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00km를 건너기 위해

“우리, 같이 살자!”

by봄날의 곰

모스크바행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가려면 우리도 같이 가!”

호기롭게 선언했지만, 남편과 떨어져 지내는 동안 내 마음은 수시로 선택의 기로 앞에서 요동쳤다. 무엇보다 갓 태어난 둘째 아이에 대한 걱정을 놓을 수 없었다.


젊은 객기로 체력 하나 믿고 홀로 이국땅을 밟았던 시절과는 사정이 달랐다. 타국에서 조금이라도 아파본 사람은 한국 의료 시스템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체감한다. 물론 모스크바는 한 나라의 수도인만큼 기반시설이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다. 매우 비싸긴 하지만, 외국인도 비용만 지불하면 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직접 부딪히기 전까지,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에게 낯선 땅은 '미지의 세계'였고 작은 것 하나도 재차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둘째 아이는 신생아 때 황달 진단을 받긴 했어도 꽤 건강한 편이었다. 나 역시 육아 경력자의 ‘짬’을 살려, 신생아 때는 엄마에게 물려받은 면역력 덕분에 덜 아플 수 있다는 상식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는 어찌할 것인가. 돌 전 아기에게는 증세에 맞는 시판 약조차 마음 편히 먹이기 쉽지 않다. 언제 어떻게 아플지 정말 예측이 어렵다. 더군다나 둘째 아이는 백일 무렵 원인 모를 고열로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하며 가슴을 졸였던 전적이 있었기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고민은 불안한 엄마의 속을 어지럽혔다.



불투명한 체류 기간도 고려해야 했다. 남편은 프로젝트 업무로 파견된 신분이라 일이 마무리되면 언제든 돌아올 예정이었지만, 그 시기를 누구도 특정할 수 없었다. 올해를 넘길지, 그 이후의 체류 여건은 어떠할지 당시에는 알 길이 없어 답답했다. 며칠에 한 번씩 영상 통화 너머로 조심스럽게 걱정을 나누었지만, 뾰족한 수도 없었다. 아이를 위하는 마음은 부모 모두 한결같아도 각자 처한 상황이 달랐기에, 대화는 끝내 제자리를 맴돌았다. 진퇴양난의 상황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지쳐갔다.



점점 큰 아이는 휴대폰 너머 아빠의 목소리도 거부했다. 영상 통화로 아빠가 애타게 이름을 불러도 아이는 숨어버리거나 고개를 돌리며 완강하게 버텼다. 전화기를 겨우 쥐여주면 아무 말 없이 종료 버튼을 꾹 누르고는 내게 넘겼다. 그러고는 ‘휙’ 하니 돌아서서 상관없다는 듯 다시 제 할 일에 몰두했다. 말도 채 떼지 못한 아이는 갑자기 사라진 아빠에 대한 서운함을 그렇게 표현하고 있었나 보다. 처음에는 달래 보기도 하고 구슬려 보기도 했지만 아이는 요지부동이었다. 안타까웠지만 어찌할 방도를 모른 채, 겨울에서 봄으로, 봄에서 여름으로.... 시간이 자꾸만 흘러갔다.


이러다 아빠를 점차 잊어갈까 봐 두려웠다.




얼마 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고민에 마침표를 찍을 일이 생겼다.



모처럼 큰아이와 단둘이 외출할 기회가 생긴 날이었다. 그간의 미안함을 만회하고 싶어 평소 잘 허락하지 않던 달콤한 간식과 스티커도 마음껏 고르게 했다. 아이는 엄마의 일탈에 얼떨떨해하면서도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음껏 안기고 어리광을 부리며 싱글벙글 웃는 아이를 보니, 그동안 한집에 있어도 엄마의 사랑이 많이 고팠나 싶어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

'너도 얼떨결에 된 형 노릇이 쉽지 않겠지….'

나온 김에 뭔가를 더 하고 싶어 집 근처에 새로 생긴 도서관도 둘러보자 했다. 아이는 도서관이 뭔지는 몰라도 엄마가 재밌을 거라 하니 덮어놓고 좋아했다. “가자! 빨리 가자!”를 외치며 나를 재촉해 앞장서 달리기도 했다.


