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ast
안녕하세요, 준쿠스입니다.
이번 시간은 제가 만든 작은 우화 <소금과 맞바꾼 시계> 마지막 화를 올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난 후 하단에 이 우화 창작과 관련된 제 의도를 조금 말씀드리는 걸로, 이 시리즈는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일단 이야기부터 읽어볼까요?
소년은 그렇게 허망하게 죽고 말았지만, 한동안 마을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편리하고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되었어요. 왜냐하면 정확한 시계와 넉넉한 소금 덕분에 생활이 예전보다 훨씬 편리하고 풍족해졌거든요. 하지만 재앙은 이미 그들의 동구 밖 직전까지 와 있었답니다. 저 느티나무 아래의 좀체 가시지 않는 그늘처럼 말이에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장사꾼이 마을로 찾아와 말했어요. 소금의 값을 기존보다 더 올려야겠다고 말이에요. 이에 당황한 마을 사람들이, 이유가 무엇이냐, 애초에 약속한 것과는 말이 다르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지요. 하지만 장사꾼은 그들의 이런 항의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태도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당신들이 저렇게 버젓이 탑 위에 매달아 놓고 있는 시계 때문입니다!”
라고요. 이에 어이가 없었던 마을 사람들이 저건 원래 우리의 것이다. 그게 소금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물었지요. 그러자 장사꾼은 다음과 같이 딱 잘라 대꾸했어요.
“아니요! 이제 저 시계는 당신들 것이 아니라, 저와 저 동쪽 지방의 시계공 길드의 것입니다! 저는 정당한 값을 치르고 저 시계의 설계도를 그 소년으로부터 샀습니다. 그때 이후로 저 시계와 관련된 모든 권한, 즉 저 시계의 제작에 관한 모든 권한과 오리지널리티는 바로 우리들에게 귀속되어 있습니다. 이 말인 즉, 당신들은 지금 남의 물건을 거의 공짜로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지요. 지금까지는 저의 넓은 아량으로 관용을 베풀어주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을 것 같군요. 이제부터는 시계 이용료를 지불해 주시길 바랍니다. 만약 계속 거부하신다면 저 시계를 가져가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무슨 도둑놈 심보냐고 욕을 해대면서 장사꾼을 험하게 쫓아냈어요. 마을의 민심은 흉흉해졌고, 소금의 값은 점점 비싸졌지요. 마을 사람들 중 일부는 저 시계 때문에 이 사달이 난 것이라며, 시계를 향해 돌을 던지는 등 횡포를 부리다가 장사꾼과 시계공 길드로부터 자신들의 재산에 위해를 가했다는 명목으로 고소를 당해 감옥살이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았던 이 마을은 이제 점점 가난해지고 있었던 것이에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점점 가난해지는 만큼 사람들의 마음속 욕심은 더욱더 커져만 갔지요.
이제 이 마을은 더 이상 소년이 꿈꾸던 그런 마을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하늘은 여전히 그림처럼 파랗고, 새하얀 뭉게구름의 그림자가 연둣빛 대지 위에 드리우는 풍경 역시 여전했지만......... 그저 그뿐이었습니다.
소년이 만든 시계 역시 여전했습니다. 그것의 시침과 분침 그리고 초침은 변함없이 그리고 조금의 오차도 없이 무심하게 째깍째깍 규칙적인 원운동을 했지요.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마을 사람들 눈에 그 시계는 왠지 예전과는 달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그저 눈부시게 아름답기만 했던 그것이 무슨 까닭인지 이제는 아주 오래된 골동품처럼 고색창연해 보였던 것이지요. 사람들은 시계가 녹이 슬기 시작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을의 대장장이와 목수에게 매우 길고 크며, 매우 튼튼한 사다리를 만들게 했습니다.
사다리가 완성된 날, 마을의 청년들 몇 명이 그 사다리에 한꺼번에 올라가 시계를 닦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닦고 또 닦아도 시계는 더 이상 그 본연의 빛을 내지 못했지요. 소년이 마을의 호숫가에서 모아 온 그 무지개 빛깔의 돌들은 오히려 닦으면 닦을수록 그 빛을 잃어갔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시계 사용 요금을 청구하기 위해 오랜만에 마을을 찾아온 그 장사꾼은 시계를 보며, 무심하게 중얼거렸습니다.
“이제 쓸모가 없어졌군. 그래도 성능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으니, 헐값으로라도 처분을 해야겠어.”
그리고 그렇게 마을은 더 가난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전보다 소금을 구하기가 훨씬 더 힘들어졌거든요. 그들은 소금 한 줌을 얻기 위해 전보다 훨씬 더 많이 일을 해야 했습니다.
여전히 하늘에는 늘 새하얀 뭉게구름이 지평선과 맞닿은 채로, 솜사탕처럼 뭉게뭉게 피어올라오고, 잘 익은 완두콩 색 같은 연두색 벌판 위로 낮은 구름들이 마치 산바카라이라도 하는 듯이 바람결에 천천히 떠다녔지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 아래로 드리워지는 그늘은 더 이상 시원하지 않았답니다.
이 이야기는 매우 즉흥적으로 쓰인 것입니다. 저는 원래 글을 즉흥적으로 쓰는 편이기는 하지만, 이런 짤막한 우화를 뜬금없이 써본 건 이 글이 처음이자 유일한 것이에요. 그리고 이 글을 쓰면서 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두 개의 키워드로 정리하자면, 바로 '질서'와 '엔트로피'입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이 글을 쓸 즈음에, 어떤 필요에 의해서 전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를 다시 발췌해서 읽고 있었어요. 그중에 '엔트로피'를 통해 블랙홀을 설명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부분에서 인상적이었던 잔상이 이 글을 쓰게 만든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요는 바로 이겁니다. 소년이 본 '질서'와 상인이 본 '질서'는 서로 좀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둘 다 '질서'는 맞습니다. 비유하자면, 시계에는 초침과 분침 그리고 시침이 있지요. 각각은 궁극적으로 서로 맞물리지만, 초침은 초침만의 원운동을 하고, 분침 역시 그러하며, 시침 역시 그러합니다. 즉 각각의 세계가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각 세계에는 그것만의 질서가 있지요.
이 글에서 소년이 보는 질서는 좀 더 거시적인 것, 즉 '자연'의 것에 가깝습니다. 한편, 상인이 본 '질서'는 좀 더 미시적인 것, 즉 '인간슬롯'의 질서에 가깝지요. 우리는 어떤 학습된 강박에 의해 '질서'라는 범주적 의미는 무조건 하나로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는 계몽주의적 편견 같아요. 만약 이 믿음이 맞다면, '엔트로피 법칙'은 부정이 되어야겠지요. 하지만 블랙홀마저도 엔트로피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호킹의 말을 참고해 본다면, 이런 믿음은 말 그대로 '편견'일 겁니다.
하지만 실존적 차원에서 '소년의 질서'와 '상인의 질서'처럼 서로 다소 이질적으로 현상화되는 질서들 사이의 상충은 분명 문제적인 것이 되지요. 아마도 저는 이 점을 우화로 표현해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이 글의 결말은 위와 같이 반드시 열린 결말로 끝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소년은 죽었고, 마을은 쇠퇴했지만, 그래도 자연의 질서는 무심하게 유지되고, 인간의 질서 역시 이 무질서를 통해 엔트로피적으로 다시 그 원운동을 시작할 겁니다. 이게 바로 아마도 제가 이 글을 통해 표현해보고자 한 주제라면 주제일 겁니다.
그럼, 다음 주에는 다시 <리어왕> 리뷰 시리즈로 찾아뵐게요. 다음 주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