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자유론』리뷰 시리즈 (11)

제2장 마지막

byJuncus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리뷰 다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다룰 내용은 제2장의 마지막 부분인, ‘슬롯 통념과 이에 반대되는 개인의 의견이 모두 옳은 경우’와 ‘의견을 표하는 방식’에 관한 것입니다. 그럼, 바로 시작을 해보도록 할게요.


3) 슬롯 통념과 반대 의견이 모두 올바른 경우


① 두 개의 상반되는 의견들 중에는, 어느 한쪽이 옳고, 반대쪽은 틀린 경우보다 둘 모두가 부분적으로 진리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 근거 없이 정말 오만하거나, 아니면 정말 판단력이 모자란 사람, 혹은 지나친 자기애에 빠진 사람, 종교 혹은 특정 이데올로기에 대한 광신도 등의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이 말에 동의하실 분들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는 분명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으면 ‘쟁점’이라는 말 자체는 애초에 사전에 없는 말일 것이니까요. 그리고 ‘쟁점’이 없으면, 궁극적으로 토론도 필요가 없지요. 왜냐하면 옳고 그름이 처음부터 완전히 너무도 분명하게 정해져 있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런 식의 믿음 자체가 자기본위적인 편견이며, 도그마에 빠진 사람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근시안입니다.


② 기존의 지배적인 정설(다수 의견)이 바른 토대에 의거하고 있을 때조차 진리 전체의 일부만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 진리 전체 중에서 그 정설이 배제해버린 여러 부분들을 반영하고 있는 온갖 의견들(소수 의견들) 역시 소중하게 여겨져야 함은 당연하다.


⇨ 이 말 자체도 사실이지만, 이 말의 논리적인 근거는 바로 ①번입니다. 즉, ①번에서 연역되어 나온 것이지요. 그러므로 ①의 진술이 참이며 사실이라는 것이 맞다면, 이 ②번 진술의 참인 여부와 그 정당성(soundness)는 자연스럽게 도출됩니다.


③ 인간의 정신은 일면적(one-sided)으로 경도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지배적인 통설에 의해 억압받고 무시당한 의견들 역시 기존의 통설 속에 담지 되어 있는 진리와 화해를 모색하기보다는 그것을 적으로 간주하여 일전(一戰)을 벼르며, 자신들만이 유일한 진리라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진보’와 ‘개선’으로 여겨지는 것들도 다음과 같이 왜곡된 양상으로 나타나고는 한다.


a. ‘진보’: 원칙적으로는 기존의 정설이 지녔던 진리의 부분에 또 다른 진리가 추가되어야 함이 마땅하겠지만, 대부분은 기존에 채택되었던 부분적인 진리가, 또 다른 부분적인 진리로 대체되는 경우, ‘진보’로 인식되어왔다.


b. ‘개선’: 이 역시 ‘진보’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기존의 채택되었던 진리의 한 부분이 새로운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폐기되고, 새 시대의 요구에 더 적합한 또 다른 진리의 단편적인 조각들을 채택하고서 ‘개선’이라고 부르고는 했음.


⇨ 인문학적인 소양과 통찰의 식견에 잘 훈련이 되신 분들이라면 이 말의 뜻 역시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의 예를 들어 부연 설명을 좀 해드릴게요.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는 바카라들 중 하나는 바로 페이팔의 창립자이자 팔란티어의 회장인 피터 틸의 『Zero to One』일 겁니다.


피터 틸은 일론 머스크만큼이나 전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지요. 미국 국방부의 시스템은 그의 회사가 거의 독점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독점’이라는 말이 중요한데, 바로 저 바카라, 『Zero to One』은 이 ‘독점’에 대해 기존과는 다른 의견을 매우 명료하고 강한 어조로 제시하고 있는 유명한 바카라입니다.


그가 말하는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완전 경쟁 체제’는 기존의 경제학에서 가장 효용이 크다고 믿었던 시장 시스템이지만, 이제는 한물 간 이론이라는 것이지요. 즉,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완전 경쟁에 의해 기술이 발전하던 시기가 있었다면, 이제는 그 임계(臨界)를 넘어선 다른 세계가 도래했으니, 기존에 옳다고 믿어졌던 정설 역시 폐기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오히려 ‘독점’이 기술의 진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그 대표적인 예로 ‘Google’을 들고 있습니다.