널찍하고 깨끗한 최신식 도서관을 둘러보며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함께 바카라을 고르고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어린이 도서 코너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만 해도 아이는 무척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내심 오늘 외출이 참 다행이다 싶었다. 그렇게 흐뭇한 마음으로 고른 바카라을 뒤적이고 있을 때, 우리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부자지간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과 아이가 앉았다. 함께 바카라 내용을 살피며 장난치는 그들의 모습은 언뜻 보기에도 무척 화목해 보였다.

문득 옆에서 갑자기 조용해진 우리 애가 그 모습을 빤히 보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누구야? 아는 친구야?”


내 물음에도 아이는 대꾸 없이 한참 시선을 떼지 못하다 이내 몸을 일으켜 그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더니 갑자기 바로 옆 바카라장에 꽂힌 바카라들을 하나씩 빼서 바닥에 툭툭 던지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그러고는 성에 안 차는지 온몸의 힘을 다해 남은 바카라들을 우르르 쏟아버렸다.


"우르르—"

바카라이 쏟아지는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쏠렸다. 놀란 직원이 달려왔고, 나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이를 한쪽에 세워놓고 서둘러 직원과 함께 바카라을 정리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죄송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으로 엉망이었다.

'지금 무슨 상황인 거지? 왜 이렇게까지 하지?'

잠투정을 부리는 경우는 있어도, 먼저 다른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또래친구들 사이에서는 소심하고 조심스러운 편이었다. 어지러운 마음을 가까스로 누르며 일단 엄한 표정으로 복도 구석으로 데려가 아이의 양손을 꽉 붙잡았다.

하지만 나무라는 엄마를 마주 본 아이의 표정은 평소와 달리 전혀 겁먹은 기색이 아니었다. 엄마 눈을 보라는 다그침에도 무언가를 꾹 누르듯 입술을 앙다물고 바닥만 노려보던 그 눈빛.

아이의 그 서글픈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져 와, 나는 차마 더 혼내지 못했다.



건성으로 아이의 손목을 잡고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 집을 나설 때의 들뜬 설렘은 온데간데없고 둘 사이에는 무거운 정적만이 감돌았다.


“뭐가 마음에 안 들었어? 그래도 물건을 막 던지면 안 되는 거잖아. 아주 나쁜 행동이야. 다음부터는 절대 그러지 마. 절대로!”

당혹감을 억누르려 손에 힘을 주어 아이의 손목을 고쳐 잡으면서 입으로는 좋게 타이르려 애를 썼다. 반응 없이 땅만 보며 걷는 아이의 정수리를 괘씸하다는 듯 바라보다 다시 입을 떼려는 순간, 불현듯 ‘아차’ 싶은 마음이 들었다.

도서관에서 그 부자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이의 고정된 시선이 뇌리를 스쳐 갔다.

왜 하필이면 그때 예민하게 반응했을까. 기다려도 오지 않는 아빠를 떠올렸니. 왜 나는 그 순간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을까..


‘아마…… 넌 그런 마음이었겠구나. 보고 싶은 거구나…… 엄마가 몰라줬네…….’

왜 좀 더 아이의 마음을 알려고 하지 않았을까. 뒤늦은 스스로의 무신경함에 후회가 밀려왔다. 겉으로는 거부하고 밀어냈지만, 그 작은 마음 밑바닥에는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켜켜이 쌓여가고 있었음을 나는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다. 두 아이를 돌보느라 허덕이던 엄마는 혼자 그 무게를 감당하고 있다고만 여겼다. 자기 연민에 빠져 있는 동안, 영문도 모른 채 혼란스러웠을 아이의 슬픔까지 깊게 헤아릴 여유를 갖지 못했다.

아이에게는 아빠가 필요했다.


‘그래, 더 미룰 수 없겠다. 아빠한테 가자.’

남편과 나는 그날 밤, 아이들을 재우고 오래 통화를 나누었다. 가라앉은 목소리만큼이나 마음이 무거웠다.

누가 오라고 팔 벌려 환영하는 분위기도 아니건만, 나는 모스크바행에 대한 결심을 쉽게 내려놓지 못했다.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아이들이 있었다.






