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첫 유치원을 만나다

시차 적응보다 무서운 '독박 육아' 탈출기

by봄날의 곰

모스크바 도착 약 65시간 후.


아르바트 거리에서 조금 비껴 난 낯선 골목 한복판,

길 잃은 어린양처럼 휴대폰만 뒤적이며 허공을 두리번거리는 동양인 아줌마 한 명이 서 있었다.


부인하고 싶지만,


그래... 바로 나였다.


‘아... 이쪽이 맞는 거 같은데.... 아닌가?’


한 손으로는 삐뚤빼뚤 서툰 유모차 운전을, 다른 한 손으로는 생명줄 같은 구글 지도를 연신 확인하며 애써 방향을 잡아보았다. 다리를 움직이는 횟수보다 휴대폰 앱을 들여다보며 눈을 깜빡이는 횟수가 더 많은 것 같았다. 아직 노안이 올 때도 아닌 것 같은데 오늘따라 왜 이리 눈이 침침한지 모르겠다.


유모차에 탄 큰아이는 엄마의 삐걱대는 운전 솜씨가 영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았다. 집을 나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 사이 내리고 싶다며 몇 번 칭얼거렸다. 이내 반응 없는 엄마가 불안한지 고개를 빼꼼히 뒤로 돌렸다. 잠시 후 얼빠진 표정의 엄마와 눈이 마주치더니, 아이는 얕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원래 자리에 고쳐 앉았다.


‘아, 지금은 투정 부릴 때가 아니구나…….’ 싶은 모양이었다.

기특한 녀석. 내심 뻗대기는 포기했구나.

아이는 결국 항의를 접고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짜증 섞인 제스처로 '드르륵~' 소리와 함께 유모차 차양막을 끝까지 내려 제 시야를 스스로 차단해 버렸다.


‘요 녀석이....’


가끔 저럴 때마다 벌써 유아 사춘기가 온 것 같아 ‘얘가 대체 몇 살이지?’ 싶었다.

한소리 해주려다가 이내 지금은 최대한 기분 좋게 가야 하니 말을 말자.

하여간 말은 느려도 눈치 하나는 백 단 고수였다.


‘미안하다 아들아. 엄마도 이런 건 처음이라 어쩔 수 없어. 나라고 뭐 다 잘하겠니?’


애써 당황한 티를 감추려 태연한 척하지만 나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이 길도 저 길 같고, 저 건물도 옆 골목의 건물과 비슷하게만 보였다. 아까 돌아온 방향이 이쪽인가... 뭐가 이리 다 비슷하게 생겼어. 건물 색이라도 좀 다르게 하지! 속으로 투덜대며 관자놀이에 축축하게 맺힌 땀을 훔쳤다.


아... 집에 가고 싶다.



약 30분 뒤에 미리 예약해 놓은 유치원 입학 상담이 있었다.

약속 시간에 늦겠다는 초조함이 있었지만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이제 향후 수개월간 펼쳐질 ‘독박 육아 잔혹사’를 좌우할 중요한 날인 셈이었다.

현지 생활에서 조금이라도 숨구멍을 내느냐, 아니면 집구석에서 아이들과 지지고 볶다 자멸하느냐의 절체절명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지하철을 탈까 잠시 고민했지만, 남편은 한국과 시스템이 조금 다르다며 특히 아이랑 가는 부분에 우려를 표했다. 승강장까지 에스컬레이터로 한참 내려가야 하고, 환승도 한국처럼 몇 계단 오르면 끝나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차라리 유치원이 결정되면 휴일에 함께 오가는 길을 연습해 보자고 했다.



저 긍정의 화신이 ‘연습 체험’을 제안한다는 건 난이도가 만만치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결국 아이를 데리고 헤매느니 지상에서 그냥 걸어가 보기로 했다. 다행히 오르막길은 없다니까. 초행길에 유모차를 밀며 급경사를 오르는 건 가급적 피하고 싶었다. 남편은 언제나처럼 출근해야 했으니,

결국 믿을 건 나 자신과 풀 충전된 휴대폰뿐이었다.



집에서 미리 지도 앱을 확인하니 거리는 4km 정도였다.


‘어? 갈 만한데?’