이 바카라이 이렇게 많이 읽히는 이유는, 그가 단지 매우 성공한 스타트업 기업가이어서만은 아닐 겁니다. 그보다는 그의 이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 있게 먹히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실제로 이 바카라을 읽어보면, 세상에나 이렇게 예민한 쟁점의 문제를 이렇게나 간단명료하게 말할 수 있다고?! 하고 놀라게 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이게 오히려 이 바카라의 맹점일 수도 있다고 여겨집니다. 저는 이 바카라을 읽으면서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한 장면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주인공인 스마일리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장면이 있지요. “But its topicality makes it suspect.” 말하자면, 이 바카라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너무 솔깃한 데다 너무 확신에 찬 어조 때문에 오히려 더 경계를 하게 된다고나 할까요? 이 바카라은 제가 그동안 읽었던 바카라들 중에서 가장 쉽게 읽히는 바카라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읽어야 하는 바카라으로 여겨집니다. 그만큼 매우 강력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면서, 또한 경계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 바카라에서 틸은 ‘완전경쟁시장’에 대한 믿음에 대해 ‘신화,’ ‘도그마’, ‘이데올로기’와 같은 다소 강한 표현들을 주저 없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 바로 이 지점에서, 즉, 기존 시장경제학의 정설과도 같은 믿음이 그동안은 마치 ‘독이 든 사과’와 같은 취급을 받던 독과점이라는, 그것과 완전히 반대되는 믿음으로 대체되는 것을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위한, 즉 ‘zero to one’을 위한 기술의 진보라고 역설하는 틸의 주장 속에서, 밀이 지금 비판적으로 말하고 있는 ‘진보’와 ‘개선’에 대한 통념이 그대로 발견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것입니다. 피터 틸이 저 바카라에서 자신의 경험과 역사적 사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 임계적 변화, 즉 4차 혁명이 ‘완전 경쟁 시장’에서 ‘독점 시장’으로 넘어가는 양상인 게 맞다면, 그것은 변증적인 변화이지, 무슨 해탈을 하듯,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갑자기 널을 뛰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변증적 변화는 서로 반대되는 저 두 테제, 즉 두 믿음 각각이 모두 나름의 효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변증법은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제자들이 스스로 진리를 깨우칠 수 있도록 시도한 교육법이자, 헤겔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었지요. 변증법은 흔히 하나의 테제와 그것에 반대되는 안티 테제라는 두 논제 혹은 의견이 결국에는 종합이 되어 지양적으로 발전한다고 보는 방식입니다. 말이 어렵지요?^^; 쉽게 말해서, 서로 반대되는 두 의견들 사이의 끊임없는 논박의 주고받음을 통해 더 나은 의견으로 발전해나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 서로 반대되는 두 의견 각각이 나름의 진리를 포함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논박의 과정 속에서 더 나은 의견이 ‘종합’되어 나올 수 있을 테니까요. 어느 한쪽만 진리를 담지하고 있다면 ‘종합’은 있을 수 없을 겁니다.


피터 틸Peter Thiel


(1) 위에 제시된 밀의 의견에 대한 반론


“기독교 도덕과 같은 정설들은 진리의 일부가 아닌 전체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 여기서 왜 ‘기독교 도덕’이라는 말이 나오느냐고 생각하실 분들도 계실 텐데, 당시 슬롯적 통념과 정설 중 상당 부분은 여전히 기독교 도덕의 영향 하에 있었다는 것을 상기하시면 쉽게 이해가 가실 겁니다.

(2) (1)에 대한 밀의 재반론

① 기독교 도덕이 신약성경의 도덕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신약에 속한 복음서는 언제나 기존의 도덕(구약)을 기준으로 삼아서 그것을 좀 더 폭넓고 수준 높은 도덕으로 수정하거나 대체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만 자신의 고유한 규범과 계명을 제시하고 있다.


② 사도 바울은 유대교 정경인 구약의 가르침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혼합하는 것은 반대했지만, 그 자신도 마찬가지로 기존의 도덕, 즉 그리스와 로마인들의 도덕을 전제했다.


③ 기독교 도덕의 이상은 선을 적극적으로 행함으로써 고귀한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악을 소극적으로 피해서 죄가 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원죄의식). 그 결과, 금욕주의를 이상으로 삼았지만, 이는 점차 율법주의로 변질되어 갔다.


④ 기독교는 미덕의 삶을 위한 동기로서 천국에 대한 소망과 지옥에 대한 경고를 제시한다. 하지만 이러한 동기로 인해, 사람들은 천국에 가기 위해 필요한 일들만 하게 되어, 기독교 도덕은 이기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⑤ 기독교 도덕은 본질적으로 수동적으로 순종할 것을 가르친다. 개인의 존엄과 명예를 존중하는 태도 같은 것도 기독교 신앙에서 유래된 것이라기보다는 세속적인 교육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런 것들은 오직 복종만을 유일하게 가치가 있는 덕목으로 공공연하게 인정하는 윤리 기준을 지닌 기독교 도덕에서는 생겨날 수 없다.


⑥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들이 이와 같은 결함을 내재하고 있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한 말씀들이 포괄적인 도덕이 요구하는 모든 것과 양립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지금까지 사람들이 그 말씀들로부터 어떤 실천적인 도덕 체계를 이끌어내기 위해 그 말씀들을 왜곡시켜왔지만, 그런 왜곡을 범함이 없이 윤리와 관련해서 탁월한 규범들을 담아낸 도덕 체계를 그 말씀들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⑦ 인류가 도덕적으로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오로지 기독교를 토대로 해서만 형성된 윤리가 아닌, 다른 윤리가 기독교 윤리와 나란히 공존해야 한다.


⇨ 이와 관련해서는 이 지문 상에서는 더 이상의 설명은 드리지 않겠습니다. 일단 밀의 저 말들을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이해 가능하실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다음 시간에 한번 ‘두 번째 쉬어가기’처럼 진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4) 의견을 표현하는 방식에 관하여

① 어떤 의견을 단정적으로 말하게 되면, 비록 그것이 옳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심한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② 절제되지 못한 토론이란, 보통 독설이나 야유, 인신공격 등이 수반된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은 무기들의 사용은 논쟁의 양 당사자에게 공정하게 금지해야 하지만, 실제의 경우, 오직 지배적인 의견을 공격하는 데만 그런 무기들을 사용하는 것이 금지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소수의 의견들을 공격하는 데 그런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용인되거나, 심지어는 칭송된다.


③ 지배적인 의견이든 소수의 의견이든 정직성이 결여되어 있거나, 악의적이거나, 자신의 의견만을 일방적으로 고집하며, 다른 이들의 감정을 전혀 용납하지 못하는 방식의 경우는 단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④ 공적인 토론과 관련된 진정한 도덕률이란, 자신과 반대자들의 의견을 사심 없이 경청하고, 유, 불리를 따져서 사실을 왜곡, 과장, 은폐하지 않는 것이다.



이번 주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이제 『자유론』 2장에 대한 리뷰는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3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쉬어갈 겸, 잠시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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