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셰익스피어 『리어왕』리뷰 시리즈(3)

1막 2장

byJuncus

안녕하세요, 준쿠스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에 대한 세 번째 리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1막 2장을 다룰 것이라고 미리 말씀을 드렸었지요. 희곡을 읽을 때는 1막이 중요한데, 무대에 상연을 전제로 하는 것의 특성상, 관객들이 알아야 할 단서나 짐작해야 할 핵심적인 요소, 그리고 무대 위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건의 원인들(그렇기에 무대 위에서 연출되고 있는 사건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관객이 미리 인지하고 있어야 할 것들) 등을 압축적으로 제시해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또한 『리어왕』 은 2개의 플롯이 병렬되다가 서로 수렴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지난번에도 살짝 언급을 해드렸지요. 굳이 말하면 두 집안의 이야기인데, 이 두 집안의 수장, 즉 리어 왕과 글로스터 백작은 서로 닮은 존재들입니다. 즉, 서로가 서로를 반영하는 ‘거울’ 같은 존재들이지요. 셰익스피어가 왜 굳이 이런 메인과 서브 플롯이라는 2중의 구조를 구상했을까 하고 생각을 해보시면서 이 작품을 읽는 것도 매우 좋을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하나의 도움을 드린다면, 『햄릿』의 예가 있겠네요. 이 작품의 3막 2장을 보면, 작은 연극이 하나 나옵니다. 즉, 『햄릿』이라는 '연극' 속의 연극이지요. 이런 장치를 일종의 거울 효과, 혹은 디에게시스(diegesis)라고도 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에드거 앨런 포우의 『어셔가의 몰락』에서 서술자인 3인칭 관찰자가 읽는 바카라 속 내용 같은 걸 들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 연극의 내용은 『햄릿』이라는 연극 자체의 내용과 똑같습니다. 그리고 이 점이 노리는 효과는 바로 그걸 본 관객(1차적으로 연극 내에서는 햄릿이 복수해야 할 대상들)들이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 즉, 가장(假裝)할 시간을 주지 않은 채, 불시에 갑자기 들이대어진 거울 속에 반영된 자신의 추한 얼굴을 무방비한 상태로 그대로 마주하고 불안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리어왕』 속의 글로스터 가의 이야기 역시 이와 비슷합니다. 『햄릿』 속 대사를 통해 셰익스피어는 이런 식의 장치를 두고 ‘자연의 거울(“to hold as ’twere the mirror up to nature (3.2.21-24)”)’이라고 부릅니다. 지난 시간에도 언급을 했지만, 『리어왕』을 읽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nature’ 즉, ‘자연’입니다. 일단 『리어왕』 속의 상황 자체가 ‘unatural’, 즉 전도(顚倒)이고, 인물들의 행위와 이에 대한 그들의 항변 혹은 변명 혹은 신념 역시 모두 ‘nature’하고 연결되어 있지요.




그럼 이제 1막 2장의 내용을 본격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1막 2장의 배경은 글로스터 백작가의 저택입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인물은 총 세 명으로 글로스터 백작, 그의 적자이자 장자인 에드가, 그리고 그의 서자이자 차남인 에드먼드입니다. 1막 2장이 시작되고 제일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바로 에드먼드입니다. 이 인물에 대해서는 지난번에 미리 언급을 드렸었지요. 메인과 서브 플롯 모두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악인’입니다.


사실, 1막 2장의 내용은 별 것 없습니다. 그저 에드먼드가 글로스터 가의 재산과 작위를 찬탈하기 위해 어떻게 모략을 꾸미는지를 그의 설명과 행동을 통해 압축적으로 제시되는 것,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 역시 내용이 잘 이해가 안 가실 분들도 있을 듯 하니, 이를 위한 배경지식을 언급해 드릴게요. 유럽, 특히 영국의 왕족, 귀족들의 전통에서는 장자가 모든 것을 독식합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젠틀맨 시리즈』의 대사나 영국의 해리 왕자가 쓴 자서전의 바카라 제목과도 같이, 차남 이하는 그저 ‘a spare’, 즉 ‘(만일의 상황을 대비한) 예비용’ 일뿐이지요. 집안의 영지와 모든 재산권, 작위 등의 모든 권리는 장남에게 상속되고, 차남에게는 원칙적으로 땡전 한 푼 없습니다.


