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번지점프를 외치다!!
비자가 발급되자마자 지지부진했던 출국 준비는 순식간에 급물살을 타듯 이어졌다.
티켓을 예매하고 집을 정리함과 동시에 가져갈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출국일까지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 예상보다 촉박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가 복잡할 땐 일단 종이에 써보는 게 나은 법이다. 가져갈 품목과 해야 할 일 목록을 일단 공바카라에 적어 내려가다 보니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챙겨 넣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대체 이걸 다 어떻게 옮길 것인가.'
자력으로 해결하기 가장 어려워 보이는 큰 숙제가 눈앞에 있었다.
혹시나 남편이 잠시 들어와 출국을 함께 할 수 있는지 통화를 하며 살짝 눈치를 살폈지만, 역시나였다.
"여보 괜찮아. 당신도 혼자 올 수 있어. 러시아 여자들도 억척스러워서 비행기 타거나 여행 다닐 때 애들 데리고 혼자서도 잘하더라! 나도 전에 본 적 있어."
남편의 해맑은 대답에 실낱 같던 희망도 사라졌다.
역시..... 남편은 '남의 편'의 준말이 틀림없다.
응? 뭐라는 건가?.....
"나 혼자 가는 여행이야? 애가 한 명이면 나도 어떻게 해보겠어.
근데 자기 몸 하나 못 가누는 애 둘을 혼자 데리고 들어오라는 건 좀 너무하잖아!!!!
짐도 이렇게나 많은데!"
곧 극적인 상봉을 앞두고 원만한 관계 봉합을 위해 최대한 점잖게 대화하려 했지만, 강 건너 불구경하듯 이야기하는 태도에 기가 막혔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한 옥타브를 넘어 '삑!' 하고 높아졌다.
지금 이게 말이야 방귀야.
평소 긍정적인 성격이 장점이던 사람인데 사안이 이렇다 보니 모든 것이 치명적인 단점으로 보였다.
너무나 태평한 남편의 대꾸에, 그간의 노력을 높게 사 평화로웠던 마음에 다시 불길이 타올랐다. 여기에 눈치없는 '남의 편'은 이런 내 마음을 모른 채 기름을 통채로 들이부어 화력을 높였다.
"세상일이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걱정하지 말고 와. 공항에 내가 마중 나가 있을게."
"뭔 말이야?!!!!!!!"
아 진짜!!!!
나도 모르게 어금니를 꽉 사려 물었다.
"마중 이야기할 때야? 정작 출국도 못 하게 생긴 판인데?!!!!"
출국 심사 시 있을 수 있는 여러 난감한 상황들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다.
걱정 많은 꼼꼼한 J(판단형) 성향 아내와 융통성을 우선하는 P(인식형) 형 자유 영혼 남편의 '평행선 대화'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렇게 당하고도 내 발등을 박살 냈던 저 '인간 도끼'를 또 믿었다니.
믿었던 도끼에 그리 발등을 찍혀놓고…….
나란 사람의 학습능력이 심히 의심되었다.
솔직히 현실적으로는 비용 문제도 있거니와 남편은 계속 현지에서 회사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은 익히 알고 있었다. 쉽게 이쪽으로 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섭섭함이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막말로 내가 남의 아들들 데려가는 것도 아니고. 못 올 상황이라도 어려움을 공감해 주고 최대한 같이 해결바카라을 찾으려는 시늉이라도 했다면 이렇게까지 화가 나진 않았을 거다.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데 저 양반은 한 번씩 말로 매를 번다.
정말… 욕 나온다….
에이 확~!!
아니야. 정신 차리자.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가기만 하면 되는데 이제 와 포기할 순 없지.
내 안에 두 개의 목소리가 치열한 공방을 벌인다.
최대한 해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다 동원해야 했다.
정 안 되면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이용하여 당일 출국하는 분 중 따로 사례를 지불하고 짐이라도 같이 밀어줄 사람을 구해야 했다.
