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에 오아시스, 안탈리아 #2

안탈리아에서, 나의 해방일지

by봄날의 곰


그렇게 날아간 안탈리아는 1월 말임에도 러시아의 영하 날씨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기온은 영상 11~12도를 오갔고, 바람이 조금 불긴 했지만 해가 비치는 한낮에는 겉옷을 벗어도 될 만큼 따뜻했다. 휴양지 특유의 느긋한 분위기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매일 앞치마를 두르고 바삐 움직이며 허덕이던 일상에서 벗어난 것이 가장 기뻤다. 내 손으로 차리지 않은 ‘남이 해준 밥’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지금도 누군가 식사 메뉴를 정하자며 뭐 먹고 싶냐고 물으면 나는 주저 없이 대답한다.



남이 해준 밥!!!



역시 휴가에는 뭐니 뭐니 해도 남이 차려준 밥이 최고였다.

당시 30대 맞벌이 부부였던 우리는 한국에서도 늘 빠듯한 예산 안에서 가성비를 따져가며 간간이 여행이나 여가를 즐겼다. 그런 우리가 외국에서 처음 경험해 보는 올인클루시브 호텔(All-Inclusive)이라니.

기대감에 비례해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도착하기도 전에 우리는 나름 비장한 다짐을 했다.



확실히 뽕을 뽑아야겠어!!!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또한 삶에서 우연히 주어진 시간이었다. 안탈리아에서 사흘을 보냈던 이 호텔 안에서는 정해진 시간만 잘 맞춰 움직이면 시설 내 곳곳에 자리한 다양한 콘셉트의 식당에서 식사와 음료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메뉴를 고르는 것조차 심드렁할 만큼 지쳐 있던 내게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안탈리아에서 우리가 묵은 곳은 지인의 추천으로 예약한 ‘바룻 라라(Barut Lara, 현 Lara Barut Collection)’라는 리조트였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30분 남짓 달려 도착했다. 코로나 이전의 겨울 비수기 방문이라 꽤 저렴한 가격에 묵을 수 있었다. 그리운 마음에 오랜만에 인터넷으로 다시 찾아보니, 그사이 물가도 많이 오르고 여러 상황도 달라져 이제는 하룻밤에 수백만 원을 훌쩍 호가하는 곳이 되어 있었다. 떡 벌어지는 입을 애써 다물며,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은 고이 접어 마음 한구석에 잘 간직해 두기로 했다.





달리는 택시 안에서 이 상황이 좀처럼 믿기지 않아 자꾸 웃음이 났다. 이렇게 콩 볶듯 해외로 휴가를 떠날 수도 있는 거구나. 갑자기 뒤바뀐 날씨부터 모든 상황이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이게 얼마만의 휴가인가. 모스크바에서도 줄곧 관광지 근처에 살았으니 ‘이곳 역시 여행이라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하며 나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 했다. 하지만 생활 터전이라는 굴레 안에서는 아무리 유명한 관광지 근처를 매일 지나쳐도 그저 익숙한 일상의 풍경이었다. 한껏 기대와 설렘을 품고 도착한 호텔. 막상 화려하게 장식된 내부에 들어서니, 이상하게도 내 차림새 때문인지 조금 주눅이 들고 말았다.



식당과 라운지 주변에는 멋들어진 선글라스를 쓴 채, 한겨울임에도 화려한 휴양지용 꽃무늬 원피스를 차려입은 투숙객들이 유유히 거닐고 있었다. 반면 어린아이 둘을 건사하느라 최소한의 짐만 꾸려 온 내 행색이란. 아이들이 장난치며 잡아당겨 늘어난 라운드 면 티셔츠의 목 부분을 애써 정돈하며 어깨 쪽을 괜스레 끌어올렸다. 화장실 거울 앞에 비친 나는, 화장기 없는 초췌한 맨얼굴에 군데군데 미세한 분유 얼룩까지 묻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휴양지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집 앞 슈퍼마켓에 뭘 사러 나온 사람’ 같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주변 풍경과 동떨어져 보이던지, 꼭 초대받지 못한 장소에 발을 들인 기분마저 들었다.


