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3장-5장 (1부)
안녕하세요, 준쿠스입니다.
이번 시간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명작 『리어왕』 리뷰 시리즈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다룰 내용은 1막 3장~5장입니다. 이 작품의 1막은 총 5장으로 되어 있으므로, 이것으로 1막에 대한 리뷰는 마무리가 될 겁니다.
하지막 이 3장부터는 새로운 인물들도 등장하고, 사건도 점차 본격화되기에, 보다 재미있는 이해를 위해 미리 설명해드려야 할 것들이 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글이 길어질 수도 있는데, 만약 너무 길어지게 되면, 이것을 1부와 2부로 나누어서 진행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 주시길 바랍니다.
1막 3장에서 5장까지의 공간적 배경은 바로 리어의 장녀 거너릴의 집입니다. 정식적으로 표현하자면, 올버니 공의 성이지요. 이 지점에서 다시 리어 왕가의 인물들의 호칭과 인물들 간의 관계를 다시 한번 정리해 드릴게요.
리어는 브리튼의 왕입니다. 그에게는 아들은 없고 세 딸이 있으며, 나이순으로 거너릴, 리이건, 그리고 코딜리어이지요. 이들은 왕녀들이고, 당시 유럽의 왕가는, ‘귀천상혼(貴賤相婚)’을 보통 인정하지 않았기에, 왕족이나 그에 준하는 공작가와 혼인을 맺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이들의 남편들 역시 높은 작위를 가진 자들입니다. 우선 이미 1막 1장을 다룰 때 나왔듯이, 막내 코딜리어는 프랑스 왕과 결혼을 하게 되지요. 그러면 거너릴과 리이건이 남는데, 이들은 모두 공작 가문의 상속자들과 결혼을 했습니다. 첫째 거너릴의 남편은 올버니 공작이고, 둘째 리이건의 남편은 콘월 공작입니다.
그럼, 이쯤에서 이 부마들, 즉 리어의 사위들의 성격에 대한 소개가 필요할 듯싶습니다. 우선 프랑스 왕은 코딜리어의 성정에 반해 아무런 지참금 없이 그녀를 왕비로 맞이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선인(善人)입니다. 그러면 이제 둘이 남지요. 즉, 장녀 거너릴의 남편, 올버니 공과 차녀 거너릴의 남편, 콘월 공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올버니 공은 선한 캐릭터이자 동시에 이 작품의 최종 승자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승자라기보다는 ‘수혜자’에 가깝지요. 그는 분명 선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용기가 있거나, 선의지가 강하거나 하는 인물은 아닙니다. 그냥 지위는 높으나 그 능력 면이나 성정 면에서는 선량한 범인(凡人)이라고 할 수 있는 무개성적인 인물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개성이 지나치게 강한 인물들 간의 극한의 갈등은 결국 파국으로 끝나기 마련이고, 이 파국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대개 올버니 같이, 아무것도 할 줄도 모르고, 무엇보다도 실상 아무것도 하지도 않았던 인물,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해 오히려 ‘운이 좋은’ 인물들이지요. 이와 비슷한 결론을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바로 『햄릿』이 그러합니다.
반면, 차녀 리이건의 남편인 콘월 공작은 악한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의 악인입니다. 하지만 리어 왕가와 글로스터 백작가를 통틀어서 가장 먼저 죽음을 맞게 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뭐, 이 두 집안 사람들은 선인이건 악인이건 간에 결국 거의 다 죽습니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 글로스터 백작의 장남, 에드가와 거너릴의 남편, 올버니 공뿐이지요.
한편, 1막 3장에서 1막 5장 사이에는 지금껏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인물들도 등장합니다. 바로 거너릴의 시종장(侍從長), 오스왈드와 리어의 fool, 즉 왕실 광대입니다. 무슨 뜬금없이 광대냐 라고 의아해하실 분들도 있으실 것 같은데, 당시의 궁정 문화입니다. 일종의 인간 형태의 장난감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워낙 놀거리가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왕실의 유희를 위해 이런 광대가 상주해 있었습니다.
