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을 깬 벨 소리
전화 한 통에서 이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전화 한 통에서 이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연말이 다가오던 12월의 어느 날,
돌이켜 보면 날짜조차 기억나지 않을 만큼 평범하기 짝이 없는 하루였다. 한 해를 마무리하느라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인이 그렇듯 우리도 정신없이 바빴다.
평소 남편은 웬만큼 급한 일이 아니면 근무 시간 중에 전화를 잘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출근해 있을 때는 서로 개인적인 통화를 오래 하기 어려운 점을 배려한 것도 있었지만, 남편 또한 일에 치여 살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었다.
나는 당시 두 달 후면 출산과 육아휴직을 앞두고 있었다. 내심 업무 시간 안에 인수인계를 최대한 꼼꼼하게 정리해 두고 싶어 마음이 바빴다. 그날도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결재용 문서를 작성하느라 미간에 힘을 잔뜩 주고 있던 참이었다.
그때였다. 별안간 바카라상 위에 아무렇게나 엎어 놓았던 휴대전화에서 벨이 울렸다.
‘남편’
액정 화면에 떠오른 두 글자를 보며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 날은 별다른 일정이 없는 걸로 알았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 끝 빈 사무실로 향했다. 점심시간이 다 된 시간이라, 특별한 용건이 없다면 그저 안부 전화일 가능성이 높았다.
당시 나는 둘째를 임신한 지 7개월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번에는 경산이라 그런지 배도 더 빨리 불러오는 느낌이었다. 남편 회사는 출근 시간이 이른 편이라 매일 아침마다 두 돌도 안 된 첫째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는 것도 여전히 내 몫이었다. 아이를 데려다 주고 나도 지각없이 출근하기 위해 매번 지하철역으로 8차선 도로를 급박하게 뛰어 건너던 날들이었다. 달이 차오를수록 몸은 급격하게 무거워졌고 체력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임신과 동시에 시작된 입덧과 잦은 구토에도 출근과 육아는 멈출 수 없었다. 힘들다고 누워만 있을 수도 없으니, 그저 하루하루 겨우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임신'이 주는 무게를 뒤늦게 깨달은 편이었다. 첫째를 임신했을 당시, 큰 문제만 없다면 출산까지 모든 과정이 순조로울 것이라 내심 자만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활동이 더 쉽지 않을 거라는 핑계로 주말에도 온갖 컨퍼런스를 찾아다니며 무리하게 굴다 결국 임신 27주 차에 조산 진통으로 인해 응급 입원을 했다. 경솔하고 무지했었다는 걸 뒤늦게 인정한다.
‘조산’이라는 단어가 내 삶에 닥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무슨 담보로 왜 나만은 그러한 사고를 비껴 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걸까. 결과적으로 그 경험은 우리 가족에게 깊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하루아침에 꼼짝 없이 병실에 누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아이가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지 않고 스스로 호흡할 수 있기를, 뱃속에서 단 하루라도 더 머물러 주기를 매일 기도하며 마음을 졸였다.
그때의 충격과 절박함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기에 이번만큼은 제발 무사히 지나가고 싶었다. 아무리 조심해도 부족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내 다짐과 달리 상황은 늘 녹록지 않았다. 남편 역시 걱정이 됐는지 종종 메시지나 전화로 내 상태를 묻곤 했다.
“여보세요? 왜? 나 아직 점심시간 전인데.”
“……여보….”
“응?”
“……저기….”
머뭇거리는 남편의 말투가 사뭇 부자연스러웠다.
“무슨 일 있어? 급한 거 아니면 내가 15분 뒤에 다시 전화해도 될까?”
“……여보….”
무언가 석연치 않은 기운을 느꼈지만, 그때의 나는 정확히 짚어내지 못했다.
‘오늘 또 회식인가?’ 그저 그 정도로 넘겨짚었을 뿐이다.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전화를 끊어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 남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다급하면서도 망설임이는 평소와 전혀 다른 톤이었다.
그제야 묘한 긴장감이 전신을 감쌌다. 나는 살짝 당기는 배를 쓰다듬으며 옆에 있던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가만 보면 사람의 ‘감’이라는 건 이상하리만치 정확할 때가 있다. 업무든 일정이든 언제나 간단명료하던 사람이었다. MBTI로 치면 전형적인 'T(사고형)'. 감정보다 상황 정리에 익숙한 남편이 이례적으로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숨을 죽였다.
문득, 며칠 전 대화가 스치듯 떠올랐다. 퇴근 후 저녁을 준비하던 내게 남편이 말했다. 오늘 갑자기 인사팀에서 해외 파견 의향을 물어봤노라고.
남편은 원래 새로운 환경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군 복무시절 해외 파병이나 미국 교환학생 경험도 그런 성향의 연장선이었다. 가만보면 ‘타고난 역마살인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엔 사안이 사안인 만큼 남편도 조심스럽게 답했다고 했다. 회사에서 필요하다면 가겠지만, '아내가 곧 만삭이다. 지금 시기에는 아무래도 어렵겠다.'는 뜻을 나름 최선을 다해 에둘러 표현했다고.
나는 그 말을 믿고 함께 대수롭지 않게 받았다.
“응, 그랬어?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아니, 어쩌면 애써 넘긴 것일지도 모른다.
어렴풋이 스치는 불길한 예감을 필사적으로 외면하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저녁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하지만 외면했던 예감은 결국 다시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나, 모스크바로 발령 날 것 같다고 연락받았어.”
“응?......”
분명 안 간다고 했던 것 같은데.....
나는 그 문장을 즉각 이해하지 못했다.
“일단 못 간다고 해야 하는 건 아는데… 상황이 좀 복잡해서.”
“…….”
“여보? 여보, 내 말 듣고 있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숨소리 말고는 아무 반응이 없자 남편은 내가 일순간 기절이라도 한 줄 알았는지 잠시 멈칫했다. 이윽고 참았던 한숨을 내뱉듯 말을 이었다.
“기간은 아직 모르겠는데, 프로젝트라 빨리 끝날 수도 있대. 그런데 출국이 한 달도 안 남았어. 어떡하지…?”
“뭐?!”
놀라움보다 ‘비현실감’이 앞섰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마치 우리와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멍했다.
나는 한 손으로 배를 어루만지며 ‘침착하자, 침착하자.’ 속으로 주문을 외웠지만 부질없었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휴대전화가 미끄러졌고, 귀는 먹먹해졌으며 숨이 가빠졌다.
억지로 크게 심호흡을 했다.
웬만한 일에는 크게 흔들리지 않던 남편도 내 반응에 당황한 눈치였다.
“여보, 괜찮아? 배 아파?”
거듭된 남편의 목소리에 그제야 정신이 조금씩 돌아왔다. 파견? 지금? 혼자? 끊어진 단어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전쟁이 난 것도, 누가 강제로 끌고 가는 것도 아닌데 왜 하필 지금이어야 했을까. 당혹감은 순식간에 분노로 타올랐다.
“괜찮냐고?! 내가 지금 괜찮겠어? 가긴 어딜 가! 못 간다고 해야지! 이제 곧 만삭이야! 애 나오는데 아빠가 없으면 어떡하냐고!”
참았던 감정이 한꺼번에 터진 둑처럼 밀려 나왔다. 하지만 그 뒤로는 거칠게 심호흡만 반복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이어진 정적같은 침묵 속에서 깨달았다. 사람은 너무 당황하면 정말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그건 이 나이가 되도록 처음 겪어보는 종류의 당혹감이었다.
그날의 전화 한 통은 가까스로 유지되던 나의 일상을 산산조각 내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