옛말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고 했는데…….
이리저리 고민을 하다 주변 분들에게 상황을 공유하며 부디 지혜를 모아달라 부탁했다.
마침내....
어둠 속에서 동아줄 같은 한 줄기 희망이 내려왔다.
우리 사정을 딱하게 여긴 이모 내외가 출국을 도와주시기로 결정하셨단다.
이모부도 개인 업무 일정이 있어 오래 자리를 비우실 수가 없다고 했지만 그것만도 다행이었다.
눈앞이 갑자기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살았다…
갑자기 동행자로 낙점된 이모와 이모부는 조카 덕에 생각지도 못한 러시아 여행을 다 해본다며 즐거운 투로 농담을 던지셨지만, 마음은 죄송하기 그지없었다.
역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했던가.
절실했던 그 도움이 없었다면 정말 마지막에 주저앉았을 수도 있었다.
지나고 봐도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을 텐데…….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로써 난항이었던 출국 당일 문제도 해결되었다.
다시 짐 싸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온라인 사이트에 접속해 출국 시 필요한 서류도 준비했다. 집에서 프린트한 건 무효라고 할까 봐 꼭 필요한, 현지 유아 기관 등에 갈 상황을 대비해 영문으로 된 예방접종 내역서 등도 보건소에 가서 발급받았다.
한국에서의 생활을 하나씩 정리해야 했다. 가장 먼저 큰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에 연락드려 상황을 설명했다. 기간도 현재 알 수는 없으나 당분간 한국에 있지 못한다며 양해를 구했다.
당시 아이가 재원 중이던 어린이집은 원장님과 선생님들의 따뜻하면서도 확고한 보육 철학을 가지고 운영되는 곳이었다. 긴장된 마음을 안고 처음 이곳에 입학 상담을 하러 갔을 때, 걱정이 녹아내리는 포근한 분위기에 매료되어 덩달아 설렜던 기억도 생생하다. 특히 원장님은 원에서 생일이 가장 느리고 개월 수가 적은 우리 아이를 참 따뜻하게 돌봐주셨다. (동네 마트에서 다른 학부모들이 우리 애를 '원장님이 아침 인사 시간에 늘 안고 다니는 친구'라고 알아봐 주셨을 정도니) 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참 감사하다. 이렇게 좋은 분들과 갑자기 헤어져 퇴소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선생님들은 우선 아이가 아빠와 함께 지내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셨다. 모르긴 해도 그간 선생님들이 동생 출산 후에 허덕이는 엄마의 사정을 고려해 전달하지 않으신 일들이 꽤 있었을 것 같았다.
때로는 말하지 않아도 마음과 마음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사람도 들어가겠다며, '너무 커서 다 채울 수 있을까....' 싶던 커다란 이민 가방과 며칠간 씨름을 이어나갔다.
하나, 둘 넣다 보니 왜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했나 싶었다. 아이들이 입을 내의와 옷가지만 종류별로 챙겨도 가방은 이미 비대해졌다. 곧 들이닥칠 겨울을 대비해 내 몫을 포함한 압축팩에 담긴 패딩 한 벌씩을 가족 수대로 추가하자 가방은 비명을 지를 듯 팽팽해졌다. 남편은 못 가져오면 현지에서 사라고 했지만……. 그것도 돈 드는 일이라 가급적이면 있는 물건 안에서 해결하고 싶었다. 한국에서도 애들 두 명을 한꺼번에 데리고 오프라인 쇼핑을 시도하는 일은 없었다. 첫째는 평소에도 호기심이 많아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으니 외출 시 내 주시가 특별히 필요한 나이였다. 시간이 있어도 초반부터 길도 잘 모르는 낯선 타지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쇼핑을 다닌다는 건, 난이도 '상'의 시나리오였다. 이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일상의 경험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생필품은 무얼 가져가야 하나…….