글로스터 가의 장남은 에드가입니다. 그는 말 그대로 ‘자연의 질서’를 그대로 타고난 인물이지요. 즉, 승계와 관련해서 타고난 고결한 지위도 그렇지만, 귀족다운 외모와 용기, 그리고 성정 역시 이상적인 자연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다시 말해 인(仁), 효(孝), 충(忠)이 온전히 살아 있는 인물이지요. 이 서브 플롯의 상대적 거울이라고 할 수 있는 리어 왕가의 플롯과 비교해 보면, 리어의 막내딸 코딜리어와 충신 켄트 백작에 대응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에드먼드는 이와 완전히 반대이지요. 우선 그는 자연의 질서에 맞지 않게, 즉 ‘unatural’ 하게 태어난 존재입니다. 하지만 이는 어찌 보면 슬롯의 관습에 의한 낙인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인간 슬롯에서는 관습이 곧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것도 얼마나 강력한 ‘자연’으로 여겨지는지, 진짜 ‘자연’보다 더 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어서, 결코 쉽게 깨기 힘든 게슈탈트가 되어버리지요. 왜냐하면 ‘습관’만큼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에드먼드와 같은 입장에 있는 악인이 자신을 변호할 때는 어떤 식으로 해야 가장 효과적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 ‘습관’을 ‘인습’으로 규정하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오히려 자연스러움에 반(反)하는 것이라고 역설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1막 2장의 내용은 핵심은 바로 에드먼드의 이 같은 독백에 있습니다. 1막 2장의 막이 오르고 관객 앞에 홀로 등장한 에드먼드가 날리는 첫 대사부터가 그러하지요.


Edmund. Thou, Nature, art my goddness; to thy law my service are bound. Wherefore should I stand in the plague of custom, and permit the curiosity of nations to deprive me, for that I am some twelve or fourteen moomshines lag of a brother?


(에드먼드: 자연이여, 그대야말로 나의 여신이다. 나는 너의 법칙만을 따를 수밖에. 대체 무엇 때문에 내가 저 역병(疫病)과도 같은 관습 따위를 지킨답시고, 세상의 까다로운 구시렁들이 내 권리를 박탈하게 내버려 둬야 한다는 말이냐? 단지 내가 열두 달 혹은 열네 달 정도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로?)


여기서 에드먼드는 ‘자연’의 의미를 재정의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즉, 세상이 말하는 자연 같은 건 그저 역병 같이 번진 습관일 뿐이고, 진짜 자연의 의미는 그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진짜 ‘자연’이란, 무엇일까요? 계속해서 그의 대사를 살펴보겠습니다.



Why bastard? wherefore base? My dimensions are as well compact, my mind as generous, and my shape as true as honest madam’s issue? Why brand they us with base? with baseness? bastardy? base, base? Who in the lusty steath of nature take more composition and fierce quality than doth, with a dull, stale, tired bed, go to the creating a whole tribe of fops, got ‘teween asleep and wake? Well then, Legitimate Edgar, I must have your land: Our father’s love is to the bastard Edmund as the the legitimate. Fine word, ‘legitimate!’



(왜 내가 가짜란 말이냐? 대체 왜 내가 비천하다는 거지? 저 정절(情節)하기 짝이 없는 부인의 소생에 뒤지지 않을 만큼 내 육체는 잘 균형 잡혀 있고, 내 마음은 귀족다운 고상함을 갖추고 있으며, 내 자태는 딱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빼다 박았는데도? 왜 그들은 내게 비천하다는 낙인을 씌우는 거지? 사생아라고? 비천하다고? 서출이라고? 남몰래 한 뜨거운 사랑의 결과 태어난 자야말로, 저 재미없고, 신선미라고는 없는, 김 빠진 침대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의 결과 태어난 놈들보다, 잠들어 있는 것도 아니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닌 저 머저리 군상들보다 더 생명력이 넘치고, 더 강건한 에너지로 충만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좋아, 뭐 그렇다면, 적자(嫡子)인 에드가여, 나는 아무래도 너의 땅을 가져야겠다. 아버지의 사랑은 적자에게나 이 서출 에드먼드에게나 똑같은 법이니! 적자(嫡子)! 참으로 좋은 말이구나!)


