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셰익스피어 『리어왕』리뷰 시리즈(2)

1막 1장

byJuncus

안녕하세요, 준쿠스입니다.


오늘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의 <1막 1장>을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1막 첫 장의 공간적 배경은 리어 왕의 궁전입니다. 그리고 맨 처음 등장하는 인물들은 바로 켄트 백작과 글로스터 백작, 그리고 글로스터 백작의 서자(庶子) 에드먼드이지요. 이 세 인물은 모두 이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들을 할당받은 인물들입니다. 각자의 역할이 확실하지요.


먼저 켄트는 선한 인물로서 리어의 어리석음과 광기, 오만을 경고하고, 그를 올바르게 인도하기 위해 노력하는 충신(忠臣)입니다.


반면, 글로스터는 굳이 말하면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은 입체적인 인물로서, 일종의 리어의 거울 같은 인물입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의 플롯은 이중으로 되어 있는데, main plot의 주인공이 바로 ‘리어 왕’이라면, sub plot의 주인공은 바로 이 ‘글로스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두 플롯은 각기 서로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그리고 ‘에드먼드’는 이 작품에서 맨 처음 등장한 ‘악인’이지요. 투박하게 보자면, 이 작품의 갈등 라인은 크게 두 개입니다. 하나는 선(善)과 악(惡)의 대립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악(惡)들 사이의 대립이 바로 그것이지요. 그리고 에드먼드는 이 두 가지 양상의 대립 모두에 관여하는 인물이지만, main plot과 관련해서는 이 중 후자, 즉 악(惡)들 사이의 대립을 유발·심화시키는 원인이자 중심축입니다. 그리고 그 나쁜 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주된 내용은 육욕(肉慾)과 집착, 질투이지요. 그래서인지 에드먼드는 상당한 미남으로 묘사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이런 성정과 앞으로 그로 인해 벌어질 이 추악한 체액과 살냄새가 나는 갈등에 대한 복선이 첫 장면의 첫 대화부터 나옵니다. 바로 켄트와 글로스터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화가 바로 그것이지요.



Kent. Is not this your son, my lord?


Glouster. His breeding, sir, hath been at my charge: I have so often blushed to acknowledge him, that now I am brazed to it.


Kent. I cannot conceive you.


Glouster. Sir, this young fellow’s mother could: whereupon she grew round-wombed, and had, indeed, sir, a son for her cradle ere she had a husband for her bed. Do you smell a fault?


(켄트: 이 분은 경의 아드님이 아닙니까?


글로스터: 예, 뭐, 제가 길러오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이 녀석을 아들이라고 해야 할 때마다 얼마나 얼굴을 붉혀야 했던 적이 많았는지, 뭐 이제는 아예 뻔뻔해지기로 했습니다만.


켄트: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군요.


글로스터: 이 녀석의 애미는 알아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둥그렇게 배가 부풀었지요. 사실 말입니다, 경. 침대에서 남편을 맞기도 전에 이미 요람에 아들을 뉘었다니까요. 뭔가 부정(不貞)의 냄새가 나지요?)


셰익스피어의 문체적 특징 중 하나는 ‘pun’을 자유자재로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pun’은 일종의 말장난 기술로, 다의어나 동음이의어를 이용해서 은밀한 의미 전달이나 풍자 등을 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특히 『헨리 4세』를 보면, 이게 거의 문장 단위로 이루어질 때도 있지요. 『리어왕』에서도 역시 맨 시작부터 이 ‘pun’의 사용을 통해, 인물들의 성격, 극의 주제적 환경,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사건의 암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인용한 저 대화에서 볼드 처리가 된 단어 ‘conceive’가 바로 이런 ‘pun’의 사용의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conceive’는 본래 ‘품다’의 의미를 가진 다의어입니다. 그래서 ‘생각 등을 마음속으로 하다.’의 의미로 많이 쓰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파생되어서 ‘이해하다’의 의미도 있습니다. 이 대화에서 켄트가 말하고 있는 의미는 바로 이 ‘이해하다’의 뜻일 겁니다. 한편, 이외에도 ‘임신하다’의 의미도 있지요. 즉, ‘엄마가 아이를 뱃속에 품는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의미는 바로 글로스터가 하는 말의 행간을 우회적으로 암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말 뭔가 ‘구린 냄새(the smell of a fault)’가 이 한 단어를 통해 나지요?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이 ‘conceive’라는 단어는 이 극의 주제를 관통하는 매우 의미심장한 단어입니다. 그리고 왜 그러한지는 다음에 이어질 극(劇)의 내용을 설명한 뒤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후 리어 왕이 자신의 세 딸, 나이순대로 거너릴, 리이건, 그리고 코딜리어와 함께 등장합니다. 또한 이들 곁에는 두 명의 사위, 즉 거너릴의 남편인 올버니와 리이건의 남편인 콘월도 있습니다. 이들의 등장과 함께 리어는 왕국의 분할에 대한 자신의 오랜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다음과 같은 조건을 내겁니다.