이제는 반복적으로 길을 헤매며 그렇게 말했던 과거의 내 등짝을 한 대를 때려주고 싶었다.

왜 나의 예측은 자꾸 아이와 함께하는 현재의 나를 잊고, 혼자 다니던 시절의 체력을 기준으로 하는 걸까.

나 홀로 나선 길이라면 기분 좋은 산바카라 코스였겠지만, 시차 적응도 안 된 채 유모차를 대동하고 나선 애 엄마에게는 오르막 없는 에베레스트 등반이나 다름없었다. 그리 덥지도 않건만 땀은 왜 이리 나는지.



구글 지도는 친절하게도 최단 거리를 알려주는 모양이었다.

자꾸만 인적이 드문 으슥한 골목 안쪽으로 나를 안내했다. 평일 대낮인데 사람이 안 보인다는 게 이렇게 무서울일인가. 누가 봐도 이 지역에 처음 온 듯한 어수룩한 한국 아줌마를 납치라도 하면 어쩌나 싶은 공포가 엄습했다. 실제로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혼자 괜한 상상에 겁을 먹는다.


하긴, 딱 보기에도 돈도 별로 없어 보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사람 많은 큰길로 가고 싶었다.

휴대폰이 사람이라면 짤짤 흔들며 외치고 싶다.


‘이런 과한 친절은 정말 필요 없다고!!!!’






일전에 모스크바행을 택하며 했던 가장 큰 고민은 의료 서비스와 큰아이의 보육 기관이었다. 특히 기관을 보내는 문제에 있어서, 기왕 외국에 왔으니 영어라도 배우고 국제적 감각을 익히게 하겠다는 원대한 포부 따위는 맹세코 아니었다. 우리도 양심이 있지, 한국말도 아직 서툰 만 2세 아이에게 언감생심 제2외국어라니.


그저 아이 점심을 먹여주고 반나절 무탈하게 맡길 곳이 절실했을 뿐이다.

아이 둘을 데리고는 매일 장을 보거나 집안일을 진득하게 해내기엔 여러모로 버거워 보였다. 에너지 넘치는 ‘탱탱볼’ 같은 큰아이와 젖먹이 둘째를 좁은 실내에서 온종일 홀로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웃집에서 층간소음으로 신고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물론 머릿속엔 결정을 앞두고 수많은 물음표가 쏟아졌다.


괜히 보냈다가 인종차별이나 따돌림을 당하면 어쩌지?


말도 안 통하는데 선생님과 소통은 어떻게 하고?


수만 가지 고민이 머릿속을 채웠지만, 모든 문제를 해결한 뒤에 시작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앞날은 누구도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법.

그저 아이의 낯선 일상이 너무 고달프지 않기만을 바라며,

일단은 한 발을 내디뎌 보는 것뿐이었다.


해 보고 정 안 되겠으면 그때 가서 다시 고민해도 되지 않을까.








우리가 모스크바에 도착하기 전, 남편은 현지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몇 군데 유아 기관을 추려 직접 방문 상담을 다녀왔다. 그중 제일 마음에 들었던 최종 후보 두 곳을 소개해 주었다. 다행히 아이가 직접 둘러보고 결정해도 된다고 해서, 도착한 바로 다음 주에 방문하기로 예약을 걸어둔 상태였다.



첫 번째 후보지인 원은 숙소에서 도보 40분, 지하철로 네 정거장 거리였다. 환승까지 해야 하는 번거로운 경로인 데다, 하필 관광객이 넘쳐나는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 인근이라 출퇴근 시간대는 주변이 늘 인산인해였다. 원래부터 저질이었던 나의 몹쓸 체력 때문인지, 시차 적응이 덜 된 탓인지 유모차를 밀며 걷는 내내 눈꺼풀은 천근만근이었다. 혹사당한 노새처럼 축 늘어지려는 걸음이 이어지다 속으로 번쩍 정신 들게 하는 채찍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둘 다 종일 집에 데리고 있을 수 있어?!'

아니지, 그건 안되지.



지금 이 타이밍을 놓치면 나는 아이들과 위태로운 동거를 이어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모레면 한국으로 돌아가실 이모께 잠든 둘째를 맡기고, 큰아이만 데리고 늦을세라 서둘러 출발한 참이었다. 초행길인 점을 감안해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나왔음에도 한 시간을 헤맨 끝에야 겨우 도착했다.



