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mission

쉬어가기

byJuncus

안녕하세요. 준쿠스입니다.


제가 사는 이곳에는 어제까지 벚꽃이 한창 만개를 해서 거리마다 꽃그늘이 눈부시게 져 있고, 땅 위에는 무수한 벚꽃 잎이 그림처럼 흩어져 있었어요. 그런데 어젯밤부터 아침까지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내렸답니다. 그래서 당연히 전 꽃잎이 다 떨어질까 봐 걱정을 했지요. 그리고는 밤새 잠을 잘 못 이루고, 아침 늦게까지 깨어 있다 잠이 들었어요. 눈을 떠보니 늦은 오후였는데, 하늘은 정말 파랗게 개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많은 꽃이 져 있었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꽃 봉오리가 진 바로 그 자리들에는 말 그대로 싱그럽기 그지없는 연둣빛의 새싹들이 어느새 총총하고 여기저기 돋아나 있었어요. 이제 곧 그 귀여운 연두색들은 짙은 녹음(綠陰)으로 바뀌겠지요. 정말 신기합니다. 인간은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을 어떻게든 확인받고 확인하기 위해 정신없이 움직이잖아요. 그런데 꽃나무들은 보면, 죽은 것처럼 미동도 없다가도, 때가 되면, 어김없이 자신들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스스로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는 게 말이에요.


제가 어제 밤새 잠을 못 이루면서 읽은 바카라 속에 마침 이런 구절이 있었어요.


“Just as work expands to fill available time.”


『The Essays of Warren Buffett』에서 나오는 구절인데, 아마도 한국어로는 『워런 버핏의 주주서한』인가 하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와 있을 겁니다.


저는 투자에 대해서는 말 그대로 1도 모르는 사람입니다만, 이 바카라은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가지지 못한 식견과 시야 그리고 경험을 통해 인간 세상을 통찰할 수 있는, 어떤 현명한 노인의 위트와 지혜가 담겨 있거든요.


이 바카라을 보면, 또 이런 구절도 나옵니다.


“Having a dog teaches a boy fidelity, perseverance, and to turn around three times before lying down.”


이 두 구절을 읽었을 때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어요. 그런데 그 웃음은 그다지 유쾌한 것은 아니었답니다. 왜냐하면 이는 제가 제 자신에게 어쩔 수 없이 날리게 된 일종의 냉소와 같은 것이었거든요. 제가 오늘 이렇게 잠시, 원래의 계획과는 달리, 기분전환과 같은 글을 쓰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저 말들을 하며, 버핏은 뉴턴의 제1법칙은 인간들의 행동에도 적용된다는 말을 덧붙입니다. 뉴턴의 제1법칙은 다들 아시겠지만, ‘관성의 법칙’이지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인간은 타성에 갇혀 사는 존재입니다. 저는 성실한 천성을 가진 편이지만, 동시에 권태도 아주 잘 느끼기 때문에, 돌이켜보면, 관성과 자율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데 제 인생의 반을 쓴 것 같아요. 공자가 이런 말을 했지요.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즉 70세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그냥 하고 싶어서 하는 행위 하나하나가 자연스럽게 천명(天命)에 부합하게 되었다고요. 저는 결코 이런 수준은 아니지만, 이제야 이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을 좀 체화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만, 여전히 헷갈리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은 벚꽃을 하루라도 더 보고 싶어서 거의 매일같이 긴 산바카라을 했어요. 그런데 어제 창밖으로 쏟아지는 장대비를 보며, 꽃잎이 떨어질까 봐 아쉬워하는 제 마음이 전혀 감상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건, 제가 그런 제 자신을 좀 차갑게 보고 있었다는 뜻이겠지요. 마침 그럴 때 저 구절들을 보게 되자, 뭐랄까, 좀 마음이 차분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또 타고난 천성, 즉 습관에 너무 얽매이기 시작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꼈거든요.


성실함은 좋은 습관입니다. 저는 교육의 목적 중 하나는 좋은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하지만 이 좋은 습관이 정말 좋은 습관이 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요즘은 ‘공리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효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습관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율성’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버핏이 인용한 로버트 벤츨리의 저 날카로운 농담처럼 되어버릴 테니까요.


‘개를 기르는 걸 통해 아이가 배우게 되는 세 가지는, 충직함, 인내심, 그리고 바닥에 눕기 전에 제 자리에서 세 바퀴를 도는 것이다.’


충직함, 인내심은 모두 성실의 다른 이름들입니다. 그리고 ‘바닥에 눕기 전에 꼭 제 자리에서 세 바퀴를 도는 것’은 개들이 흔히 보이는 ‘습성’이지요.


성실이 관성적인 습관이 되었을 때, 제 감성은 이를 권태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번 이 감정에 휩싸이기 시작하면, 전 정말 힘들어지기 때문에, 사실 요 며칠은 정말 힘이 들었어요.


‘유용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일을 만든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해 줍니다.