“Tell me, my daughters. Since now, we will divest us both of rule, Interest of territory, cares of state. Which of you shall we say doth love us most? That we our laregest bounty may extend where nature doth with merit challenge.”


(말해다오, 내 딸들아. 이제부터 짐은 국가의 주권도 국토의 영유권도 그리고 정무의 번거로움도 모두 벗어버릴 생각이니. 너희들 중 누가 짐을 가장 사랑하느냐? 내가 가진 애정과 너희들이 가진 덕이 가장 큰 상(賞)을 요구하게 되는 쪽에게 가장 많은 재산을 주겠다.)


이 장면에는 앞으로 리어에게 일어날 모든 비극의 원인이 말 그대로 투명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어떤 은유도, ‘pun’을 이용한 암시 같은 것도 전혀 없지요. 즉, 너무도 자명한데, 그 원인을 단 한 사람만 모릅니다. 바로 ‘리어’ 자신이지요. 그렇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요? 여러분들도 다 아실 것 같지만, 한번 정리해보겠습니다.


첫째. 너무도 섣불리 왕으로서의 자신의 권리를 양도한 것.


➜ 이는 장군이 칼을 부하에게 쥐어주고, 자신은 계속 장군 노릇을 하겠다는 것과 똑같은 행위입니다.


둘째. 사랑을 양적으로 계량하려고 한 것.


➜ 이것은 질적인 것을 양적으로 환산하려고 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입니다. 그리고 대개 이 양적인 환산의 기준은 바로 ‘거짓’인 경우가 많지요. 즉, 사기꾼의 화려한 언변을 믿고 그에게 모든 권리를 양도하는 것과 같은 꼴입니다. 바보 같은 짓 같지만, 사기는 인간 슬롯에서 가장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악(惡)이지요. 그리고 이런 악은 늘 그것을 선한 척 위장(僞裝)합니다. 즉, 그 의도를 속으로 ‘conceive’하고, 겉으로는 상대가 듣고 싶은 말만 쉽게 하거나, 상대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거짓 정보들만 혼란스럽게 던지지요. 켄트와 같은 선인(善人)은 이런 위선을 품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I cannot conceive you.”라는 그의 대사는 의미심장합니다. 매우 주제적인 암시가 담겨 있지요.


이런 악인은 속으로는 악의를 품고conceive, 겉으로는 선의로 상대를 기만deceive합니다. ‘deceive(속이다. 기만하다)’라는 단어는 ‘de-’라는 접두사와 ‘-ceive’라는 어근으로 된 합성어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de-’는 ‘bad’ 즉, ‘나쁜’을 의미하지요. 그러므로 말의 의미를 풀자면, ‘나쁜 방식으로 생각 등을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이라는 뜻이겠지요. 그리고 여기서 ‘나쁜 방식’이 향하는 대상은 바로 받아들이는 사람 자신입니다. 사기꾼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잖아요? ‘속는 사람이 바보다.’


여기서 리어가 딱 이 경우입니다. 그는 리건과 거너릴의 입 바른 과장된 말에 현혹됩니다. 말 그대로 그들이 품은 악의는 보지 못하고 그들의 호들갑스럽게 가장한 선의에 속아 넘어갑니다. 그리고 진짜 선의를 가진 막내 코딜리어의 건조한 말들에는 분노하지요.


“Lear. What can you say to draw a third more opulent than your sisters? Speak.


Cordelia. Nothing, my lord.


Lear. Nothing?


Cordelia. Nothing.


Lear. Nothing will come of nothing; Speak again.


Cordelia. Unhappy that I am, I cannot heave my heart into my mouth: I love your majesty according to my bond; nor more nor less.”


(리어: 너는 무얼 말하겠느냐? 네 언니들보다 훨씬 더 풍족한 3분의 일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말해보거라.


코딜리어: 아무 할 말이 없습니다, 아버지.


리어: 아무 말도?


코딜리어: 아무 말도.


리어: 무(無)에서는 무(無)만 나올 뿐이다. 다시 말해보거라.


