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와~드루와~ 싸움은 8할이 기세다!
아침 9시 30분경, 스몰렌스까야(Smolenskaya) 역 근처를 우회하는 택시 한 대가 서행 중이었다.
"아진!" (하나야!)
"니예 니예~ 드바!!"
(아니 아니야~, 두 명 했어!)
"아진!" (하나!)
"녯~ 드!~바!!" (아니, 두! 명!!)
"아진!!!"(하나!)
"드바!!!" (둘!!)
"아진!!!"(하나!)
"드바!!!" (둘!!)
"탕!" "수!" "육!" 난데없는 설전의 시작은 예능에서나 보던 게임의 구호를 연상케 했다.
처음엔 나름 차분하게 단어를 주고받던 택시기사와 나.
하지만 회차가 거듭될수록 단어 사이의 공백은 사라지고,
한 음절 한 음절 힘을 주어 쏘아붙이는 형국으로 변했다.
이제 이건 단순한 소통이 아니라, 누가 먼저 혀가 꼬이나 겨루는 자존심 대결로 치달았다.
불과 5분 전 택시 기사는 우리가 승차하자마자 아이 둘을 쓱 훑어보더니 인원수를 잘못 지정했다며 불만을 표했다. 비록 난 러시아어를 잘 모르지만, 그의 제스처와 살짝 나무라는 말투로 상황을 충분히 파악했다.
하긴, 오늘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처음 택시를 이용하기 시작할 때는 정말 실수로 잘못 입력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 '2명'을 태워줄 택시를 만나기 위해 얼마나 새로고침을 무한대로 누르며 인내했던가. 앞선 과정 때문에 나도 조금은 약이 오른 상태라 단칼에 아니라고 받아쳤다.
내가 고분고분 인정하지 않자 기사도 짜증이 났는지 점차 목소리를 높이고, 나 역시 질세라 말을 받았다.
한 시간 전부터 택시를 타기 위해 고생한 것이 억울해서라도 짧은 단어일지언정 내 변호는 해야 했다.
나도!! 아침마다 택시 호출 때문에
죽을 맛이라고!!!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현지에서 다닐 유치원이 정해지면서, 우리는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등원 전쟁을 맛보는 중이었다.
막히지 않는 시간을 기준으로 승용차를 이용하면 10분 남짓 걸리는 가까운 거리였다.
하지만 매일 등하원을 해야 한다는 전제를 두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 성인 걸음으로 도보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집에서 편도로 40여 분.
아침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이 길을 오가는 일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출발 전, 먼저 수유를 하고 기저귀를 깨끗하게 갈아준 둘째 아이를 아기띠에 멨다.
그 상태에서 첫째 아이를 준비시키는 일은 좀 더 난이도가 있었다. 갑자기 옷을 입다 말고 도망가거나 바닥에 주저앉지 못하게, 최대한 구슬리며 문밖으로 유인하는 고도의 심리술은 필수였다. 작은 젤리나 손톱만 한 초콜릿도 떡밥용으로 종종 활용되었다.
집 밖으로 이어지는 계단과 철문에도 크고 작은 턱이 많았다. 힘도 달리고 위험하기도 해서,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갈 때만큼은 눈물을 머금고 유모차를 포기했다.
겨우 공동현관 밖으로 나와도 만 2살 아이와 경로를 이탈하지 않고 1시간 이상 꾸준히 걷기란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도보를 이용한 등원은 결국 선택지에서 제외되었다. 한국처럼 유아 기관의 셔틀 차량이 운행되는 것도 아니라 모스크바 뚜벅이인 우리에게 결국 남은 방법은 대중교통 이용뿐이었다.
세계 어디나 그렇듯 아침 7시에서 9시 반 사이, 그 시간은 이른바 '출근 러시'였다.
