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인터미션

프란츠 카프카 ,『성(城) Das Schloss』(1)

byJuncus


안녕하세요, 준쿠스입니다.


이번 시간은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자유론』 4장에 대한 리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세 번째 인터미션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두 번째 인터미션 때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의미심장한 이야기인 ‘대심문관’에 대해 짤막한 시론을 이야기했었지요. 오늘 이야기해보려는 것도 넓은 범주에서는 이와 맥락이 닿아 있는 주제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이야기들은 인간의 구원과 자의식, 자율성 그리고 실존 등의 키워드로 풀어낼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프란츠 카프카에 대해 짤막하게 소개를 해드리겠습니다. 아마도 ‘카프카’라는 이름은 익숙하게 들어보셨을 듯합니다. 이름 자체가 한국인이 듣기에는 시쳇말로 꽤나 ‘간지’가 있는 느낌이라, 이 이름을 좋아하시는 분들을 종종 봤습니다. 하지만 막상 카프카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모르시는 분들도 의외로 많고, 무엇보다 그의 소설들을 읽어보신 분들보다는 읽어보시지 못한 분들이 더 많은 것 같더라고요.


카프카의 소설들 중 그래도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바로 『변신』이라는 단편이지요. '그레고르 잠자'라는 이름을 가진 어떤 소심하고 평범한 청년이 어느 날 아침 흉물스러운 곤충으로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그 작품 말입니다. 이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카프카의 작품은 전통적인 소설의 플롯과는 다소 괴리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작품은 이야기의 형식을 입은 하나의 은유에 가깝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은 기본적인 소설 읽기 방식인 인과적인 플롯에 따라 이해하려고 하면 잘 읽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작품은 우리가 ‘신화’를 읽을 때 취하는 태도를 가지고 다루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을 때, 우리는 그 상징과 은유에 방점을 둡니다. 이 경우 인과성은 부차적인 것이지요. 즉, 간단히 말해, 카프카의 작품은 전형적인 ‘알레고리Allegory’에 가깝게 보고 읽을 때, 그 의미에 가장 근접하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알레고리’란, 본래 ‘다르게 이야기하기’라는 뜻으로 하나의 원형적인 이야기를 여러 변주로 표현하는 맥락적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알레고리는 단지 소설뿐만 아니라 ‘표현’을 통해 전달되는 모든 종류의 예술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미켈란젤로나 도나텔로, 다빈치 등의 예술 작품들도 일종의 알레고리들입니다.


카프카는 체코 프라하에서 태어났습니다. 프라하의 까를 교(橋) 밑에 카프카 전시관 비슷한 게 지금도 있지요. 지금이야 체코가 유명한 관광지로 전 세계인이 찾는 곳이지만, 불과 100년도 채 안 되는 기간 전까지는 말 그대로 이방인의 나라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키며 가장 먼저 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체코를 점령한 것이었는데, 당시 영국의 수상이었던 체임벌린은 이 행위의 위험성을 평가절하하며 ‘그런 우리가 알지 못하는 먼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표현을 썼었습니다. 이 말인 즉, 같은 유럽 대륙의 사람들에게조차도 이곳은 ‘완전한 변방’으로 소외된 채로 여겨졌다는 뜻일 겁니다.


카프카 전시관


원래 이 지역을 지칭하는 전통적인 이름이 있지요. 바로 ‘보헤미아(Bohemia)’입니다. 그리고 현재 이것의 파생어인 ‘보헤미안’이라는 단어는, 본래의 고유명사에서 의미론적 외연이 넓혀져서 보통명사나 형용사로도 쓰이지요. 그리고 그 의미는 ‘방랑자’, ‘구속된 바 없이 자유로운’ 정도가 될 겁니다.


지금이야 이 단어들이 매우 로맨틱하게 들리지만, 카프카가 살던 당시는 별로 그렇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인 즉, 이 보헤미아 지역은 집시와 같이 부평초(浮萍草) 같은 사람들이나 유태계 디아스포라들과 같은 ‘주변인들’이 모여 사는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근대 이후 국민국가 개념이 생겨나고, 이를 바탕으로 민족주의와 낭만주의가 유럽인의 정신의 게슈탈트gestalt, 즉 유기적 전체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던 때에, 카프카와 같이 매우 예민한 천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런 보헤미안적인 것은 일종의 ‘결핍’이자 소외 그리고 파편화된 자의식 등으로 인식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런 ‘무근저성(無根底性)’, 즉 ‘뿌리 없음에 대한 의식’은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처절한 정서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똑같이 실존주의적인 작가라고 하더라도, 도스토예프스키가 형상화하는 인물들과 카프카가 자신의 작품 속에 투영한 인물들이 서로 큰 차이가 나는 이유입니다. 즉, 도스토예프스키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이 ‘러시아인’이라는 것을 매우 강하게 의식하고 있지요. 그들에게 있어서는 심지어 ‘신’조차도 ‘러시아’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에게 있어 ‘러시아’는 실존은 넘어선 실체처럼 여겨지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반면, 카프카의 인물들은 이런 ‘뿌리의식’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 중 이것이 가장 심각하게 형상화된 것이 바로 미완성 유고작인 『성(城)』입니다.


카프카는 이 보헤미아의 오래된 도시인 프라하에서 독일계 유태인 소시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체코에 살았지만, 그의 모국어는 체코어가 아닌, 독일어였지요. 그리고 바로 이 점이 그가 독일 작가로 분류되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독일어로 소설을 썼거든요. 보헤미아, 유태인, 독일어라는 외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해야 했던 환경 등.......... 이런 완전한 불협들은 가뜩이나 소외된 분위기의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그로 하여금 더욱더 큰 고립을 느끼게 했을 겁니다. 게다가 편협한 소시민의 전형이자 강압적인 가부장의 전형이기도 했던 부친과의 평생에 걸친 불화 역시 그가 짧은 인생동안 결코 떨쳐내지 못했던 ‘불안’의 또 다른 원인이었지요.


저는 카프카의 이 미완성 유고작을 중학생 때 처음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수없이 반복해서 읽어왔지요. 어렸을 적에는 어린 나이답게 이 작품을 상당히 로맨틱하게 바라보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고, 인생의 경험이 쌓이면서, 뭐랄까, 머리가 좀 식었다고 할까요? 이제는 이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느 때부터인가 그 인물이, 즉 주인공인 측량기사 K가 너무도 실제적인 범인(凡人)처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K라는 인물의 개성을 닮은 또 다른 인물을 문학 속에서 찾아보자면, 지금 바로 떠오르는 건 ‘돈 키호테’이네요. 하지만 이 편력기사(遍歷騎士) 키호테는 제게 여전히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K는 더 이상 그렇지 않지요. 그리고 그 이유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둘 다 과도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근대적 인물이지만,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는 자기소외적인 인물이 아닌 반면에 카프카의 K는 병적일 정도로 자기소외적인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제 작품에 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바로 이어지는 (2)편에서 계속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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