머물 집의 구조조차 출국 직전에야 겨우 전해 들었을 뿐, 상세한 내막은 알 길이 없었다. 부엌에 조리 도구는 있는지, 한국에서 가져가는 게 나을지 모든 게 불분명했다. 숟가락 하나 챙기는 것조차 판단이 서지 않았고, 종일 업무에 시달리는 남편에게 일일이 묻기도 여의치 않아 일단 아이들 위주의 필수 물품 리스트부터 작성했다.
수화물 가방에 넣을 것 (공바카라 메모)
-육아 및 주방 용품
[ ] 아기 바운서: 집안일할 때 필수 (휴대용)
[ ] 스텐 전기 주전자: 분유 조제용 필수품
[ ] 이유식 용품: 소분 용기, 실리콘 주걱, 수동 야채 다지기
[ ] 수저 세트: 넉넉하게 5세트
[ ] 장난감 및 도서: 좋아하는 것 위주, ‘가벼운 아기 체육관’은 무조건!
- 의류 및 방한용품
[ ] 가족 패딩: 인원별 압축팩 한 벌씩 (가방 비명 주의)
[ ] 의류: 속옷과 최대치로 압축한 긴팔 옷가지들
[ ] 신발: 운동화와 방한화
- 식품 및 비상약
[ ] 상비약: 해열제, 소화제, 감기약 등
[ ] 매실액: 소화 약한 남편용 (집에서 담근 것)
[ ] 조미료: 유아용 카레·짜장 가루, 다시팩 약간씩
기타 등등....
글자로 볼 때는 얼마 안 되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담다 보니 헉.... 많다.
필요하겠지만 가져가지 못하는 육아 용품은 모스크바 교민 커뮤니티를 통해 중고로 다시 구하기로 했다.
현지 사정을 잘 모르니 무엇이 불필요한지 구분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남편의 집 근처 일반 마트에서 기저귀를 아직 못 찾았다는 말에 급한 대로 일주일 치 기저귀와 분유를 항공편으로 보냈다. 시간만 넉넉했다면 배편을 이용하는 게 경제적이었겠지만, 이번엔 그럴 여유조차 없는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당장 며칠 후가 출국인데, 계획표가 있어야 일단 안심하는 나에게 이어지는 불확실성은 고문과도 같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소위 '현타'가 밀려왔다.
'일단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지금은…….'
뒤죽박죽인 상황 속에서 계속 스스로를 다독였다. 죄짓고 도망가는 이사도 아니건만, 짐을 최소화하려다 보니 고민만 깊어졌다. 큰맘 먹고 보낸 항공편 소포는 들이는 수고나 부치는 양에 비해 비용이 너무 비싸 다시는 시도하지 않았다. 둘째가 잠든 틈을 타 이민 가방을 열어 물건을 넣었다 빼기를 수십 번, 결국 상당수의 품목을 포기하며 자신과 타협했다. 내 물건은 일단 가장 최소한으로 줄이고 아이들 물품을 우선으로 하되 써야 하는 소모품은 2주 정도의 양을 모자라지 않게 준비하는 것으로 일단락시켰다.
'차근차근.', '하나씩.'이 두 단어가 나를 지탱해 주었다.
출국 전날, 친정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엄마는 오후 반나절을 꼬박 부엌에 서 계셨다.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내가 좋아하는 반찬과 김치찌개를 차려주셨다.
"많이 먹어. 가면 이런 것도 잘 못 먹을 거니까……."
영영 떠나는 것도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숙연한 분위기는 '최후의 만찬'을 연상케 했다. 애꿎은 숟가락으로 내 몫으로 덜어놓은 찌개 속을 뒤적거리며 뜨는 둥 마는 둥 겨우 식사를 마쳤다. 사실 모스크바에서 지내는 동안 몸이 아프거나 감기에 걸릴 때면 이 칼칼하고 뜨끈한 국물이 간절했다. 하지만 귀한 김치로 찌개를 끓여 먹을 용기까지는 차마 내지 못했었다. 출국 전날, 그걸 다 먹고 오지 못한 게 이렇게 후회될 줄이야.