우리 집 아이도 보통 아침 9시 전후에 겨우 집 밖으로 나섰다. 사립 유치원 시간표상 출근하는 부모들을 배려해서인지 더 이른 등원도 가능했지만, 8시에 겨우 일어난 아이에게 아침을 먹이고 출발하려면 그 시간조차 빠듯했다. 더군다나 우리 집은 모스크바 시내 한복판, 가장 혼잡한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
모스크바에서는 당시 '얀덱스(Yandex)'라는 택시 호출 앱이 대중적으로 사용되었다. 예전에는 택시 요금도 길거리에서 흥정했다는데, 세상 참 편해졌다. 여담이지만 택시로 짐만 주고받을 수도 있다. 교민 단체 채팅방에서 중고 바카라이나 육아용품을 거래할 때 직접 가지 않고 바카라 등을 택시에 실어 받는 식으로 이용해서 편리하긴 했다.
앱으로 택시를 부를 때는 목적지와 탑승 인원수를 미리 입력해야 했다. 덕분에 택시 기사와 일대일로 소통해야 하는 부담은 좀 덜었다. 아이가 있을 경우, 카시트 보유 조건에 부합하는 차량만 호출에 응답하게 되어 있었다. 문제는 출근 시간에 택시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데다, 카시트를 두 개나 갖춘 택시는 흔치 않다는 점이었다. 트렁크에서 카시트를 꺼내 설치하고 아이를 태우는 과정이 번거로우니, 기사들이 기피할 만도 했다.
어떤 날은 어렵게 호출이 잡혀도 교통 상황에 따라 일방적으로 취소되기 일쑤였다.
시간에 맞춰 급히 나가려 하면 아이가 갑자기 외투 입기를 거부하거나 엄마와 집에 있겠다며 바닥에 드러눕는 행동을 해 속이 타들어 갔다. 애써 예약된 택시가 그냥 가버릴 수도 있고, 너무 늦으면 앱에 등록된 카드로 대기 추가 요금이 부과되기도 했다. 무조건 미리 나가서 기다리는 게 안전하지만 상황은 늘 여의치 않았다.
초반에는 체계를 잘 몰랐고 택시도 너무 잡히지 않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아이를 1명으로 지정해 부르기도 했다. 어떤 날은 한 시간 반 넘게 택시가 잡히지 않아, 오전 11시가 다 되어 등원시킨 적도 있었다. 아이가 아무 말 없이 오지 않아 걱정했다는 선생님들께, 무안한 마음으로 더듬거리며 지각 사유를 설명해야 했다.
"카시트 2개를 지정하면 택시가 너무 안 잡혀요."
억울함을 담아 하소연하면, 당시 영어 과목과 통역을 담당했던 제니 선생님은 특유의 나긋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그게 우리의 규칙이에요.
때때로 힘들겠지만 따라야지요!!”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상황 종료였다.
하나도 틀린 말이 없으니 뭐라고 더 대꾸하지도 못했다. 당시 심정으로 구질구질하게 덧붙이자면,
아기띠를 안에 메고 있던 둘째까지 카시트에 태웠다 다시 안는 것이 때때로 번거로운 일이었고, 차로 10분내 정도의 짧은 거리라 괜찮을 거라 안일하게 생각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부끄럽다. 한국도 요즘은 유아의 차량 내 카시트 착용이 필수다.)
2명 지정 시도 끝에 안되면 아동 1명을 일단 지정해 택시를 호출해 보았다. 기사가 도착하여 나와 아이들을 번갈아 보고 어리둥절해 하기도 했다. 어떤 날은 말이 안 통하는 외국인임을 알아채고는 대화를 포기하고 그냥 태워주기도 했다. 혹은 경찰에 단속당해도 벌금은 손님 몫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이렇게 운이 좋은 건 아니었다.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려 도착한 택시가 카시트가 하나뿐이라는 이유로 승차를 거부해, 길가에 아이들과 허망하게 남겨지는 일도 종종 있었다. 어떤 날은 분명 아이 2명을 지정했는데도 기사가 1명으로 되어 있다며 추가 요금을 요구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돌아가는 사정을 잘 모르니 뭐라고 하면 주눅부터 들어 사과하고 보았지만, 나도 점점 눈치가 늘어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내 귀바카라사유가 아닌 일로 뭐라고 하면 억울했다. 그렇다고 하지도 못하는 러시아어로 속 시원히 항의지도 못하고 찜찜함을 남긴 채 서둘러 내려야 했다.