이런 몹쓸 자격지심이라니!






그러나 그런 불편한 마음은 호텔 직원들의 따스한 환대 앞에 금세 녹아내렸다.

쭈뼛거리며 체크인을 하기 위해 프런트 앞에 가까이 다가서자 직원들이 우리를 알아보고 정중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예약자 이름을 확인하며 어디에서 왔느냐는 물음에 남편이 “현재 러시아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라 답하자, 로비 매니저는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으며 몇 번이고 환영의 인사를 건넸다. 곁에 있던 젊은 직원들도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자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기분 탓인가. 좋은 호텔이라 서비스가 남다른 건가 싶다가도, ‘아, 듣던 대로 형제의 나라라서 그런가.’ 싶기도 했다. 낯선 땅에서 마주한 뜻밖의 친절에 나도 모르게 내적 친밀감이 생겨났다. 조금 전까지 백조들 사이 '나 홀로 미운오리'처럼 느끼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지고, 어딘가 겉도는 듯한 차림새가 멋쩍었던 것도 자연스레 누그러졌다.



방까지 안내해 준 여직원은 우리가 자신이 만난 첫 한국인이라며, 괜찮다면 한국어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다. 지금처럼 K-컬처가 그리 유행하던 시기도 아니라 이 의외의 상황이 더 기뻤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외국에서 한국인이라 소개하면 "거기가 어딘데?" 하던 반응도 허다했다. 그런데 이 먼 타국에서 한국과 한국어에 관심을 갖는 사람을 만나게 되다니 괜히 더 반가웠다.



세계 어디든 인사와 감사 표현이 기본 아니던가.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그녀는 서툰 발음으로 몇 번씩 따라 하더니 포켓 속 작은 수첩에 부지런히 적었다. 다음 날 로비에서 다시 마주쳤을 때, 내가 무심결에 영어로 인사를 건네자 그녀가 나를 알아보고 환하게 웃으며 “안녕하세요!”라고 했다. 어설프지만 분명한 한국어였다. 별것 아닌 말 한마디였는데 이상하게 토종 한국인으로서 마음이 뭉클했다. 우리는 손을 단정히 앞으로 모으고 살짝 고개를 앞으로 숙이며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를 두어 번 더 주고받으며 웃었다.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건 꼭 거창한 친절만은 아닌 것 같다. 때로는 상대가 건넨 말 한마디를 기억하고, 서툴더라도 다시 건네보려는 작은 노력에서 마음이 느껴졌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타국에 살다 보니 그런 다정함의 가치를 더 자주 떠올리곤 했다.



우리는 패밀리룸을 예약해 별관에 방을 배정받았다. 방에 들어가 보니 미리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아기 침대와 턱받이, 유아용 목욕용품이 갖춰져 있었다. 나중에 아래층 카페테리아에 가보니 아이들 식탁의자에는 아이용 식기와 일회용 턱받이가 비닐 포장까지 된 채 깔끔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아이들까지 이렇게 세심하게 챙겨주는 상황이 새삼 고맙고 한층 기분을 들뜨게 만들었다.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제대로 한번 놀아보자.’ 짐을 대충 정리하고 아이들과 내부 리조트 곳곳을 둘러보았다. 다양한 콘셉트의 식당과 휴게시설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남편은 여기저기 사진 찍기 바빴고, 첫째 아이는 어딜 가도 화려하게 장식된 조형물이 신기한지 “우와~ 저거 봐봐!”를 무한 반복했다. 너무 덩달아 감탄하면 좀 없어 보일까 봐 최대한 자제하고 있었지만.... 그래, 엄마도 신기해. 엄마도 사실 이런 곳은 처음이거든.




체크인을 하면서 매일 밤, 로비 옆 작은 연회장에서 미니 콘서트가 열린다는 안내를 받았다.

