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자유론』리뷰 시리즈 (14)

제3장 세 번째

byJuncus

안녕하세요, 준쿠스입니다.


2주 만이네요. 그동안 저는 짧게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매년 이맘때 즈음이면 가곤 하는데, 이렇게 매년 비슷한 시기에 여행을 가게 되면, ‘아, 벌써 1년이 흘렀구나.........’ 하는 사실이 매우 강하게 체감이 되고는 합니다.


저는 매우 정적으로 사는 사람이라, 평소에는 시간의 흐름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경향이 좀 있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시작하면, 갑자기 그동안 멈춰있던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감각됩니다. 하지만 이 기묘한 감각 역시 일순간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여행을 하는 도중에도 시간은 다시 망각되는 것 같거든요. 너무 추상적인가요?^^;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의 도입 부분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시간과 마찬가지로 공간도 망각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시간이 망각의 강이라는 말이 있지만, 여행 중에 마시게 되는 공기 역시 술과 같아서 시간만큼 철저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대신 효력은 훨씬 빠르다.’


이 말은 정말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이륙하는 순간부터 집에서 멀어지는 속도 이상으로 일상은 순식간에 망각의 수면 속으로 들어가 버리니까요. 그리고는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는 순간부터 일상의 익숙한 모습이 다시 무뚝뚝한 얼굴로 일어나기 시작하고, 공항에서 입국수속을 할 때는 여행 동안의 시간이 정지된 스냅 샷들의 불연속적인 연속처럼 회상되고는 합니다.


저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순간, 저는 매우 강렬한 권태와 편안함의 혼재라는 아이러니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아마도 이런 걸 두고, ‘관성의 힘’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비행기가 이륙하거나 착륙할 때 강하게 느끼게 되는 그 물리적인 힘이,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릴 때에는 실존적인 힘으로 느껴진다고 할까요? 아무튼 제 느낌은 그렇습니다.


잡담이 길었네요. 각설하고, 이제 지난 시간에 이어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제3장에 대한 리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4. 욕망과 충동의 필요성


① 욕망과 충동 역시 신념과 절제와 마찬가지로 완전한 인간의 한 부분임. 강한 충동은 오직 균형이 깨졌을 때만 위험한 것임. 사람들이 악하게 행동하는 것은 그들의 욕망이 강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양심이 약하기 때문임. 하지만 충동이 강하면 반드시 양심이 약할 수밖에 없다는 그런 필연적인 관계는 존재하지 않음.


② 강한 충동은 활력의 또 다른 이름이며, 활력은 나쁘게 사용될 수도 있지만, 활력이 없고 무감각한 사람보다는 활력이 있고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 더 많은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언제나 사실임.


➜ 오늘날은 많이 희석이 되었지만, 밀이 활동하던 당시를 기준으로 본다면, ①번의 마지막 문장, 즉 ‘충동이 강하면 반드시 양심이 약할 수밖에 없다.’라는 생각은 절대적인 사실처럼 믿어져 왔습니다. 그리고 이 강력한 공통의 믿음을 바탕으로 당시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던 도그마 중 하나가 바로 ‘칼뱅주의’입니다. 칼뱅은 16세기 전반 프랑스에서 활동한 프로테스탄트의 시조새 격인 인물로, 루터만큼이나 유럽의 역사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인물입니다.


그의 도그마는 ‘Total depravity’ 즉, ‘인성 전악설(全惡說)’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은 구원의 여지가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악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구원은 오로지 신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인간의 악함의 근원은 신의 명령을 어기고 마음대로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의 최초의 의지에 있다고 보지요. 즉, 인간의 자유의지 자체를 죄악시하는 게 이 도그마의 핵심입니다.


이 도그마는 상당히 강력해서 오랜 세월 동안 유럽인의 정신을 지배했습니다. 그렇기에 밀이 굳이 이렇게 구체적으로 적시까지 하며 그 내용을 비판하는 데 지문을 할애하고 있는 것일 겁니다.