우선, 시간이 먼저인가, 아니면 일이 먼저인가 하는 의문이 새삼스럽게 들게 되지요. 다시 말해,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요? 아니면 시간을 값지게 보내기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전 이 둘 모두가 정답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답이 뭔지는 이렇게 잘 알고 있는데, 정작 인간의 관성은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일정을 소화하는 식으로 흐르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성실도 분명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꾸준함이 없으면, 나중에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게 되니까요. 그러나 이 성실에만 매몰이 된다면, 아무리 많이 쌓였더라고 그 총가치는 생각보다 훨씬 작을 겁니다. 버핏의 바카라을 인용했으니, 버핏 식으로 표현을 하자면, 좋은 저축을 값지게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명한 투자가 필요한 것처럼 말입니다. 성실과 자율 역시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성실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율이 필요하고, 자율이 방종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실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말이 쉽지, 인간 슬롯에 살면서 이는 정말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 어떤 불가사의보다 해결하기 힘든 문제인 것 같아요.


얼마 전 유튜브 쇼츠에서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하는 클립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성실함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저는 이 영상을 돌려보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릅니다. 즉 어떤 맥락에서 이와 같은 말을 하신 건지는 전혀 모릅니다. 하지만 저 말 자체에는 깊이 공감을 했습니다.


하지만 벤자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을 떠올려보면, 성실은 완성을 위한 시작이자 발판과도 같습니다. 올바른 시작이 없는 과정은 인생을 완전한 랜덤에 맡기는 것과 같을 겁니다. 즉, 자율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완전히 결핍하게 되는 것과 같지요. 인생은 러시안룰렛 같은 게 되어서는 안 되니까요.


벚나무의 꽃잎에 관한 이야기로 이 글을 시작했으니, 꽃잎에 관한 릴케의 시 구절에 관한 이야기로 이번 글은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주는 이런 작은 일탈로 좀 쉬어 가겠습니다. 다음 주부터 다시 밀의 『자유론』 리뷰를 시작하도록 할게요. 그리고 또 중간에 제가 여러분에게 꼭 한번 들려드리고 싶었던 이야기를 하나 해보겠습니다. 또 다른 작은 일탈이 되겠지만, 분명 매우 의미가 있을 겁니다.


인생을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인생은 축제일과 같은 것.

하루하루를 그저 일어나는 그대로 살아가라.

길을 걷는 아이가

바람이 불 때마다

온몸으로 나부끼는 꽃잎을 받아들이듯이.

아이는 꽃잎을 주워

모아둘 생각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머리카락 위에 앉은 꽃의 이파리들은

가볍게 털어 버릴 뿐이다.

그러나 이미 새로운 꽃잎을 향해

그 손을 내밀고 있다.


이 시의 제목은 ‘Du must das leben nicht verstehen’입니다. ‘인생을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된다.’라는 뜻이지요.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건, 아마도 김영랑의 시의 한 구절처럼 그 한 해에 꽃을 볼 수 있는 시간이 곧 끝나가는 게 싫어서일 겁니다. 한바탕 세찬비가 내린 다음날, 하늘이 정말 파랗게 개였을 때 산바카라을 나갔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걷고 있는데, 어느새 제 앞으로 이제 막 3살쯤 된 것 같아 보이는 정말 자그마한 꼬마가 꺄르륵거리면서 뛰어 오더니, 또다시 꺄르륵거리면서 뒤로 뛰어갔습니다. 그 모양새는 위태위태하면서도 귀여웠어요.

아이가 그렇게 신나게 뛰고 있었던 이유는 땅 위에 눈처럼 쏟아져 내려 있는 벚꽃 잎이 바람이 불 때마다 작게 회오리를 치며 파도처럼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아이는 그게 그저 신나고 재미있었던 것이에요.


그 아이를 보며, 전 릴케의 저 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지요. 꽃이 만개한 이 순간을 온전하게 보내고 있는 건, 제가 아니라 바로 저 아이라는 것을 말이에요.




“work expands to fill available time.”


“유용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일을 만든다.”


저는 꽃을 보는 그 시간을 즐긴 것일까요? 아니면 그저 꽃이 지는 것을 아쉬워하며 그 시간을 보낸 것일까요? 전 그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닌 즐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제 관성이 이를 조금 방해한 것 같아요.


요즘 이런 생각을 종종 합니다.


‘인생은 해결해야 할 것이 아니다.’


라는 생각 말입니다.


인생을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만 볼 때에는 제가 마치 여기저기로 도망 다니는 자신의 그림자를 쫓는 피터 팬처럼 느껴집니다. 뭔가 그 시간이 절박하면서도 무용하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저는 제 그림자가 제 뒤에 붙어 있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그게 정상이니까요.


벚나무의 그늘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꼭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지요. 벚나무는 그렇게 고정된 채로 움직이지 않지만, 이 멈춰 있는 것 같은 시간 속에서 시간은 가장 충실하게 흐르고 있었습니다. 소리 없이 떨어지는 꽃잎과 그 자리에서 돋아나는 여린 새싹들이 이를 알려주었어요. 저도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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