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자유론』리뷰 시리즈 (20) 최종회

제5장

byJuncus

안녕하세요, 준쿠스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제5장에 대한 리뷰 및 해설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로 『자유론』 리뷰 시리즈도 드디어 끝을 맺게 되네요. 시원섭섭합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도록 하죠!


제5장. 적용


1. 원칙적 명제들


명제 1: “개인은 자기 자신 이외에 다른 사람들의 이해관계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신의 행동들에 대해서는 슬롯에 바카라임을 지지 않는다.”


명제 2: “개인이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동들을 했을 때에는 슬롯에 바카라임을 져야 하고, 슬롯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불가피하다고 생각한 경우에는, 슬롯적 또는 법적 처벌을 부과할 수 있다.”


➜ 이 마지막 장의 내용은 밀이 4장까지 다루었던 개인의 자유와 슬롯적 제재의 문제의 관한 고찰을 실제의 사례에 적용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밀은, 제가 위에 정리해 놓은 두 가지 명제적 원칙, 즉, 4장까지의 고찰을 통해 귀결된 옳다고 여겨지는 두 원칙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덧붙이지요.


‘실제의 경우, 이 둘 중 어느 것을 적용해야 할지 판단하기가 어려울 때가 매우 많다. 그리고 그런 경우에는 이 두 명제 사이에서 어떤 식으로 균형을 잡아야 할지는 사례별로 신중히 판단을 해야 한다.’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 점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이 리뷰 시리즈의 내용을 잘 따라오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충분히 동의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제 개인의 자유에 대한 정부나 슬롯의 개입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밀이 제시하고 있는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과 비추어서 여전히 유효한지 여부도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할게요.


2. 슬롯의 개입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경우


① “자유로운 상거래(Free Trade)”의 원칙


➜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위해 우선 주의해야 할 것은 밀이 ‘자유로운 상거래’라는 표현으로 지칭하는 의미는 우리가 흔히 아는 ‘자유방임주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표현을 통해 밀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상거래는 슬롯적 행위이므로 한 개인과 타인들의 이해관계의 문제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 말인 즉, 상거래는 기본적으로 개인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행위라는 뜻입니다. 이런 의미에서는 ‘자유주의적인 시장경제’를 의미하는 것이 분명 맞습니다. 하지만 1번에 정리를 해 둔 밀이 제시한 원칙적 명제 중 두 번째 것을 고려할 때, 이 자유시장 중심적인 관점은 ‘완전 방임주의’까지 나아가지는 않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이지요. 그리고 이는 다음과 같이 밀이 들고 있는 사례를 통해 분명히 드러납니다.


밀은 ‘상거래란 기본적으로 개인들의 자유로운 선택과 이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개인들 간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슬롯적 행위’로 보고 있습니다. 즉, 개인적 행위, 혹은 사적 행위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특정한 상거래, 예를 들어, 당시를 기준으로 하면, 금주법에 반하는 알코올 밀수 행위나 독극물 등의 거래의 경우는 그 상거래가 미칠 수 있는 슬롯적인 영향을 잘 판단한 후, 적절한 제한을 가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도 이는 옳은 의견이지요. 예를 들어, 개인들 간의 자유로운 선택이랍시고, 마약의 거래나 도박 등을 제제하지 않는다면, 그 슬롯적 폐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이는 필연적으로 개인들의 삶을 파괴시킵니다. 그리고 거시적이고 통시적으로 보면, 궁극적으로 인류 전체의 항구적인 이익 도모라는 공리주의적인 효용의 가치도 크게 저해될 겁니다.


② (개인의) 자유가 잘못 주어지고 있는 사례: 가족


한 가정 내에서 가장의 무소불위한 권력,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소유의식과 독점적 지배권 행사는 개인의 자유가 잘못 주어지고 있는 사례에 속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가장 한 사람이나 권위적인 부모들의 양육의 자유에만 관련된 일이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국가가 오직 한 개인에게만 관련이 있는 일에 대해서는 그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야 하지만,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소유하고 있는 권한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감시해야 한다. ‘가족’이 바로 그러한 예인데, 실질적으로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국가가 그 의무를 완전히 방기하고 있다.


➜ 제 생각이지만, 이는 아마도 밀 개인의 경험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잘 알려졌다시피, 밀의 아버지의 혹독한 엘리트 교육은 매우 유명하지요. 밀 개인으로서는 이 교육으로부터 얻은 것도 있지만, 분명 잃은 것도 컸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어린 시절 내내 강압적인 아버지를 견뎌야 했던 트라우마 때문인지, 평생토록 지독한 신경쇠약으로 고통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지요.