5. 칼뱅주의 이론


<칼뱅>


① 오늘날의 사람들의 정신은 노예와 같은 상태에 있음. 그저 즐겁기 위해 하는 일조차도 남들이 무엇을 하며 즐겁게 노는지를 먼저 생각함. 즉, 군중 속에 묻혀 있기를 원함. 범죄를 꺼리는 것과 동일한 수준에서 특이한 취향이나 튀는 행동을 꺼림.


➜ 이러한 태도는 일종의 ‘묻혀가기’와 비슷한 것이겠지요. 즉 즐겁게 노는 것에 대한 죄의식이 강한데, 놀고는 싶고 그러니까 남이 어떻게 노는지를 보고 그것을 따라 하면서 자신의 죄의식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고 싶어 하는 심리일 겁니다. 이제는 더 이상 칼뱅주의가 도그마가 아닌 이 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양상의 태도는 인간슬롯에서 여전히 관찰된다는 건 다들 동의하실 겁니다.


② 칼뱅주의 이론에서는 ①과 같은 상태를 바람직한 상태로 봄.


a. 칼뱅주의 이론에서 말하는 인간의 가장 큰 죄악: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


b. 칼뱅주의 이론에서 말하는 인간의 모든 선: 복종하는 것에 있음


“인간에게 의무로 주어진 것 이외의 모든 행동은 죄이다.”

➜ 오늘날 칼뱅주의는 이미 도그마의 지위를 상실했습니다. 하지만 유사 칼뱅주의는 여전히 많지요. 통시적으로 본다면, 이런 태도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옷을 입었을 뿐, 본질은 같은 것 같습니다. 즉, ‘전체주의에의 본능적 경향성’이지요.


칼뱅의 이 극단적인 주장이 어떻게 호소력이 있을 수 있냐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대개 그건 우리가 무신(無神)에의 확신이라는 계몽주의적인 도그마의 그늘 아래서 성장하고 교육받고 살고 있기 때문에 던지는 질문일 뿐이지, 그 본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즉, ‘신 따위가 어디 있냐? 인간의 자유의지는 헌법적인 것이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태어나는 본래적인 것이다.’라는 식의 또 다른 도그마적 믿음을 가지고 칼뱅주의를 비판하고 있을 뿐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런 비판을 하는 우리들 역시 칼뱅주의와 닮은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은 좀체 반성의 대상으로 인식되지는 않는 것 같아 보입니다.


제가 보기에 칼뱅주의의 본질은 ‘전체주의’입니다. 그리고 이런 전체주의가 작동하는 기제 중 하나는 바로 ‘겁박’이지요. 즉, 사람들에게 공포심이나 불안을 가스라이팅하는 겁니다. 칼뱅은 당시 유럽인들에게 ‘원죄의식’을 가스라이팅했지요.


인간은 공포나 불안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면, 대개가 무력해집니다. 그리고 그 결과, 본능적으로 ‘의지할 것’을 찾지요. 그리고 대개 이와 관련해서 그들에게 놓인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말하자면, 선택지 따위는 애초에 없다는 뜻이지요. 왜냐하면 이런 상황에 놓인 무력해진 인간들은 역설적이게도 그들을 무력하게 만든 바로 그 공포와 불안에 의지를 해버리거든요. 이 말인 즉, 그런 감정을 심어준 원인에게 모든 결정권을 넘겨주는 방식으로 그것에 의지해버린다는 뜻입니다.


사이비 종교와 같은 집단에서는 이와 같은 기제는 노골적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집단, 즉 일견 정상적으로 보이는 슬롯에서 이 기제는 매우 은밀하고 치밀하게 작동되지요. 어떤 계기가 발생하게 되지 않는 이상, 이는 좀체 드러나지 않습니다. 작년 로스앤젤레스 산불로 고인이 된 명감독, 데이빗 린치의 영화를 보면 이와 관련된 메타포가 주제적으로 자주 드러나지요. 그중 <블루 벨벳> 같은 건 비교적 복잡하지 않게 이를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 유명한 상징이 있습니다. 햇살 따사롭고 평화로운 미국의 중산층 마을의 집들 정원에는 알록달록한 꽃들이 활짝 핀 채로 바람결에 따라 춤을 추고 있습니다. 정말 평화롭기 그지없는 광경인데, 그 꽃을 비추던 카메라의 시선은 점점 하강합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그 꽃이 심어진 땅속까지 비추는데, 그 속에는 꽃들하고는 완전히 대비되는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벌레들이 득실대고 있지요.