무더운 장마가 시작될 무렵, 마침내 남편이 먼저 결단을 내렸다.


“비자 신청할게. 일단 와서 같이 살자.”

“기간이 불분명해서 숙소 구하기도 어렵다며. 괜찮겠어?”

“힘들겠지만 우리가 같이 있는 게 중요하니까. 한 달을 살든 1년을 살든 일단 와서 살자. 회사 동료들도 가능하면 도와주신대. 해보자.”



그 말에 멈춰있던 긍정의 회로가 다시금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래, 지금 이 시기 아이들에게 부모 품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겠어.'

기준이 명확해지자 다른 문제는 정말이지 소소하게 느껴졌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무섭다. 희미하게 꺼져가던 추진력이 동력을 얻어 다시 솟구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너무 어리고 업무가 바쁜 남편에게 짐이 될까 우려하는 주변의 말도 있었지만, 선택에 따르는 바카라임을 감수하기로 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이어진 준비 과정은 그야말로 인내의 연속이었다. 체류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어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남편 회사의 초청장을 비롯해 몇 가지 서류가 꼭 필요했다. 난생처음 지정 병원에서 에이즈 검사까지 받아 음성 확인증을 받았다. 지금도 이게 왜 필요한지 의구심이 들지만, 아무튼 제출하라니 아쉬운 쪽이 따를 수밖에. 빠른 처리를 위해 서둘렀건만, 서류를 모두 제출한 뒤에도 한참 동안 감감무소식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러시아식 행정 처리를 너무 만만하게 보았다. 범죄 기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합법적인 과정을 모두 밟았음에도 속도는 끝을 모르게 더뎠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은, 한국과 같은 속도를 기대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대로 움직이는데, 그쪽 사정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순진한 착각이었다.


러시아에서 먼저 발급받아야 할 서류는 담당자의 여름휴가나 당일 부재 등을 이유로 한없이 지체되었다. 한국이었다면 민원 폭탄에 시달렸을 상황이었다. 남편도 나의 재촉에 못 이겨 시간을 쪼개 기관을 방문하거나 전화로 확인을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차례를 기다리라는 말뿐이었다. 대략적인 일정조차 설명해 주는 곳이 없다며 결국 남편은 분통을 터뜨렸다. 정해진 절차를 밟으면 일사천리로 처리되는 한국의 행정에 익숙했던 우리에게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 답답해!!!


애니메이션 <주토피아>의 나무늘보 직원이 우리 곁에 살아 숨 쉬는 느낌이었다. TV에서 외국인들이 한국의 행정 처리 속도를 극찬할 때마다 '아 그래~?' 하며 남의 일처럼 여겼는데, 이제야 내 일이 되고 보니 그 말이 절절하게 실감 났다.

추석 연휴 전에는 출국해야 했기에 비행기 표를 구하는 일부터 걱정했건만, 정작 더 큰 복병은 비자였다.






지루한 기다림이 이어지던 어느 날, 갑자기 초청장이 발급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오후에 연락이 온 남편은 인편으로 귀국하는 분께 부탁했다며 다음 날 아침 일찍 공항에 나가 서류를 전달받으라고 했다. 사실 반쯤은 마음을 내려놓고 있었다. 계절이 한 번 바뀔 만큼 긴 시간이었다. 완벽하다고 생각한 서류가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 반려된 적도 있었으나 아무도 명확한 이유를 몰랐다. 여러 추측 끝에 남편은 현지 직원들의 도움으로 원인을 대략 알아냈다. 그쪽 담당자가 요구한 것은 인주로 직접 도장을 찍은 서류였다. 인터넷으로 발급된 서류는 위조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 때문이라나. 가정에서 프린트해서 위조 위험이 높다니... 주민등록등본도 학위 서류도 보통 5분 안에 집에서 출력하는 한국인의 상식으로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소리였다. 하지만 내 이해 따위는 전혀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하라면 해야지.’ 혼자 구시렁거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며칠간의 단기 여행이라면 무비자로도 가능했겠지만, 우리처럼 체류날짜가 길어질 경우 정식 비자가 반드시 필요했다. 서둘러 아이들을 맡기고 아침 일찍 공항으로 나갔다. ‘못 알아보고 지나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무색하게, 그분도 게이트 앞에서 초조하게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든 나를 바로 알아봐 주셨다. 순조롭게 건네받은 서류 뭉치를 보며 작게 안도했다.