우선 두 캐릭터의 성격부터 결론적으로 밝혀드리면, 오스왈드는 ‘거너릴의 개’와 같은 인물로, 천박한 악인입니다. 그래서 리어는 그를 이렇게 부르지요. ‘whoreson dog,’ ‘cur’라고 말입니다. 이 두 욕설을 직역하자면, ‘창녀가 낳은 개새끼,’ ‘성질 더러운 똥개 같은 놈’ 정도가 될 겁니다.
반면, fool, 즉, 광대의 성격은 그 반대입니다(이제부터는 그냥 ‘fool’이라고 지칭하겠습니다.). 신분상으로 말하자면, 당시 social scale, 즉 신분 구조의 가장 아랫부분의 위치하지만, 그 spirit, 즉 영(靈)은 거의 코딜리어에 버금갈 정도로 고상하지요. 왜 셰익스피어가 이 fool이라는 캐릭터를 이렇게 중요하게 다뤘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왜냐하면 실상 궁정에서 돌아가는 일에 전혀 상관이 없는 주변인 중의 주변인, 그저 애완(愛玩)을 위한 동물 정도에 불과한 존재이니까요. 그리고 셰익스피어의 의도는 그 이름이자 일반명사, 즉 ‘fool’에서부터 드러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 ‘fool’의 역할은 fool, 즉 말 그대로 ‘바보(같은 어릿광대)’이지만, 이 연극 내에서 가장 진실을 꿰뚫은 지혜를 가진 자는 바로 이 ‘fool’입니다. 그리고 이런 것을 문학에서는 ‘irony’, 즉 ‘아이러니’라고 부릅니다.
‘irony’라는 단어의 의미는 단순히 ‘반어’라는 말로만 한정 지을 수 없습니다. 그건 그저 논리적인 영역 내에서의 의미 규정일 뿐이고, 문학적, 담화적 맥락으로 그 범위를 넓히면, 그 의미를 딱히 뭐라고 규정하기가 힘듭니다. 그나마 가장 쉽게 표현한다면,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라고 할까요? 즉, 표면 상 드러난 뜻과 이면의 뜻 사이의 유격(有隔)의 정도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한 것, 즉, 말 그대로 담화적인 의미의 결정체가 바로 이 ‘irony’일 겁니다.
저는 이 『리어왕』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중 이 ‘fool’을 가장 좋아합니다. 만약 이 캐릭터가 없었더라면, 저는 이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거예요. 저는 코딜리어나 에드가와 같은 인물들보다 이 ‘fool’이야말로 가장 고결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장 비극적이지요. 심지어 주인공인 ‘리어’보다도 더 비극적인 인물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fool’과 같은 캐릭터를 문학 용어로 하자면, ‘에이론Eiron’이라고 합니다. ‘irony’라는 단어도 바로 이 ‘Eiron’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파생어이지요. 노스럽 프라이의 『비평의 해부』를 보면, 프라이는 에이론에 대해 이렇게 정의합니다.
‘자기 자신을 비하시키는 인간으로서 태어나면서부터 예술가로 운명 지어진 존재. 따라서 아이러니라는 말은 본래 자기를 실제보다 낮춰 보이게 하는 재주를 의미한다. 이들이 가진 재능은 보통 가능한 적게 말하면서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의미할 줄 안다는 것이다.’
여기서 ‘비하시킨다’라는 말은 실제로 자기 비하를 한다는 뜻인 아니라는 건 다들 아시겠지요. 그저 ‘그렇게 보이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떤 은밀한 의도를 가지고 작위된 건 아닙니다. 그저 ‘자신을 과대평가해서 스스로를 지나치게 드러내고 뽐내거나 가장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즉, 셰익스피어 식으로 표현하자면, '자연의 거울'을 가장 왜곡됨 없이 비출 수 있고, 또 바라볼 수 있는 자를 의미하지요.
