터 각각 편지를 받은 리이건 부부가 자신들의 야망, 즉 브리튼의 유일한 주인이 되는 것을 위해서는 일단 거너릴과 협력하여 현재의 왕인 리어의 권력을 완전히 뺏을 필요가 있었기에, 이와 관련된 어떤 목적으로 가지고 (아마도 자신들의 영지와 가장 가까운) 글로스터 백작가의 영지로 모여든 게 아닌가 합니다. 즉, 그나마 가장 안전한 제3의 장소에서 작당 모의를 하려고 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올버니 공가와 콘월 공가는 브리튼의 권력을 양분해 가지고 있는 경쟁자였으니까요. 예를 들어, 미국과 러시아가 회담을 할 때, 양측과 다 원만한 관계에 있는 제3의 국가에서 하는 것과 비슷한 겁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에드먼드는 역시나 자신의 타고난 천성(nature)에 맞게, 에드가를 향해 영악한 덫을 미리 쳐놓기 시작함과 동시에 거짓된 의심을 던져서 에드가의 마음속에 또 다른 ‘불안’을 심어 놓으려고 시도합니다. 즉, 조만간 올버니 쪽과 콘월 쪽에 내전이 있을 건 확실해 보이니, 이제 천륜을 저버린 도망자 신세가 된 에드가에게 정치적 반역 프레임까지 씌우려고 하는 것이지요. 아직 가능성은 50대 50이지만 콘월 쪽이 이기게 되면, 에드가는 글로스터 영지뿐만 아니라 브리튼 자체에서 살아남을 수 없게 되겠지요. 물론 에드가 말대로 그는 이에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지만, 사람들은 결코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이미 그들의 마음속에는 ‘선동된 분노’가 가득 채워져 있어 이 비합리적인 정서가 마치 이성인 양 작동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아무튼 이렇게 에드가의 운명은 일순간에 위기로 몰리고, 이 위기는 에드먼드에게는 기회이자 행운이 되어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그의 이 촌극에 글로스터 백작도, 콘월 공도 그리고 리이건도 다 속아 넘어가거든요. 글로스터는 그를 상속자로 지정하겠다고 하고, 콘월은 그의 용맹함과 효심을 칭찬하며, 그에게 자신의 정치적 무리의 중요한 직바카라을 맡기는 걸 진지하게 고려해보겠다는 말을 합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사람들은 입으로는 진실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눈으로는 무엇이 진실인지 보지 못하고, 귀로는 진실을 듣기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진실과 거짓이 있을 때, 그것을 판별하는 기준은 ‘자신에게 어떤 이득이 얼마나 있는지 여부’이지, ‘사실’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점이야말로 만고불변의 ‘진실’인 것 같아요.
이번 시간은 이 정도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2막 2장에 대한 리뷰를 이어가도록 할게요. 그럼, 다음 시간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