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와르와 코믹 사이, 자기 최면이 필요한 순간
남편과 극적인 상봉의 기쁨을 나누며, 우리 일행은 그가 이끄는 대로 공항 주차장으로 향했다.
차를 빌려 왔나 싶었는데, 짐이 많은 상황을 대비해 밴처럼 생긴 큰 차량을 예약해 두었단다.
안 그래도 밖으로 짐을 끌고 나오다 보니 생각보다 양이 많아 걱정하던 참이었다. 안도감을 느끼며 차에 다가서는 순간, 덜컹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와……'
TV에서만 보던 UFC 선수를 연상시키는 거구의 기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 앞에 우뚝 내려섰다.
“옴마야…….”
포식자 앞의 초식동물도 아니고, 외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과 성큼 내 쪽으로 다가오는 강렬한 기세에 순간 움찔했다. 본능적으로, 나도 모르게 아기띠 속 작은 아이를 내 쪽으로 당겨 안으며 주춤 물러났다. 비행기 연착으로 너무 늦게 나와서 화가 났나?
그렇다고 애 엄마를 때리진 않겠지…….
그는 긴 다리로 내 곁으로 성큼 다가오더니, 옆에 세워 둔 빈 유모차를 묻지도 않고 척척 접어 한편에 세웠다.
남편도 한국에서는 절대 작은 키가 아닌데, 기사 옆에서 분주히 짐을 옮기는 모습이 마치 수학여행을 앞둔 중학생 같았다.
보통 이런 서비스 직종은 ‘활짝’까지는 아니어도 어색하게나마 미소를 띠기 마련인데,
저 근엄한 표정만 보면 지금 우리를 상대로 납치극이라도 벌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 여긴 러시아다. 사람들이 무표정하기로 유명한 곳.
기사는 곧장 돌쇠처럼 우락부락한 팔 근육을 이용해 ‘끙’ 소리 한 번 없이 트렁크 문을 열고 우리 짐을 차곡차곡 실었다. 성인 여자인 내가 한참을 올려다봐야 하는 우람한 체격의 소유자였다. 그는 뒤이어 아빠 옆에 앉겠다고 칭얼거리는 아이에게 단호하게 검지를 내밀며 맨 뒷좌석의 카시트를 가리켰다. 네 자리는 저기라고 딱 알려주는 것 같았다. 이미 비행기에서 혼이 빠질 정도로 힘들었던 터라, 내심 아이가 한바탕 떼라도 쓰면 어쩌나 싶어 상황을 지켜보는 내내 불안불안했다..
‘아들아…… 제발 눈치 좀 챙겨줘…….’
저 손에 한 대 맞으면 그대로 기절할 것 같다. 너를 공격하면 엄마가 이 한 몸 날려 막긴 하겠다만…….
그래도.... 제발!!!
눈빛으로 버둥대는 아이에게 필사적인 신호를 보냈지만, 다행히 내 걱정은 곧 기우로 드러났다.
서로의 언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지만, 그는 보디랭귀지를 이용한 단호한 태도로 아이를 들어 카시트에 앉히고 순식간에 벨트를 매어 주었다. 저 울퉁불퉁한 근육질 팔에 헤드록이라도 걸리면 살아남을 수 없겠다는 섬뜩한 상상이 잠시 스쳐 갔다.
당시 아이는 두 돌을 넘기며 자기주장이 강해졌고, 카시트에 타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그래도 꼭 해야 하는 일이기에 한국에 있을 때도 온갖 실랑이 끝에 겨우 태우긴 했지만, 늘 진이 빠지는 과정을 동반하곤 했다.
그런데 한동안 조용해서 돌아보니 아이도 기사의 기세에 겁을 먹었는지, 벨트 버클이 채워지는 동안 시선을 바닥으로 피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눈치를 보더니 평소와 다르게 금세 고분고분해져 눈동자만 바깥쪽으로 이리저리 굴렸다. 기사가 몸을 일으키며 멀어지자, 아이는 옆에 앉은 내 손가락 하나를 생명줄이라도 되는 양 얼른 잡아 꼭 쥐었다. 그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귀여워서 피식 웃음이 났다.
차가 미끄러지듯 출발하고, 앞자리에 탄 남편은 옆에 앉은 기사와 무어라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갑자기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맨 뒤의 나에게 큰 소리로 전했다.
기사님도 우리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말 안 듣는 아들'이 있다고 했다.
아들을 단숨에 얌전하게 만드는 매서운 기세에 눌려 덩달아 긴장했는데,
역시…… 그는 경력자였다.