모스크바 시내의 건물들은 외관상 예술적이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 많다. 건물들이 오래된 탓에 내부 역시 예스러운 멋을 간직하고 있다. 그 말인즉슨, 2층에 자리 잡은 유치원이라고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세월의 흔적 때문인지 군데군데 모서리가 닳아 반질반질해진 계단을 올라 2층에 도착하니, 칙칙한 회색빛 계단 통로와 달리 깔끔한 미색 벽과 파스텔톤 교구장이 놓인 널찍하고 정갈한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복도 벽 위에는 생활에서 익히 볼 수 있는 재료들을 활용하여 만든 교구들이 붙어있었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벽면으로 다가갔다. 생활가구 어디선가 떼어 와 모아 놓은 듯한 바퀴들을 손바닥으로 굴리며 살포시 웃었다. 마침 곳곳에 열린 창으로 오후의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들고 있었다. 따뜻한 기운 덕분인지 긴장으로 잔뜩 굳어 있던 마음도 조금씩 풀어졌다. 파스텔 톤으로 칠한 원목 소재의 가구와 아이들의 흥미를 끌 만한 놀잇감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조리실에서는 간식을 만드는지 가정집에서 맡을 법한 익숙하고도 고소한 냄새가 복도를 타고 흘러나왔다.


3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는 이 원에서는 익숙하고도 묘한 안정감이 느껴졌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서자, 마치 007 영화 속 첩보 기관 수장 ‘M’을 닮은 중년의 은발 머리 선생님이 인자한 미소 띤 채 우리를 맞아주셨다. 러시아어로 어떻게 소통해야 하나 난감해하던 나에게 그녀는 유창한 영어로 인사를 건넸다.


한국에서 몇 번의 속성 과외를 위해 만났던 러시아어 선생님에게 “러시아에서 영어는 필수 과목이 아니다.”라는 말을 들었기에 기대하지 않았는데, 그나마 사립 유치원이라 그런지 영어로 기본적인 소통이 가능한 분이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낯가림 심한 아이는 처음엔 내 다리에 매달려 떨어지지 않으려 했지만, 유아반 담당 선생님의 안내를 따라 아기자기하게 장식된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이는 익숙한 곳인 양 철퍼덕 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동물 피규어를 만지며 씩 웃었다. 엄마 옆에 붙어 있겠다며 치대던 녀석은 어디 가고, 좋아하는 장난감 앞에서 빛의 속도로 태세 전환을 했다. 어이가 없어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교실 한구석에 서서 선생님들과 아이가 노는 모습을 함께 지켜보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선생님들의 태도였다. 일단 처음 본 아이를 바라보는 표정에서 호기심과 작은 생명체에 대한 순수한 애정이 가득 느껴졌다. 거만하지 않으면서도 교육 철학에 대한 자부심이 분명했고, 어떤 질문에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한국인이 아니라도 다른 동양인 아이가 재원 한 적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여쭤보기도 했다. 선생님은 인종차별을 염려하는 내 속마음을 읽으셨는지, 우리 아이가 입학하면 ‘개교 이래 첫 아시아인’이 될 것이라며 꼭 함께 생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거듭 말했다. 설레는 표정까지 감추지 못하는 모습에 다소 안심이 되었다.



혹시 귀여운 외모에 속아 방심하실까 봐, 보기보다 순하지 않다는 걱정 섞인 밑밥(?)까지 깔아보았지만,

제니 선생님은 웃으며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답하셨다.


“걱정 마세요. 우리는 긴 전통 있는 유치원이에요. 어떤 아이든 잘 돌볼 수 있답니다.”


상담을 마친 뒤 아이가 조금 더 적응할 수 있도록 10분 정도 노는 시간을 지켜봤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둘째 수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2시간 남짓한 외출이 될 줄 알았는데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렀다. 아이에게 5분 뒤에 떠날 거라고 미리 일러두었지만 막상 나갈 시간이 되자 어김없는 수순이 시작됐다. 떼를 쓰며 바닥에 드러눕는 아이를 보며 ‘역시나’ 싶었다.