그렇다면 이와 반대로, 맨날 거울을 향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아름답냐고 물어대는 백설공주의 계모와 같은 인물들도 있겠지요. 그리고 문학에서 이런 과도한 자의식을 가진 캐릭터를 ‘알라존alarzon’이라고 부릅니다. 『리어왕』에서 대표적인 알라존은 바로 ‘리어’이지요. 노스럽 프라이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알라존은 태어나면서부터 에이론의 희생물의 하나로 운명 지어졌다.’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작품을 보면, 리어와 fool은 슬롯적 신분 상, 가장 위와 가장 밑바닥이라는 정반대의 위치해 있지만, 리어의 어리석음과 오만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 허용된 유일한 인물은 바로 이 ‘fool’입니다. 막내딸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쳐버렸던 이 오만한 왕이 fool이 하는 가시 돋친 말들, 슬픈 빈정거림에는 그저 어쩔 줄 몰라할 뿐이거든요.
어찌 보면, 이는 unnatural, 즉 전도(顚倒)입니다. 만약 리어에게 이런 비판을 하는 인물이 fool이 아닌, 예를 들어 켄트 백작이었다면, 이는 분명 당시 관객들에게 전도로 보였을 겁니다. 하지만 fool에게는 이에 대한 면제권이 있지요. 일종의 특권입니다. 정확히 말해, ‘예술에게만 고유한 특권’이지요. 그렇기에 이 전도가 fool에게 와서는 ‘아이러니’가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리어왕』은 다른 비극들과 결이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결이 다르냐면은, ‘비극’에 대한 전통적인 공식에서 다소 비껴져 있습니다. 보통 전통적인 비극은 『햄릿』의 경우처럼 ‘일반 범인(凡人)들보다, 신분적으로도, 성정과 능력 면에서도 훨씬 더 탁월하다는 이유로 오히려 십자가를 짊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의 비장한 끝을 이야기한다면, 이 작품의 인물들 중 이런 성격에 부합하는 인물은 '코딜리어' 정도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읽다 보면 아시겠지만, 그녀는 이 작품의 포커스 내에 위치하고 있기는 하나 중심이 아닌 그 주변에만 머물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 작품은 '리어'라는 '알라존', 그 자의식 과잉의 희극적 캐릭터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다소 이질적인 비장미를 표현하고 있지요. 그리고 이를 간파한 에이론, 즉 fool이 던지는, 날카로운 가시와 애절한 동정이 동시에 담긴 농담 같은 말들은 이에 대한 디에게시스(diegesis), 즉 일종의 문학적 해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fool은 계속 거울을 든 채로 자신의 주인을 향해 비추면서도, 가슴이 아파서 울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 fool과 햄릿을 비교해 보자면, 이 둘은 그 영적인 면과 지혜, 그리고 성정 면에 있어서 서로 유사합니다. 즉, 탁월한 인물들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지요. 한 명은 ‘광대’이지만, 다른 한 명은 ‘왕자’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차이는 두 비극의 불러내는 미의식의 질을 바꿔놓습니다. 『햄릿』의 경우가 전통적인 의미의 비장미에 가깝다면, 『리어왕』의 경우는 ‘그로테스크함’입니다. 비루한 비유를 하자면, ‘햄릿’의 죽음을 보면, ‘무거운 안타까움과 거리감’이라는 ‘의식적 감정’이 느껴지는 반면, ‘광대’의 퇴장(죽음)은 ‘적나라함’이라는 ‘즉물적 감정’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는 제 개인적인 감상이라, 더 이상 뭐라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그저 이번 시리즈를 통해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미묘한 차이가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를 잘 감지하신 분들이라면, 분명 저처럼 이 작품을 매우 좋아하게 될 겁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3장부터 5장까지의 내용은 다음 시간에 해야 할 것 같네요. 사실, 내용은 별 것 없습니다. 그저 거너릴이 대놓고 리어를 무시하고, 화가 난 리어가 발광(비유가 아니라 ‘진짜 미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직전까지 가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지요. 예전에 『리어왕』을 읽어보셨던 분들 중 만약 그때 별 감흥이 없으셨더라면, 이런 줄거리에만 포커스를 맞추어서 읽으셨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대개가 ‘줄거리’만 보면 별 것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상황 속 내용이며, 이 내용들이 표현되는 방식, 즉 데코럼을 체감하는 것입니다.
그럼, 이 시리즈는 2주 뒤에 계속 이어가는 것으로 할게요. 다음 주에는 <소금과 맞바꾼 시계> 3화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