그 말을 듣자, 갑자기 상황이 느와르에서 가족 코미디 영화로 장르가 바뀐 듯 친근하게 느껴졌다. 어쩐지 아이의 소심한 반항에도 전혀 흔들림이 없더라니.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안다고, 아이를 좀 다뤄 본 사람은 역시 달랐다. 남편이 ‘말 안 듣는 애’ 부분에서 유독 힘을 주어 발음하는 걸 보니, 저 사람도 집에 가면 애를 먹는 모양이었다. 이런 분위기의 아빠라면 오던 사춘기도 저 멀리 돌아갈 것 같은데, 예상과는 달리 세계 어디서나 육아 동지들의 애환은 비슷한가 보았다.
창밖 하늘은 어느새 군청색과 보랏빛으로 뒤섞이며 신비롭게 물들더니, 곧 짙은 어둠이 사방에 내려앉았다. 시외의 널찍한 도로를 달리던 차의 속도도 점차 느려졌다. 양옆으로 차들의 행렬이 빼곡하게 이어지는 걸 보니 이제 시내로 들어섰다는 신호였다. 모스크바 중심부의 평일 퇴근 시간, 이곳의 교통체증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터에 있던 사람들이 일순간 도로로 쏟아져 나오는 느낌이었다.
은하수 불빛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차량 행렬을 따라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한 시간 넘게 달렸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졸릴 때의 눈꺼풀이라 했던가. 그토록 걱정하던 입국 심사와 남편과의 상봉이 무사히 끝나자, 팽팽했던 마음의 긴장이 자꾸만 풀어졌다. 눈을 뜨려 할수록, 이완되는 몸 상태만큼 속절없이 졸음이 밀려왔다. 아슬하게 눈을 감으며 저쪽 세계로 막 넘어가려는 찰나, 앞쪽에 앉은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 이런 타이밍은 기가 막혔다.
“이제 다 왔어요. 고생하셨습니다!”
도착을 알리는 말에 길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고개를 빼고 밖을 확인하니, 컴컴한 거리 앞에 5~6층 높이의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차가 서자 남편은 먼저 문을 열어야 한다며 내렸다. 어둠 탓에 색 구분이 어려운 거대한 철문 앞에 바싹 붙어 비밀번호를 누르더니, 옆에 있는 작은 쪽문을 열고 안으로 사라졌다.
이곳이 바로 모스크바에서의 우리 ‘집’이었다.
벽돌색 건물들이 ‘ㅁ’ 자로 테두리를 이룬 구조였다. 잠시 후 남편이 수동으로 큰 문을 열어젖혔고, 차가 건물 단지 안으로 느리게 진입했다. 피곤함으로 침침해진 눈가를 손끝으로 꾹꾹 눌렀다. 두리번거리다 보니 입구 왼편으로 작은 놀이터가 보였다. 이 와중에 가까운 곳에 놀이터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드디어 도착했구나…….
남편은 장시간 여정으로 지친 이모와 이모부를 먼저 챙겼고,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짐을 내리길 기다리며 건물 벽을 등지고 섰다. 기사는 내가 낑낑대며 옮기기조차 힘든 캐리어를 가뿐하게 들어 올려 척척 손쉽게 내려놓았다. 그 엄청난 근력에 다시금 감탄하며, 내심 아이의 본능적인 눈치에 박수를 보냈다.
‘어린 너도 세상 사는 법을 아는구나.’
이후 러시아에서 지내는 동안, 러시아 사람들은 무표정할 때가 많다는 일종의 '선입견'이 과연 사실일지 늘 궁금했다. 대부분의 러시아인들도 이를 어느 정도 인정한다고 한다. 공산주의 체제의 영향으로 감정 표현을 절제하게 되었다는 학계의 의견도 있고, 전통적으로 특히 일을 할 때 실없이 웃으면 진지하지 못하다는 오해를 살 수 있어 웃지 않는다는 관점도 있다. 물론 그들도 사람인지라 일상에서는 자연스럽게 감정을 표현한다. 카페나 식당 같은 서비스 직종에 있는 사람들은 원만한 고객 접대를 위해 잘 웃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모두 다'는 아니다.) 기분이 나빠서 무표정한 것이 아니라, 그만큼 지금하고 있는 일을 진지하게 대하고 있다는 하나의 방증일지도 모른다.
결국, 문화 차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할 듯 싶었다.
섣부른 오해가 미안해 기사에게 몇 번이고 고마움을 담아 인사를 건넸다. 그는 쿨하게 아이에게 손을 흔들고는 차를 몰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밖에서 빌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니, 공용 현관이라기엔 다소 단출한 문이 또 하나 있었다. 우리는 각자 짐을 최대한 나눠 들었다. 남편이 바깥쪽에서 문을 잡고 서있는 동안 줄지어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다시 계단을 올라 반 층을 더 올라야 했다. 벌써부터 쉽지 않다. '혼자 유모차는 어떻게 가지고 다니지?'