평소 같으면 아이들을 재우느라 한창 바쁠 시간이었다. 하지만 뭐 어떤가. 명색이 몇 년 만에 떠난 휴가인데 즐겨야지. 호기심 많은 남편과 의기투합해 아이들을 데리고 로비층으로 내려갔다. 가수와 밴드가 무대에 올라 분위기를 달구자 투숙객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무대로 나와 춤을 추며 리듬에 몸을 맡겼다.


리조트에서 매일 밤 밴드와 가수들의 연주가 이어졌다.


평소 우리 집 안에는 ‘가무 DNA’ 따위는 없다고 잘라 말하던 나였지만 그날은 달랐다. 오래간만에 맛본 칵테일에 용기를 얻어 큰아이 손을 잡고 그리 높지 않은 무대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뼛속까지 뻣뻣함을 증명하듯 아기띠를 앞으로 당당하게 메고 팔을 양 옆에 살포시 붙이며, 들썩들썩 리듬에 맞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큰아이는 그런 엄마가 웃기는지 고개를 한쪽으로 수줍게 기울이며 쑥스러워하면서도 이내 손뼉을 치며 까르르 웃었다. 다행히 아기띠 속 둘째는 시끄러운 음악과 쏟아지는 조명에도 아랑곳 않고 자기 페이스대로 잠들어버렸다.


풋, 효자로구나~!



평소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성격 탓에 한국에서는 감히 하지 못했을 행동이었다. 그날 밤만큼은 나답지 않게 모든 걸 내려놓았다. 우리는 몸을 흔들며 마음껏 웃었고, 과일로 장식된 형형색색의 칵테일도 두 잔이나 더 주문했다. 애 엄마면 뭐 어떤가. 누구도 아이를 데리고 왔다고 해서 내게 무알코올을 권하지 않았다. 왜 이 늦은 시간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냐는 눈총도 없었다. 둘러봐도 그저 각자의 시간 속에서 즐겁게 어울릴 뿐이었다.

묘한 해방감이 밀려왔다. 그날의 삐걱거리는 근본 없는 춤사위와 달콤한 칵테일은 지난 1년 동안 차곡차곡 쌓인 그간의 피로를 한꺼번에 씻어주는 듯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 마시고 웃고 떠들며 신나게 놀다 방으로 돌아왔을 때,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낮에는 잘 몰랐는데 밤이 되어 기온이 내려가자 방이 너무 추웠다. 별관이라 웃풍이 드는 건지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미리 챙겨간 실내온도계는 17도를 좀처럼 넘지 못했다. 방 안에는 어디서 들어오는지 모르는 냉기에 스산한 느낌마저 감돌았다. 모스크바의 눈보라 속에서도 ‘춥다’는 말을 좀처럼 하지 않던 큰아이가 샤워를 하며 연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엄마, 화장실 너무 추... 워. 추워 죽겠어!!!”


난민도 아닌데 이 화려한 리조트에서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다니……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미 늦은 시간이라 호텔에 문의하기도 애매했다. 일단 서로의 체온이라도 보태 보자는 심정으로 넷이 한 침대에 꼭 껴안고 누웠다. 다른 방에 있는 이불마저 모조리 끌어와 한 덩어리가 된 듯 뭉친 채 잠을 청했다.

그렇게 어찌어찌 하룻밤을 보내고 나니, 아니나 다를까 둘째의 코에 콧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남편과 상의한 끝에 호텔 측에 한 번 이야기해 보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비장한 마음으로 고객 서비스실을 찾아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두 명의 여성 매니저가 한 옥타브쯤 높은 솔 톤으로 인사를 건네며 반갑게 우리를 맞아 주었다.


무엇을 도와주면 좋겠냐는 그녀들의 질문에 우리는 바로 본론으로 돌입했다. 전날 밤 객실이 너무 추워 아이들이 힘들어했다며, 혹시 난방이 잘되는 다른 방으로 옮길 수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부 온도가 따뜻하기만 하면 방의 크기는 작아져도 상관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매니저는 내 말을 끝까지 주의 깊게 듣더니 안타까운 표정으로 사과부터 했다. 갑자기 며칠상간으로 날씨가 추워진 데다 우리가 예약한 패밀리룸은 별관 쪽에 있어서 투숙객이 많지 않아 더 그랬을 수 있겠다고 설명했다. 그러고는 바로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방을 알아봐 주었다.



