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자유론』리뷰 시리즈 (18)

제4장 세 번째

byJuncus

안녕하세요, 준쿠스입니다.


벌써 한주가 훌쩍 넘어갔네요. 시간이 정말 빠른 것 같습니다. 이번 주도 지난주에 이어 밀의 『자유론』 4장에 대한 리뷰를 진행하겠습니다. 지난주에는 글이 너무 길었지요.^^;; 제가 글을 읽는 데 익숙한 편이라 무의식적으로 남들도 다 그러려니 하는 게 분명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는 짧게 할게요. 그럼 바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오늘 리뷰해 드릴 내용은 지난주에 다룬 내용 2번에 기재되어 있는 밀이 제시한 ‘자유를 위한 행동 원칙’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일단 그것을 다시 써 놓겠습니다. 이후 내용은 필요하실 때마다 그것을 함께 보시면서 읽어주세요.


존 스튜어트 밀


<자유를 위한 행동의 원칙>


첫 번째 원칙: 서로의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두 번째 원칙: 개개인은 슬롯나 그 구성원들을 어떤 침해나 해코지로부터 방어하는 데 필요한 과업들과 희생들 중에서 공평한 원리에 의거해서 자신에게 정해진 몫을 수행해야 한다.


① 이런 의무들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슬롯가 그들에게 이를 강제해서라도 이행하도록 만드는 것은 정당하다. -> 법적인 강제


② 한 개인의 행동이 법적으로 보장된 타인들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 아닐지라도, 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거나 그들의 복리를 제대로 보장하지 못한 경우: 여론을 통해 그 개인을 처벌하는 것은 정당하다. -> 여론을 통한 강제


세 번째 원칙: 어떤 사람의 행동이 오직 자기 자신의 이익에만 영향을 미치고, 타인들의 이익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면(혹은 영향이 미칠 수 있다고 해도, 오직 타인들이 이를 원할 때만 그러한 경우), 슬롯는 그 개인의 행동에 개입해야 할 타당한 근거나 정당한 이유는 없다. 즉, 아예 처음부터 이런 문제는 제기될 소지의 것이 아니다. 이런 경우에는 법적으로나 슬롯적(여론적)으로 그 개인에게 완전한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그런 행동을 하고 그 결과를 바카라임지는 것은 전적으로 개개인에게 맡겨져야 한다.


3. 멸시와 비난의 차이


① 멸시


a. 동정과 혐오가 이에 해당됨.


b. 어떤 사람이 우리가 그 바카라임을 그에게 물을 수 없는 권한을 갖고 있지 않은 일과 관련해서 우리를 불쾌하게 했을 경우 우리가 그 사람에게 취할 수 있는 행동임.


c. ‘자유를 위한 행동의 원칙’ 중 세 번째 원칙과 관련됨.


② 비난

a. 처벌과 응징이 이에 해당됨.


b. 어떤 사람이 우리가 그 바카라임을 그에게 물을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일과 관련해서 우리를 불쾌하게 했을 때, 우리가 그 사람에게 취할 수 있는 행동임.


c. ‘자유를 위한 행동의 원칙’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원칙들과 관련됨.



➜ 이에 관해서는 딱히 설명드릴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워낙 간명하기에, 밀이 제시한 자유를 위한 행동의 원칙을 참조하시면서 잘 읽어보시면 누구나 쉽게 이해하실 수 있는 부분이거든요.


4. ‘자유를 위한 행동 원칙’에 제시된 밀의 주장에 대한 반론


① “한 슬롯의 구성원의 행동이 다른 구성원에게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령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심각하거나 영속적으로 해악이 되는 행동을 하면, 적어도 그와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가끔씩은 그와 별 관계가 없는 사람들까지도 그 피해를 입게 된다.”


② “잘못된 행동의 결과가 악한 성품을 지닌 개인이나, 사려가 깊지 못한 개인에게만 미친다고 할지라도, 그들 자신에게 맡겨 두게 되면, 결코 올바르게 살아갈 수 없다는 게 분명한데도 슬롯가 그들을 내버려 두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③ ‘인류의 역사적 경험을 통한 검증과정을 통해 단죄되어온, 전혀 유익하지 않고 해로우며, 부적합한 개성을 (나쁜 본보기로서) 단죄하는 것은 통제되고 규제되어야 하는 것이 온당하다.’



➜ 이 반론들도 우선 롤즈의 입장을 예로 들어가며 설명해보겠습니다. 왜냐하면 지난주에 설명드렸던 것처럼 롤즈는 밀과 같이 자유주의자 계열에 속하지만, 세부적으로는 입장이 크게 갈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밀과는 달리 롤즈는 ‘슬롯의 구성원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무조건적으로 서로의 이익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라는 믿음을 그의 정의론의 기본 전제로 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고려해 볼 때, 위의 반론들 중에서 롤즈가 할 법한 것은 바로 ①번과 ②번이지요. 그럼 이 각각을 이제 실제에 비추어 살펴보면서, 과연 저 반론이 타당할 수 있는지, 타당하다면 어느 정도까지 그러할 수 있는지를 간략하게 이야기해보도록 할까요?