그런 걱정부터 떠올랐다.
남편은 본인이 짐을 옮길 테니 호실을 알려주며 먼저 집 앞에 올라가 있으라고 했다.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잠시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 내부는 성인 네 명이 그냥 타기만 해도 꽉 찰 만큼 비좁았다. 위로 올라가며 바깥을 내다볼 수 있게 만든 투명한 벽은 희뿌연 얼룩으로 가득했고,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혹시 추락하진 않을까 싶어 괜히 숨을 죽이게 되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내려서도 집까지 다시 반 층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집 앞에 서자 급히 뒤따라 온 남편이 열쇠 꾸러미를 꺼내 구멍에 넣고 좌우로 번갈아 가며 몇 번이나 돌렸다. 전자 도어록에 익숙한 탓에 열쇠의 아날로그적인 감각이 낯설고도 신기했다. 문이 열리고 불을 켜자 환한 실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다라 딴~’ 예전 인기 예능 프로그램 <러브하우스>의 테마곡이 절로 머릿속을 스쳤다.
현관 바로 왼쪽과 정면에 문이 보였다.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 오른쪽으로 돌자 방이 하나 더 있었고, 맞은편에는 변기와 샤워실이 분리된 화장실, 그리고 작은 부엌이 눈에 들어왔다. 작고 아담했지만 우리가 지내기에는 크게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두 개의 방에는 각각 퀸사이즈 침대와 수납장이 있었고, 부엌에는 식탁과 냉장고, 인덕션, 전자레인지까지 갖춰져 있어 반가웠다. 간단한 식사 준비 정도는 무리 없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숙소를 구하느라 고생했다며 고마움을 전하자, 남편은 오히려 당신이 오느라 더 고생했다며 나의 등을 토닥였다. 그렇게 우리는 훈훈하게 서로 공치사를 나누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방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순간, 앗..... 무언가 내 발밑을 스쳐 가는 기이한 감각에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처음에는 바닥의 얼룩인가 싶었지만 아니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먹구름 같은 먼지 덩어리가 너울너울 발밑을 스쳐 지나갔다. 머리카락과 회색 먼지가 뒤엉킨 그것. 자세히 보니 방안 곳곳에..... 한두 개가 아니었다.
으악!!!
순식간에 발밑이 먼지 군단에게 포위된 느낌이었다. 먼지들이 그간 자기들끼리 가라앉아 있다가, 손님들의 움직임에 자극받아 기지개를 켜는 형국이랄까. 청소를 언제 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경악하는 내 눈빛을 읽었는지, 남편은 너무 바빠서 청소할 시간이 없었다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남편은 급한 대로 수건에 물을 적셔 바닥을 훔쳤다. 집에는 대청소할 때나 쓸 법한 커다란 업소용 청소기 한 대가 전부였고, 그마저도 소음이 너무 커 늦은 시간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 그 외에는 변변한 청소 도구조차 없었다.
어른들은 실내 슬리퍼를 신고 있어 그나마 나았지만, 집 안을 신나게 돌아다니던 큰아이의 발바닥을 들어 확인한 순간 다시 조용히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역시, 안 보는 게 나을 뻔했다.
청소가 시급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지쳤고,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남편은 공항에 오기 전 침대 시트는 세탁해 두었다며, 아직 덜 말라 조금 눅눅한 이불을 건넸다. 우리야 대충 자도 괜찮지만 아이들 이불은 한국에서 가져온 것이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모스크바 교민 단체 채팅방에서 내가 낙점했던 중고 아기 침대도 방 한쪽에 미리 설치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크기가 꽤 컸다. 혼자 이걸 옮기고 설치했을 남편을 떠올리니 괜히 짠한 마음이 들었다. 바쁜 출퇴근 사이에서도 가족을 맞이하려 애쓴 흔적이 곳곳에 보여, 마음을 진정시키고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이제는 청소고 뭐고 그냥 쉬고 싶었다. 이제 시계는 저녁 9시 20분경을 가리킨다. 한국 시간으로 치면 이미 새벽 세 시를 훌쩍 넘긴 시각이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이런 먼지덩어리가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환경에서 아이들을 재운다는 건 상상도 못 했겠지만, 이제 이곳은 우리가 가꾸고 익숙해져야 할 공간이었다.
그저 받아들이는 수밖에.
마음을 진정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난 아무것도 안 보인다…… 정말 안 보인다.’
바닥 청소는 내일의 나에게 맡기기로 했다.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