“지금 아이들은 괜찮나요?” 그녀는 전화 신호음을 기다리는 그 사이에도 몇 번이나 걱정스러운 얼굴로 아이들의 상태를 물었다. 그리고 본관에 있는 방은 공간이 나누어져 있지는 않지만, 오히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넓은 한 공간에 함께 있는 게 편하지 않겠냐며 우리 의사를 물어왔다. 그렇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수면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방이 열 칸 있어도 소용없다는 걸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다른 부서의 확인이 있을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려 달라며 사무용 바카라상 앞의 의자를 권했다. 함께 기다리는 동안 매니저와 멀뚱히 마주 보고 있기도 어색해 가벼운 스몰토크를 시작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육아 이야기로 물꼬가 터졌다. 그녀에게도 집에 우리 큰아이 또래인 세 살배기 아들이 있다고 했다. 그녀는 아이를 키우며 겪은 여러 에피소드를 하나둘 풀어놓기 시작했다. 배우 뺨치는 표정 묘사에 생생한 상황 설명까지 곁들인 그녀의 입담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유쾌해졌다. 어느새 우리는 호텔 직원과 투숙객이라는 관계를 잠시 잊은 채, 아이를 키우는 엄마대 엄마로 수다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녀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다. 하루 종일 일하고 지쳐 집에 돌아가면 아이가 자신을 방으로 호출한단다. 엄마는 이미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이지만 아이는 몹시 급하다고 보챈다. 그러고는 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아끌어 침대 끝에 앉히고 아주 중대한 상이라도 내리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Mom~ You can play with me. now” (엄마, 이제 나랑 놀아도 돼.)



눈을 위로 굴리며 돌아버리겠다는 그녀의 생생한 표정을 보는 순간,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입을 떡 벌리고 소리 없이 비명을 내지르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사실적으로 와닿았기 때문이었다. 국적과 언어는 달라도 엄마의 마음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퇴근 후 지친 숨을 내쉬다가도 막상 아이가 놀아달라며 다가오면, 떨어진 체력을 부여잡고 하루 종일 자신을 기다렸을 아이를 생각해 내색하지 못하는 것. 그러면서도 돌아서면 괜히 미안한 마음까지.

세상의 수많은 워킹맘들이 어쩌면 이렇게 닮은 모습으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내 전화벨이 울렸다. 그녀는 얼른 수화기를 들고, 수다 떨던 옆집 언니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 프로페셔널한 호텔리어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곧 내선 전화를 경쾌하게 끊더니 침대가 더 큰 다른 방으로 바꿔주겠다고 했다.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는 우리에게 오히려 직접 찾아와 이야기해 주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화답했다. 짐을 정리해 옮길 준비가 되면 벨보이를 올려 보낼 테니 내선 번호로 연락만 달라는 안내도 잊지 않았다.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찾아간 곳에서 우리는 직원들의 적극적인 대응 덕분에 생각보다 쉽게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방을 바꿔준 사실보다, 우리의 이야기를 끝까지 귀 기울여 들어주고 아이들의 안부부터 먼저 물어주던 그 마음씀씀이였다. 낯선 나라에서 처음 만난 사람.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는 잠시 알고 지낸 동지가 된 듯했다. 좋은 호텔 서비스란 꼭 꽉 조이는 정장처럼 세련되고 정중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상대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 더 살펴주는 마음, 어쩌면 좋은 서비스는 그런 데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자, 이제 호텔에서 맞닥뜨린 중요한 문제도 해결했으니 정말 안탈리아의 모습을 만나러 가야겠다.

마리나 항구를 비롯한 안탈리아 시가지 곳곳을 둘러보기 위해 남편과 나는 얼른 짐을 새로운 방에 넣어두고 택시를 불렀다.


시리도록 파란, 드넓은 지중해를 눈에 가득 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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