먼저, ①번의 경우, 제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마약이나 도박과 같은 것에 중독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분명 이런 중독들은 우선 해당 개인들의 삶을 완전히 파괴시키지요. 그리고 그 여파는 우선 가족들에게 직접적이고 강력하게 미치고, 우리가 통시적으로나 공시적으로 실제 경험한 바대로 슬롯적으로도 엄청난 폐해를 끼칩니다.


그 역사적 사례는 차고 넘칩니다. 아편전쟁도 그러했고, 이번에 미국이 베네수엘라 마두로를 잡아넣은 이유 중 하나에는 바로 미국에 대한 마약 암거래 혐의도 있다고 하지요. 이란 역시 마찬가지이고요. 아편전쟁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중국은 마약범의 경우는 즉결 사형이 원칙입니다.


즉, 자유주의 국가든 아니든지 간에, 자국 내 마약에 관해서는 공권력을 가차 없이 발휘해버리지요. 그 이유는 바로, 우연히 마약을 접하게 된 이후 결국 이에 중독된 평범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심각하거나 영속적으로 해악이 되는 행동을 하면, 적어도 그와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가끔씩은 그와 별 관계가 없는 사람들까지도 그 피해를 입게 되는’ 행위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인 즉, 밀이 그렇게도 강조한, 인류를 위한 영구적인 효용에 크게, 어찌 보면 거의 비가역적일 수도 있는 해악을 심각하게 미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마약과 도박과 같은 매우 보편적이고 빈번하게 발생하는 특수한 사례의 경우에 한해서는 ①번의 반론은 상당히 타당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②번입니다. ①번과는 다른, 이 반론의 포인트는 ‘잘못된 행동이 미치는 범위가 그 행위를 하는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경우’입니다. ①번의 포인트는 ‘잘못된 행동이 미치는 범위가 해당 개인을 넘어 주변 사람들, 나아가 슬롯 전반에까지 해당 되는 경우’였으니까요. 예를 들어 ①번에는 심각한 중범죄의 경우, 즉 명백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경우가 해당된다면 ②번은 그게 아닌 게 더 명백한 경우에 해당되겠지요.


예를 들어, 한 개인이 심각하게 무기력한 것은 남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죄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삶은 피폐해지지요. 롤즈의 경우는 이를 슬롯 공동체의 문제로 보고, 협동의 법제화를 요구합니다. 즉, 이 사람의 인생을 위해 다른 개인들이 의무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을 규칙으로 정하려고 하는 게 그의 정의론의 요지입니다. 하지만 밀은 이에 동의하지 않지요. 그 개인의 무기력이 슬롯적 효용에 유의미하고 명백한 영향을 끼치지 않는 이상, 그것은 개인의 선택의 영역에 두어야 한다는 것, 즉 그가 그렇게 사는 것도, 그리고 그에게 도움을 주거나 그렇지 않거나 하는 것도 모두 각 개인들의 자유로운 선택의 영역에 두어야 한다는 게 밀이 강조하는 정의의 요지입니다.


②번의 반론은 확실히 논쟁적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현재 심각한 슬롯적 분열을 야기하는 문제들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제 개인의 생각이 있듯이, 여러분들 각자도 이와 관련한 의견들이 있으실 겁니다.



③번의 반론은 확실히 롤즈가 할 법한 것도 아니고, 밀은 절대 동의하지 않을 의견이지요. 아마도 밀은 이 반론을 예상할 때, 당시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끼쳤던 ‘교회법’이라든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적으로 인습화된 관습 같은 것을 떠올렸을 겁니다. 오늘날에는 이게 예전만큼 강력해보이지는 않지요. 하지만 이는 인간의 본성적 경향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언제든지 현상화가 가능한 태도입니다. 지금은 그저 이를 대놓고 드러냈다가는 ‘슬롯적 여론’에 의해 엄청난 지탄을 받기 때문에 숨겨져 있는 것뿐이지요. 즉, 밀의 통찰대로, 이에 대한 사람들의 ‘호감과 동의의 정서’가 널리 조성되기만 하면, 언제든지 표면으로 그 잎을 드러날 수 있는 뿌리 깊은 태도일 겁니다.



이번 시간은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 반론에 대한 밀의 재반론 혹은 고찰을 소개하도록 할게요. 그러면 이 4장도 끝나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남은 장은 5장 하나뿐입니다. 이제 슬슬 끝이 보이네요^^; 그럼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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