그토록 기다린 출국이건만 만감이 교차해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애들이 아빠 만나면 얼마나 좋겠니."
드문드문 격려의 말씀이 이어졌지만 부모님의 눈가에는 언뜻 수심이 비쳤다. 어찌 걱정이 안 되셨을까.
마흔을 앞둔 딸은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서도 이렇게 또 사고를 친다.
여전히 부모님 속을 썩이는 철부지가 된 것 같아 마음이 착잡했다.
다음 날, 공항으로 가기 위해 커다란 짐들을 현관으로 밀어냈다.
오빠 차에 트렁크 가득 짐이 들어찼다. 아이들을 차례로 태우고 내가 제일 마지막이었다. 시트에 몸을 기대며 한숨 돌렸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다.
평일임에도 친정 식구 모두가 공항으로 배웅을 나와 주었다.
우리가 가져갈 짐은 거대한 이민 가방 하나와 화물용 캐리어 두 개, 그리고 휴대용 유모차.
줄이고 줄인 결과였다. 현재로서는 이게 최선이었다.
기내용으로 준비한 기저귀 가방에는 기저귀 여분과 액상 분유, 간식, 상비약, 작은 장난감등을 종류별로 따로 챙겼다. 여권과 서류 든 가방을 뒤적이며 확인의 확인을 거듭했다. 애들 물건과 섞이면 흡사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형국이다. 뭐든 찾아서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수하물로 부칠 가방 속 분유 포트와 장난감들이 안에서 서로 부딪히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카트를 밀 때마다 들리는 달그락 소리가 불안하게 짤랑거렸다. 부모님은 애써 담담한 척, 투박한 손길로 손주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얼굴을 어루만지셨지만 말수가 부쩍 줄어드셨다.
걱정되는 그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그저 심려 끼쳐 드려 죄송할 따름이었다.
이제 출국 심사를 위해 걸음을 옮겨야 했다. 더 이상 애틋함에 젖어 있을 새도 없이, 빠진 짐이 없는지 살피느라 이내 부산스러웠다. 나는 며칠 밤을 설쳐 푸석해진 얼굴을 손바닥으로 비비며 마른세수를 반복했다. 충혈된 눈이 아려왔다.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벌써 지친 느낌이었다.
23kg 한도를 꽉 채운 수하물들을 꾸역꾸역 부치고, 출국장 입구 앞에서 잘 다녀오겠다며 가족들에게 힘껏 씩씩하게 웃어 보였다. 맘과는 다르게 코끝이 자꾸만 시큰해졌다. 눈물을 보일까 봐 나도 모르게 자꾸만 시선을 피했다. 큰 아이는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니 인사를 하라는 엄마말에 손을 크게 흔들며 서툰 발음으로 소리치듯 외쳤다.
다녀오게요!! 안녕?!!
예상치 못한 우렁찬 인사에 가족들이 일제히 웃음이 터졌다. 나오려던 눈물이 쏙 들어가며 나도 따라 웃어버렸다. 이럴 땐 아이들과 함께하는 정신없는 상황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다행히 울지 않고 헤어질 수 있었으니까.
보안 검색을 위해 유모차를 접고 검색대에 올리고, 아기 띠를 풀었다 조이기를 반복했다. 자꾸만 혼자 어디론가 가려는 큰아이를 챙기며 어지러운 정신을 붙잡았다. 이제 시작인데 벌써 힘에 부쳤다. 간신히 출국 심사를 마쳤다. 아휴… 면세구역에 들어서서야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탑승 전, 큰아이는 공항 키즈존의 뽀로로 캐릭터 사이를 뛰어다니며 즐거워했다.