이런 불편함 때문에 가능하면 다른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싶었지만, 일방통행이 많은 인근 도로 사정상 집 근처에서 한 번에 가는 적당한 버스 노선이 없었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택시 앱을 눌러야 했다.
결국 택시 호출에 성공하지 못한 날은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인근 지하철역 쪽으로 터덜터덜 방향을 틀었다. 사실 비용면으로는 지하철 편도에 대략 55 루블(한화 약 1,000원 정도), '트로이카'라는 충전식 교통카드를 쓰면 조금 더 할인을 받을 수 있어 가장 합리적이긴 했다. 택시는 한 번 등원 시 약 300~350 루블 정도로 거의 6~7배 차이였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안전'이었다. 모스크바의 지하철은 거의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애초에 방공호 목적으로 지어져 열차 탑승을 위해서는 지하철 승강장까지 엄청나게 깊게 내려가야 했다. 엘리베이터는 없고 에스컬레이터 속도도 한국보다 훨씬 빨라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타기엔 무척 부담스러웠다.
큰 아이는 멀쩡하다가도 한 번씩 장난기가 발동하면 빠르게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 위에 주저앉으려 해 내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하지만 하루치로 환산해도 꽤 비싼 사립유치원 수업료를 생각하면 결코 우리에게 '포기'란 없었다.
마음을 다잡고 인파의 물결 속에서 우리도 질세라 치열하게 열차 탑승을 시도했다.
그때, 내 손을 잡은 큰 아이가 난데없이 밑으로 쑥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에 밀려 빨리 타려다 발 한쪽이 열차와 승강장 사이 틈으로 빠진 것 같았다. 당시 큰아이 발길이가 13cm도 채 되지 않게 조그마했던 터라 정말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순간적으로 너무 당황해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나는 괴성을 지르며 아이를 두 손으로 절박하게 잡아당겼다. 그때 너무나 고맙게도 옆에 서 있던 남자분이 반사적으로 함께 달려들어 아이를 번쩍 들어 안아 올려주었다. 몸이 완전히 빠지진 않았지만 불과 몇 초 사이에 일어난 일에 모두 아연실색했다. 아이는 발 빠진 것보다 엄마 반응에 더 놀랐는지 하차할 때까지 멍한 표정으로 내 옷 끝자락만 부여잡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앞에 동생을 아기띠로 메고 있어 큰 아이를 꼭 안아 다독이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미안했다. 나는 귓가에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도 못한 채 주변 사람들에게 거듭 고개를 숙이며 "스빠씨바(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이후 유사한 사고가 한 번 더 반복되자 나는 아침 등원 시 지하철 이용은 깨끗하게 포기하게 되었다.
결국 여러 시행착오 끝에, 등원할 때는 기다려서라도 택시를 타고 하원할 때는 도보나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나름의 규칙을 정했다. 비교적 시간이 넉넉한 하원 시간과, 아이를 등원시킨 직후에는 차비도 아끼고 장도 볼 겸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소소한 일상이었지만, 매일 작은 사건 사고가 함께하는 등하원길은 매번 거대한 미션처럼 느껴져 진이 빠졌다.
시간에 맞추려고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며 데리고 나와, 추운 날씨에 겨우 잡아탄 택시였다.
그런 택시 안에서 기사에게 인원 설정을 잘못했다는 구박까지 받을 때면, 서러운 마음에 한 번씩 '욱'하고 치미는 것이 느껴졌다.