재미있는 영화이니 기회가 되시면 한번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③ 이와 같이 무개성의 수동적인 인간상을 지향하는 경향성은 단지 칼뱅주의 이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며, 그 외연은 상당히 넓으며, 아주 은밀하고 교묘한 형태로 존재함.


➜ 이에 관한 설명은 바로 위에 드린 설명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④ “이교도적인 자기 긍정”은 “기독교적인 자기 부정”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가치를 구성하는 요소들 중 하나이다.


“알키비아데스 같은 사람(이교도적 자기 긍정에 대응됨)이 되는 것보다는 존 녹스 같은 사람(기독교적 자기부정에 대응됨)이 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지만, 그 두 사람보다도 페리클레스와 같은 사람(저 두 모순되는 성질의 변증적 결합과 대응됨)이 되는 것이 더 낫다.”


➜ 왜 여기서 ‘이교도’라는 말이 나오는지 의아해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런 분들은 밀이 활동하던 당시의 슬롯는 여전히 기독교의 영향 아래 놓여 있었다는 걸 상기하시면 될 겁니다. 즉, 맥락적으로 이해를 하셔야 할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교도’라는 말은 ‘원죄의식’이 없는 문화의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해하시면 될 겁니다.


여기서 밀이 말하고 있는 ‘기독교적 자기 부정’은 분명 칼뱅주의적 믿음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지요. 즉, 매우 극단적인 태도입니다.


한편, 이와 반대되는 ‘이교도적인 자기 긍정’ 역시 매우 극단적인 것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첫째, 밀이 이를 ‘기독교적 자기부정’의 안티테제로서 들고 있다는 점만 보아도 밀이 이 태도를 또 다른 극단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둘째, 그가 이와 관련된 비유로서 예를 들고 있는 역사적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이 점이 더욱 확실히 드러나지요.


우선, 알키비아데스는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와 스파르타라는 두 패권국 사이의 전쟁, 즉 펠로폰네소스 전쟁 시기에 활동한 인물로, 당시 그리스 아테네의 최고 지도자였던 페리클레스의 조카이자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의 혈통을 지닌 미남자이며, 소크라테스의 제자이기도 합니다. 즉,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그려놓은 것 같은 ‘엄친아’였던 셈이지요.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인물은 겉만 그럴듯한 썩은 사과와 같은 인물입니다. 희대의 기회주의자이자, 경솔한 자만과 무능력한 이기심의 끝판왕이라고 할까요? 굳이 비유하자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 속에 등장하는 뼛속까지 천박한 악인인 베르호벤스키와 같은 인물입니다.