그 나이 때 아이들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사실이다. '뽀통령'은 엄마 아빠도 제칠 수 있는 천하무적의 유일한 존재였다. 아이는 우상과의 만남에 도파민이 분출하는지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하지만 원래 행복한 순간은 금방 지나가는 법이다.
곧 어린이집 낮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륙하면 아이가 배불리 먹고 푹 자주길 간절히 기도했다.
애들 자면 나도 좀 졸아야지.....
참 야무진 바람이다.
늘 그렇듯, 기대는 배반을 동반한다.
한 번씩 큰아이의 '잠투정'이 시작되면 답이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탑승 전부터 수차례 예고하며 마음의 준비를 시켰건만,
내 아들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제 가자, 뽀로로 친구들한테 인사해."
"아니야! 나 안 가!"
아이는 손을 뿌리치더니 이내 다른 방향으로 도망쳐 버렸다. 싸하다. 불길한 예감은 왜…… 틀린 적이 없는가. 곧 다시 붙들린 아이는 안 가겠다며 소리를 지르고 손을 빼며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렸다. 누가 보면 엄마처럼 보이는 여자가 아이를 납치하려는 형국이었다. 반경 5m 안의 모든 시선이 우리에게 꽂혔다. 평소라면 시간을 두고 아이가 진정하기를 기다려 주었겠지만, 지금은 정해진 시간에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비행기는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결국 아이를 힘으로 번쩍 들어 안았다. 아이도 질세라 괴력을 발산하며 온몸으로 버텼다. 세 돌도 안 된 작은 몸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내 품 안에서 몸을 비틀고 팔다리를 휘저으며 한사코 빠져나가려 했다.
평소에 너무 잘 먹였나 보다.
그래…… 건강해서 다행이다.
하지만…… 떼쓰는 아이는 말도 못 하게 무겁고 억셌다.
이후 비행기 안에서의 10시간은 그야말로 '좌불안석'의 연속이었다.
야심 차게 준비한 좋아하는 캐릭터 스티커와 미니카는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아이는 내 무릎 위에서 버둥거리다 통하지 않자 내리겠다며 소리를 질렀다. 그나마 맨 앞자리라 다행이었지, 앞 좌석에 승객이 있었다면 정말 큰 실례가 될 뻔했다. 양쪽 주변 승객들에게 번갈아 가며 연신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를 연발하며 고개를 숙였다. 장시간 비행은 혼자서도 힘든 법인데, 보채는 아이를 계속 안고 있으니 온몸에 열이 오르고 진땀이 났다. 난감하고 화가 났다 체념하길 반복했다.
어디론가 혼자 증발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뛰어내리고 싶다.....' 진심으로......
친절한 승무원들이 기내에 배치된 간식과 선물을 주며 아이를 진정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셨지만, 그 값진 도움의 효과는 몇 분 지속되지 못했다. 아이는 틈만 나면 앞에 비즈니스석으로 돌진했고, 나는 기겁하며 벨트를 풀고 달려가 잡아오기를 반복했다. 한 번씩 아이의 발버둥에 눈 주변을 얻어맞으며 아프고 서러워 눈물이 핑 돌았다. 혼을 내고 협박을 곁들인 엄포도 놓아봤지만 평소와 달리 먹히는 방법이 하나도 없었다.
하아…… 이젠 정말 물리적으로 제압을 해야 했다.
아이가 몸부림치다 발로 찬 한쪽 눈은 벌게져 눈물이 새어 나오고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단단히 아이를 잡고 진정될 때까지 품에 끌어안았다. 이모가 옆에 앉아 둘째를 전담해서 분유를 먹이고 재우는 걸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진작에 이성의 끈을 놓아버렸을 거다.
덥다.
힘들다.
배고프다.
지쳤다.
좀 그만해 제발.....
여길 지금 벗어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정말..... 내리고 싶다.