비록 아는 러시아어 단어는 몇 개밖에 없었지만 지지 않고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며 외쳤다.
“니예 니예! 드바! 드바!” (아니, 아니! 둘! 둘!)
그렇게 적극적으로 응수하곤 했다.
기사는 핸드폰으로 누가 맞는지 확인해 보려 했다. 운행 중에는 화면이 잘 넘어가지 않는지 몇 번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포기했다. 그러고는 뭐라고 중얼중얼하며 전방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묵묵히 운전에만 집중했다. 백미러로 마주친 그의 눈에는 ‘좀 있다 확인해 보자!’는 뉘앙스가 가득했다.
남은 몇 분을 어색한 침묵 속에서 달렸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기사는 기다렸다는 듯 휴대폰 앱을 열어 내 코앞에 내밀었다.
그 당당함에 살짝 움찔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날은 나도 오기가 생겼다. 눈에 힘을 주고 그의 눈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그때, 내 눈에 보이는 선명하게 아동 승차 항목의 숫자.
2
나의 승리다!!!!!!
찰나의 순간,
마음속으로 역전 골을 넣은 스트라이커처럼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목을 뒤로 젖힌 채 환호한다.
기세등등했던 기사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거봐 내 말이 맞지?'
나는 미소까지 보이며 득의양양했다.
그런데 참 묘하게도, 러시아 사람이 의외로 순박(?)하다고 느껴졌던 지점은 여기였다. 차 안에서 그렇게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씨름을 이었는데, 앱으로 사실을 확인하고 나니 순순히 알겠다고, 사과를 했다.
'뭐지? 이 김 빠지는 전개는???'
그리고는 택시기사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차를 도와주고 가버렸다.
임전태세로 잔뜩 긴장했던 나로서는 맥이 빠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불리한 상황에서 굴하지 않고 기세로 밀어붙여 결국 이겼다는 묘한 승리감이 차올랐다.
사실 난 집안에서도 알아주는 ‘쫄보’인데 말이다.
휴우~ 이런 날은 그냥 집에 갈 수 없었다.
큰아이를 교실로 데려다주고 유치원 아래층 반지하에 자리 잡은 작은 로컬 카페에 들러 설탕을 듬뿍 넣은 라테 한 잔(200 루블, 당시 환율로 약 3,700~4,000원)을 주문하며 나 홀로 축배를 들었다.
나만을 위한 작은 사치였다.
갑작스러운 전투의 피로함을 녹이기에 당충전은 필수였다.
반지하의 빈티지한 분위기가 아늑한 그곳에서 한잔 천천히 음미하며 마시고 싶은데...
하지만 이미 두툼한 우주복을 껴입은 작은 아이가 답답한지 아기띠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불편감을 호소했다. 결국 테이크아웃 잔에 부탁하고 밖으로 나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돌아가는 길은 좀 전과 다르게 퍽 여유로웠다.
쌀쌀한 바깥 기온으로 인해 뜨거운 커피가 마시기 좋을 정도로 알맞게 식어 있었다.
달달한 커피 맛과 풍성한 우유 거품은 종이컵 안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았다.
서두르지 않는 지금의 여유가 너무 소중했다.
오늘따라 티 하나 없이 말간 파란 하늘 아래, 길가의 연둣빛 잎사귀들은 살랑살랑 제 몸을 흔들며 싱그러운 인사를 건넸다.
기분 탓인가?
이 풍경 전부가 사랑스러웠다.
공원을 가로질러 아르바트 거리까지 이어지는 산바카라길을 느릿하게 만끽했다.
장바구니에 식료품을 차곡차곡 채워 돌아오는 한 시간 남짓의 여정.
그 길 위에서 나는 이름 모를 평온함으로 충만해졌다.
실내에서는 덥다고 낑낑대던 작은 아이도 어느새 엄마의 품 냄새와 선선한 공기를 자장가 삼아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비로소 되찾은, 평화로운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