아테네가 패망한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인물 중 하나인 알키비아데스를 밀이 ‘이교도적 자기 긍정’의 사례로 들고 있는 이유는, 그가 일관되게 보인 태도 때문입니다. 당시 알키비아데스와 같은 시기에 살았던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어보면,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심각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어떤 폴리스에 속해있던지 간에 매우 종교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신전이 그렇게 많았겠지요? 그런데 어느 날, 지금 잘 기억은 안 나는데, 당시 아테네에서 매우 중요한 신의 석상이 중요한 전투를 앞두고 훼손된 채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의 파급력은 상당해서 당시 전투를 준비 중이던 아테네 군사들이 불길한 예감에 회군을 해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를 정도였지요. 즉, 엄청난 슬롯적 비용의 손실을 초래한 사건이었지요. 그리고 투키디데스가 증언하길, 이 사건의 주모자는 끝까지 공개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고 해요. 하지만 당시 상당수의 아테네인들은 믿고 싶지는 않지만 아마도 분명 알키비아데스인 것 같다고 내심 확신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알키비아데스는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가장 잘 나가는 포퓰리스트였습니다. 즉, 희대의 총아로 아테네인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왜 이런 무모하고 불필요한 짓을 했었을까요? 당시 이 행위는 가장 불경한 행위로서, 그 자체로 즉결심판의 대상이자 사형감이었습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그는 그저 그 자신의 대담함을 과시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런 류(類)의 인간들은 사람들을 극도의 혼란과 공포에 빠뜨림으로써 자신의 역량이 확인되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를 두고 ‘용기’라고 멋대로 믿어버리지요. 이건 제 상상이지만, 아마도 그는 그 신의 석상이 꼴 보기 싫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가 우상으로 삼고 싶은 건 바로 ‘자기 자신’ 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있어 이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당위’ 같은 겁니다. 즉, 이런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유일무이한 당위 = 나 자신’이라는 억지가 일종의 정언명령과 같이 진리치 여부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사실 명제로서 떡 하니 그려져 있는 겁니다. 그는 아마도 그 석상에 새겨진 신의 모습이 자신과 닮았더라면 그 석상을 매우 좋아했을 겁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원죄의식'의 선한 작용은 그 두려움으로 인해 이와 같은 인간의 극단적인 방종과 자기애를 제어한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독재자라고 해도 신의 존재를 믿는 독재자와 철저히 유물론적 독재자는 바로 이 점에서 질적으로 갈립니다.


이처럼 알키비아데스가 자기 자신을 종교화하는 인물이었다면, 존 녹스는 말 그대로 순수한 칼뱅주의자에 가까운 인물입니다. 즉, 영국식 버전의 칼뱅주의자이지요. 이 두 인물의 공통점은 종교적으로 믿는 대상이 자기 자신이냐 아니면 신이냐, 이 차이일 뿐이지, 개인들을 존중해 줄 가치가 없는 존재들로 본다는 점에서는 똑같은 전체주의자라는 점입니다.


반면, 이 두 인물에 비해 페리클레스는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우리가 아는 고대 아테네는 바로 이 페리클레스의 시대를 의미합니다.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아테네 제국이 몰락하기 직전까지 그는 사실상 오랜 시간 동안 아테네를 독재했지요. 하지만 그는 독재하지 않는 독재자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칭송해마지 않는 아테네 민주정의 기반을 잘 가다듬고, 그 시스템을 발전시킨 것도 바로 페리클레스이지요. 그 당시에 그리스에는 기독교가 아직 없었으니, 밀의 표현을 따라서 페리클레스를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교도적인 자기 부정’의 사례적 인물이라고 말이지요.


요는 이것입니다. 앞의 두 극단적인 인물들과는 달리, 페리클레스는 분명 전체주의자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점 말입니다. 그는 전체 속에서 개인을, 개인 속에서 전체를 볼 줄 아는 유기적인 시각을 가진 현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단순하지 않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을 진실에 대해, 정치라는 형태로 사람들을 끊임없이 설득하고, 행정이라는 형태로 꾸준히 실천할 수 있는 매우 보기 드문 능력과 끈기, 그리고 용기를 타고난 인물이었습니다.


페리클레스의 죽음과 동시에 짧지만 화려했던 아테네 제국의 영화(榮華)도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 고대의 화려한 프로메테우스의 불은 아직 꺼지지 않은 채 그리스를 떠나 로마로 이동하기 시작하지요. 그리고 그리스는 이후 영원한 변방으로 남습니다.

<페리클레스>


이런 역사적 사례가 보여주는 교훈을 밀의 『자유론』을 물길로 삼아 오늘날의 지평 내에서 해석학적으로 반성해 보는 것도 매우 의미가 있을 겁니다. 사실, 이게 제가 이와 같은 리뷰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 또한 철학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지만, 철학의 목적은 결코 자기애가 아닙니다. 철학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플라톤이 분명히 말해주었지요. 그것은 바로 ‘지혜(sophy)에 대한 사랑(philo-)’입니다. 그리고 이 목적이 그대로 이름이 된 게 ‘philosophy’, 즉 ‘철학’이지요.



오늘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좀 더 짧게 할 생각이었는데, 쓰다 보니 글이 길어진 것 같네요. 천천히 읽어주세요. 그럼 전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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