이제 남은 건 비자 센터에 접수하는 일뿐이었다. 마지막 절차만 남았다는 생각에 긴장을 풀고 마침 도착한 빈 좌석이 많아 보이는 일반 열차에 몸을 실었다. 아침부터 공항을 뛰어다니느라 혹사당한 다리를 좀 쉬게 해주고 싶었다. 때마침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서류받았어?”

“응, 잘 받았어. 지금 비자 센터 가는 중이야.”

“……아직 도착 안 했어?”

“응, 일반 열차라 조금 걸리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남편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여보, 빨리 가! 지금 몇 시지? 점심시간 전에 접수 못 하면 오늘 안 받아줄 수도 있어!!”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다.

이어지는 남편의 설명을 듣고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점심시간 전에 접수하지 못하면 당일 발급이 어려울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명절 연휴와 맞물려 모든 일정이 틀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점심시간 마감 때문에 비자 발급이 며칠이나 늦어질 수 있다니. 한국에 있다고 해서 모든 행정기관이 내가 익숙한 한국식 행정 체계로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뒤늦게 나의 무지를 탓해 봐야 소용없었다.



급히 핸드폰의 앱을 열어 확인해 보니 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표기된 점심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단 12분.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평소 걸음으로는 16분도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그래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일단 해보는 수밖에.


내리기 전부터 쭈그려 앉아 신발 끈을 단단히 조여 매고, 비장한 마음으로 문 앞에 섰다. 승강장 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있는 힘껏 달려야 했다. 최대한 빨리!

평소 운동을 즐기는 편도 아니었고, 굳이 따지자면 싫어하는 쪽에 가까웠다. 예나 지금이나 달리기는 영 내 취향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날은 내 생애 ‘가장 열심히 달린 날’로 기억된다.


이 정도 실행력과 지구력이면 뭘 해도 되었을 텐데.... 절박함은 저질 체력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출산과 육아로 몇 년간 잊고 지냈던 운동신경이 다급한 마음을 동력 삼아 일순간에 되살아났다. 설상가상 비까지 쏟아지는 날씨에 우산도 쓰지 못한 채, 땀인지 빗물인지 모를 액체에 흠뻑 젖어 뛰고 또 뛰었다. 거친 호흡과 심장 소리가 온몸을 울렸다. 5%밖에 남지 않은 핸드폰 배터리로 장소를 계속 확인하며 다리를 쉬지 않았다. 얼마나 초조했는지. 건물을 발견했을 때, 반가움과 동시에 현기증이 느껴지며 살짝 휘청거렸지만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마감 2분 전, 극적으로 서류를 제출했다. 내 등 뒤로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려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 점심시간이라며 냉정하게 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에 간신히 힘을 주고 창구 직원에게 다가가 서류 뭉치를 건넸다. 직원이 서류를 확인하는 동안 나는 뒷걸음질 치듯 물러나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떨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땀과 비에 흠뻑 젖은 몸에서는 어딘가 쿰쿰한 냄새마저 나는 것 같았다. 순간 속이 울렁거리며 구토감이 치밀어 올라, 밭은기침을 하며 손바닥으로 입을 꽉 틀어막았다. 옆 데스크에 앉아 있던 무표정한 직원도 이 여자가 여기서 왜 이러나 싶었는지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아무래도 좋았다.


다음 날, 추가 비용까지 내며 발급받은 금쪽같은 비자를 손에 들고 나오니 이제야 관문하나를 넘었다는 실감이 들었다. 더 연기되었다면 한주를 더 흘려보냈을지 모른다. 당시에도 명절 연휴를 앞두고 비행기 예약도 꽤 아슬아슬했다.

이제 '만약에....'는 더 생각하기도 싫지만,

그 짧은 질주가 우리 가족의 운명을 갈랐다는 생각에 등 뒤가 서늘해졌다.


아휴...... 정말 러시아 한 번 가기 너무 힘들다.....


한 고비 넘긴 걸까?


우린 정말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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