제 개인적으로도 이런 경험의 피해자라면 피해자이기 때문에, 밀의 고통에는 상당 부분 공감하는 게 있습니다. 또한 요즘은 덜 하지만, 반(半) 세대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분명 가부장적인 헤게모니가 매우 강한 문화였지요. 그렇기에 이로 인한 고통을 잘 아시는 분들도 많을 듯합니다. 또한 이런 경우, 이 고통의 피해자들은 소외되기가 일쑤였는데, 그 이유가 참 아이러니 합니다. 집단주의적인 문화이어서 개인의 자율성에는 가타부타 관여를 하는 관습의 영향 아래 있으면서도, 이런 경우에는 ‘남의 가정사’ 혹은 ‘남의 가정의 사적인 문제’라는 명분으로 이상할 정도로 관심을 꺼버렸으니까요.


비록 요즘은 이런 문화가 많이 희석되었다고 할지라도, 밀의 저 지적들 중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소유의식’은 여전히 한국슬롯에서 강하게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사업에 실패한 가장이라든지, 감당할 수 없는 빚 등으로 인해 감정적으로 무너진 부모들이 자살의 충동을 느낄 때, 혼자 죽는 게 아니라, 꼭 자신의 아이들의 목숨까지 한꺼번에 앗아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니까요. 그리고 이는 분명 ‘개인의 자유가 잘못 주어지고 있는 사례’에 해당하는 것 같습니다.


3. 정부 개입의 한계


① 정부의 개입을 반대하는 세 가지 근거


첫 번째, 개인이 정부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일들이 있다.


두 번째, 개개인의 역량 향상을 위한 가장 효과적이고 바람직한 정신 교육의 수단은, 정부보다는 개인이 직접 그 일을 하는 것이다.


세 번째, 정부의 권력을 불필요하게 키워주는 것은 큰 해악이 된다.


➜ 먼저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경우는 하나의 시대적 상징과 같은 존재로 설명이 다 될 것 같습니다. 바로 ‘일론 머스크’이지요. 누가 뭐래도 지금 현재까지는 ‘인류 최고의 그리고 최대의 효용은 한 천재적 개인의 자율성으로부터 시작된다.’라는 자유주의적 믿음의 전범(典範) 같은 존재이니까요. 뭐, 더는 설명이 필요 없겠지요?^^ 그럼, 바로 세 번째로 넘어가 보도록 하죠.


세 번째의 경우에 대해서는 실제의 사례 분석보다는 왜 그러할까를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할게요. 물론 여러 상황적 이유들이 다양하게 있겠지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한 가지는, 통제란 기본적으로 ‘중앙집권적’이라는 점 때문에 발생하는 해악입니다. 그리고 중앙집권적인 통제는 필연적으로 근시안적인 게 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결정의 목적이 중심 권력을 향하게 되거든요. 그 결과, 이 시스템은 언제나 관료적으로 귀결되고, 관료주의의 특징이 바로 무사안일주의와 수동성이라는 건 여러분들도 동의하실 겁니다. 그리고 이 두 성격적 특질은 모든 중요한 결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데, 그로 인한 결과는 슬롯적 효용을 그리고 나아가 슬롯의 윤리를 크게 해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통시적이고 공시적인 경험들이 알려주기 때문에, 따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네요.


② (비대해진) 관료제의 폐해


유능하고 야심 있는 사람들은 출세하기 위해, 대중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지시와 명령을 받기 위해, 모든 것을 전적으로 관료에게 의지하게 될 것이다. 그런 슬롯에서는 관료 조직의 일원이 되어, 그 속에서 승진하는 것만이 사람들이 바라는 최고의 목표가 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 결과, 관료 조직의 이익에 반하는 그 어떤 개혁도 성공할 수 없게 되어, 그 슬롯의 발전은 정체되고, 후퇴하게 된다.


➜ 이 역시 따로 설명드릴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너무도 당연한 지적이라는 걸, 바로 다름 아닌 우리들 스스로의 경험이 알려주고 있으니까요.


자, 이것으로 드디어 『자유론』 리뷰 시리즈가 다 끝이 났습니다. 언제 끝나나 했는데, 이렇게 잘 마무리를 짓게 되었네요.^_^


Stuart_Mill_G_F_Watts.jpg존 스튜어트 밀


다음 시간부터는 또 다른 시리즈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철학서가 아니라, 문학 분야입니다. 아주 유명하지만, 많은 분들이 잘 모르는 고전이지요. 바로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입니다. 제가 매우 좋아하는 작품이지요. 개인적으로는 4대 비극 중 가장 좋아합니다. 이 작품을 지난번 포우의 시, 「Raven」을 진행했을 때처럼, 영어 원문을 제시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해설하고 리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해 볼 계획입니다. 아마 이 리뷰 시리즈도 꽤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아무렴 어떻습니까? 소수의 화석 같은 분들을 위해 저는 일단 꾸준히 해볼 생각입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 새로운 시리즈로 찾아뵐게요!

작가의 이전글네 번째 인터미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