코딜리어: 유감스럽게도 저는 제 마음을 제 입으로 올려 말하지 못합니다. 저는 전하를 자식 된 도리에 따라 사랑하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That we our laregest bounty may extend where nature doth with merit challenge.” 이나 “Nothing will come of nothing.” 과 같은 대사를 보면, 리어는 분명 양적인 환산으로 자신에 자신들의 대한 사랑을 측정하려고 하는 우매함을 가지고 있지요. 특히, “That we our laregest bounty may extend where nature doth with merit challenge.”라는 대사에서 ‘nature’라는 단어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이건 제 해석이기는 하지만, 이 대사에서 리어는 이를 ‘부모로서 가지는 자식에 대한 애정’이라는 뜻과 동시에 ‘왕으로서 천부적으로 부여받은 자유재량권’을 말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자연스러운 것’은 결코 양적으로 환원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지요. 하지만 이런 점에서 리어는 매우 오만한 눈먼 자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스스로 ‘nature’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겠다고 말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딸들 보이는 태도 속에서는 무엇이 자연스럽게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 위선인지를 전혀 구별하지 못하거든요. 여기에 직접 인용을 하지는 않았지만, 심지어 그는 스스로 말하는 저 기준에 가장 온전하게 부합하는 코딜리어를 두고 ‘unnatural’ 하다며, 비난을 퍼붓습니다. 여기서 ‘unnatural’이란, 사람의 자식이 아니라, 짐승의 자식처럼 배은망덕하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코딜리어의 저 말, “I cannot heave my heart into my mouth.”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을 보면, 셰익스피어가 이 대사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당시 자주 언급되었던 걸로 보이는 《구약 외경》의 격언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The heart of fools is in their mouth; but the mouth of the wise is in their heart(우매한 자들의 마음은 그들의 입에 있고, 현명한 자들의 입은 그들의 마음에 있다.).”라는 것이지요.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무슨 뜻이지 아시겠지요?



당시 리어의 궁전에는 코딜리어에게 청혼하고자 찾아온 인물이 두 명 있었습니다. 바로 버건디 공작과 프랑스 왕인데, 둘 다 왕족입니다. 버건디는 브루고뉴 공국을 의미하지요. 지금의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지역 말입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자, 리어는 코딜리어에게 지참금을 하나도 주지 않습니다. 그러자 버건디 공작은 청혼을 포기하지만, 프랑스 왕은 오히려 그런 코딜리어의 성정에 반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Gods, gods! ‘tis strange that from their cold’st neglect, my love should kindle to inflam’d respect.”


(신이시여, 신이시여! 참으로 이상하구나! 그들의 가장 차가운 멸시 때문에 오히려 내 사랑에는 존경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으니!)


그리고 결국 코딜리어는 프랑스로 떠나게 되지요.


어떤 이들은, 어쩌면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런 코딜리어의 태도를 두고 오만하다고 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 대개 진실한 사람은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장을 하지 않기에 오만하다는 오해를 사고는 하지요. 그리고 이런 우매함 때문에 사람들은 기만에 자석처럼 끌립니다. 스스로도 자기 자신을 쉽게 기만하고, 남에게도 쉽게 기만을 당하지요. 마치 저 ‘King Lear’처럼 말입니다.


Kent는 왕의 이와 같은 우매함과 성급함을 비판하며 직언을 합니다. 그 결과, 추방을 명령받지요. 그런 그가 마지막으로 리어에게 코딜리어에 대해 다음 같은 말을 합니다.


“Thy youngest daughter does not love thee least: Nor are those empty hearted whose low sound reverbs no hollowness.”


(당신의 막내딸이 당신을 가장 덜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의 낮은 목소리가 공허한 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일수록 그 마음은 텅 빈 게 아닙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어떠셨나요? 수 백 년 전의 작품이지만, 내용을 보면 매우 현대적이지요. 왜냐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의 본성은 변한 게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 리뷰 시리즈의 다음 편은 2주 후에 올릴 예정입니다. 그때 다룰 내용은 1막 2장으로 이 작품의 sub plot인 글로스터 가(家)의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주에는 아무것도 올리지 않느냐? 그건 결코 아닙니다. 다음 주에는 제가 써 놓은 우화가 한 편 있는데, 이것의 일부분을 올리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이것을 총 4회의 시리즈로 나뉘어서 『리어왕』 리뷰 시리즈와 함께 격주로 번갈아 가며 올릴 생각입니다. 이 우화는 길지 않습니다. 대신 아름다움 삽화와 함께 올릴 예정이에요. 재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아 조금 기대가 됩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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