사실, 그가 악인이라는 걸 차치하고, 말 자체를 보면, 이 말은 분명 설득력이 있습니다. 왜 그런지 한번 볼까요? 그는 분명 분개를 하며 항변하고 있지요. 정리해 보면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자연’이라는 게 ‘타고난 것’을 의미한다면, 나는 귀족인 아버지의 모습을 적자인 에드가만큼 빼다 박았고, 훌륭한 육체와 출중한 외모 역시 타고났다. 즉, 자신 역시 황금률과 같은 ‘자연의 이상적인 질서’를 타고난 부분이 분명 있는데, 왜 자신은 ‘unnatural’한 존재 취급을 받느냐는 것이지요. 즉, 이현령 비현령이냐,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것이냐 라고 비아냥 거리는 겁니다.


둘째. 당시 귀족들은 정략결혼을 했으니까 적자들은 대부분 사랑 없는 행위의 결과물, 관습의 의무로서의 결과물인 반면, 자신과 같은 서자는 사랑의 불꽃이 튄 결과 태어난 존재이다. 이 중 어느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인가?’라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고, 심지어는 꽤 설득적이기까지 하지요.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에드먼드의 타고난 천박한 성정과는 별개로 그의 분개는 분명 경청해 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이 셰익스피어를 읽는 맛입니다. 그의 작품의 캐릭터들은 대부분 이처럼 매우 입체적이어서 무한한 해석이 가능하거든요.


아무튼 그 결과, 에드먼드는 ‘자연’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재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반의어’를 이용한 대조를 통해 드러납니다. 즉 ‘bastard(서출, 사생아; 가짜의, 유사품의)’와 ‘legitimate(적자; 적출 소생의, 적법한)’ 사이의 대조이지요. 그리고 그는 세상 사람들이 뜻하는 ‘자연’의 의미는 그저 이 ‘legitimate’ 일뿐이고, 이는 근본적으로, 즉 저 작위적이고 의무적인 태생의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오히려 ‘unnatural’ 한 것일 뿐이다라는 식으로 ‘자연’의 의미를 ‘뒤집어 버립니다.’ 그리고는 오히려, 그 생명력이 넘치는 태생의 원인과 과정을 볼 때, ‘baseness(천박함; 서출)’이야말로 진짜 ‘natural’ 한 것이라고 역설하지요. 왜냐하면 생명력은 자연의 속성 중 하나이니까요. 하지만 자연의 속성은 이것 하나만은 있는 게 아닙니다. 이 말인 즉, 그는 전도(轉倒)를 합리화하기 위해, 심각한 비약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드먼드는 이런 자기변명을 하며, 거짓 편지를 작위 하고, 자신의 아버지인 글로스터 백작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양 거짓 연기를 합니다. 그 편지 속 내용은 에드가가 조금이라도 빨리 아버지의 작위와 재산을 갖고 싶어서 하극상을 벌이기 위해 에드먼드의 의사를 떠보는 내용이지요. 물론 이는 에드가가 쓴 편지가 결코 아닙니다. 에드먼드가 만들어낸 가짜 편지이지요. 하지만 리어처럼 ‘성급하고 오만한 습성에 젖어 진실을 판별할 줄 아는 눈이 멀어 버린 장님’인 글로스터는 이 편지 하나로, 너무도 성급하게 고결한 에드가를 천하의 호래자식으로 여겨 버립니다. 리어가 코딜리어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지요.


여기까지가 1막 2장의 내용입니다. 어떠신가요? 재미있지 않나요? 이 리뷰 시리즈를 작성하기 위해 정말 오랜만에 『리어왕』을 다시 읽어보고 있는데, 몇 번을 봐도 정말 재미있습니다.


오늘은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소금과 맞바꾼 시계> 2편으로 찾아뵐게요. 2주 뒤 이어질 『리어왕』 리뷰는 아마도 1막 3~5장에 관한 내용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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