10시간 동안 주스 한 잔이 전부였다. 기내식 한 끼 제대로 못 먹은 채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어르고 혼내기를 반복하다 보니 딱 까무러치고 싶었다. 그래, 까짓것 혼자서도 할 수 있다던 다짐은 이미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렸다. 출국일 얼마 전 맘카페에서 자녀들과의 비행기 탑승 시 조언을 구하는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대부분 실질적인 팁과 응원을 아낌없이 나누었다. 그렇지만 긍정적인 글만 있을 리는 만무했다.
"왜 어린애를 데리고 비행기를 타느냐, 민폐다"라고 시작하는…… 장문의 댓글이 떠올랐다. 맞는 말이라 더 아팠다. 모르는 게 아니었다. 아이도 주변 승객들도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찌할 수가 없어 더 속이 상했다.
아이는 이상하리만치 잠도 자지 않았다.
'나도 이제는 한계다.'
이제는 더 버틸 수 없겠다 싶을 때쯤…….
다행히, 착륙 안내 방송이 나왔다.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40여 분간의 비행 연착과 이미 방전된 휴대폰, 그리고 바닥난 체력. 이미 나의 정신 상태는 너덜너덜했다.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공항에 도착했을 땐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어찌어찌 짐을 챙겨 몽롱한 정신으로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그저 앞으로 걸었다. 인파에 휩쓸려 함께 환승 방향으로 향하던 우리를 불러 세운 건 젊은 한국 여학생들이었다. 그녀들의 놀라운 눈썰미와 인류애 덕분에 더 헤매지 않고 입국 심사대로 향할 수 있었다. 입국 심사대 줄 앞에 도착해서도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에게 두 번이나 새치기를 당해 화가 났지만, 화를 낼 기운조차 없었다. 그래도 이제 마지막 관문이라는 걸 상기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 와중에 나와 성이 다른 아이들과의 입국이라 영문으로 된 가족관계증명서를 한 손에 꼭 쥐었다. 한국에서는 당연히 아이가 아빠 성을 따르고 엄마는 성이 다른 경우가 보편적이지만, 외국에서는 이러한 사실이 낯설게 받아들여지기도 하나 보다. 다행히 심사는 어떤 질문을 받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간단하게 통과되었다.
초췌한 나의 안색이 도움이 된 건지 어린아이들의 존재가 도움이 된 건지는 모르겠다. 나오는 길목에 몇몇 동양인들은 자신이 찾은 수하물을 공항 직원이 지켜보는 앞에서 하나하나 풀어헤쳐 검색을 받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짐이 지목되지 않아 정말 다행이었다.
마지막, 게이트를 빠져나오자 인산인해를 이룬 마중객들이 보였다.
핸드폰은 꺼져 있고, 이제 남편을 어떻게 찾아야 하나 막막했다.
그때, 유모차에서 칭얼대던 큰아이가 갑자기 한 곳을 응시하며 손을 휘저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고 소음이 커서 뭐라고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고정된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저 멀리 먼저 알아보고 크게 손을 흔드는 남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 놀랍도록 정확하게 아빠를 찾아낸 거였다.
일단 아이의 요청대로 유모차를 멈춰주자, 스스로 능숙하게 유모차 벨트를 풀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저 앞을 향해 달려 나갔다.
온 목청을 다해 부르며.
"아빠 아아~아!!!!"
지난 몇 달을 영상 통화에서조차 눈도 마주치지 않았던 아이인데…….
살면서 결코 잊지 못할 찰나의 순간들이 있다.
수년이 지나도 눈을 감으면 생생해지는 장면이.
그날의 기억이 그랬다.
활짝 웃으며 한쪽 무릎을 꿇고 아이를 번쩍 들어 안아주던 남편과
고사리손으로 아빠의 목을 끌어안으며 폭 안겨드는 아이의 뒷모습이.
갑자기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황급히 높은 공항 천장으로 시선을 옮기며 숨을 들이켰다.
그래, 이것 때문에 온 거야....
드디어 우리 가족이, 다시 만났다.
수많은 고비를 넘고 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