그때 유아반 담당인 안나 선생님이 나섰다. 침착하게 아이가 좋아하던 손가락만 한 장난감 하나를 손바닥에 쥐여주며 손을 여러 차례 다독였다. 그리고는 얼마간 조곤조곤한 러시아어로 아이를 달랬다.

그 따뜻한 눈빛과 말투에 아이가 마법처럼 진정되는 걸 보며 나는 속으로 유레카를 외쳤다.


‘아! 여긴가?!!’


왼쪽 사진은 낮잠용 간이 침대. 평소에는 쌓아놓았다가 낮잠시간에는 바닥에 하나씩 내려 펼쳐놓고 사용한다. 오른쪽 사진은 교실 내부 전경.




첫 번째 유치원도 충분히 마음에 들었지만, 약속된 다음 일정도 있었고 다른 곳의 운영 방식 역시 궁금했다. 어차피 두 곳을 모두 둘러본 뒤 결정하기로 했던 터였다. 기왕 약속한 김에 직접 보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다음 날, 숙소에서 도보 15분 거리인 또 다른 국제 유치원을 방문했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데다 초행길이라 조금 헤매긴 했지만 전날보다는 훨씬 수월했다. 무엇보다 대중교통 없이도 충분히 도보 등원이 가능해 보였다. 이제 생후 6개월인 둘째 아이도 아기띠로 매고 매일같이 등원을 같이해야 하는 처지였다. 두 아이와 함께하기에는 ‘가까운 게 최고’라는 생각에 한국에서부터 내심 점찍어둔 곳이기도 했다.



시내 한복판 아르바트 거리 인근에 위치한 그 유아원은 규모가 몹시 컸다. 체육관으로 사용되는 강당까지 따로 갖춘 곳이었다. 물론 그 안에 야외 놀이터도 있었지만 커다란 강당 안에도 정글짐과 놀이 교구들이 가득해서 어른인 내가 봐도 탄성을 자아냈다. 처음 안내를 맡아주신 선생님 설명으로는 근처에 거주하는 각국 대기업 주재원이나 외교관 자녀들이 많이 다닌다고 했다. 규모만 보면 웬만한 사립 초등학교 수준이었고 오며 가며 각 방마다 활기로 가득 찬 아이들이 꽤 보이는 걸로 봐서는 인기 있는 교육 기관임은 분명했다.



매월 수업료가 웬만한 한국 대학 등록금도 울고 갈 정도라는 측면에서 마음이 쓰렸지만, ‘접근성’이라는 강력한 장점 앞에 마음이 조금 흔들리기도 했다. 제일 중요한 건 아니지만 절대 간과할 수 없는 게 거리와 비용 문제이니 말이다. 단정한 다갈색 단발머리가 인상적인 원장 선생님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는 우리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우아한 억양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원장 선생님은 상담 베테랑답게 자연스럽게 의자를 권했다. 내가 앉자마자 원장님은 곧 화려한 팸플릿을 여러 장을 바카라상 위에 펼쳐 보이며 열띤 설명을 시작했다.



시설적인 면은 사진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되었고 원장 선생님은 빽빽한 일과 스케줄을 열거하며 특히 3개 국어 병행 교육을 강조했다. 대부분 영어와 독일어, 네덜란드어, 불어 등이었다. 감탄보다는 ‘이 나이에 3개 국어를?’ 하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물론 언어에 재능이 많은 아이라면 모를까 모국어도 다소 느린 편인 우리 아이에게는 솔직히 크게 와닿지 않았다.



하루 차이로 둘러본 두 기관은 각기 내세우는 특성과 교육 철학이 뚜렷한 훌륭한 유치원이었다. 다만 우리의 개인사정으로 인해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분명히 있었다. 좀 더 수월한 등원을 위한 접근성이냐, 안정감을 주는 분위기냐. 둘 다 중요했으므로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하기에는 생각보다 신중하게 고민하고 상의할 부분이 많아 보였다. 집에 가서 남편과 상의한 뒤 연락드리겠다고 하니 흔쾌히 그리하라고 하신다. 우리를 마지막까지 안내해 준 선생님은 충분히 둘러본 뒤 천천히 귀가해도 괜찮다며 인사를 남기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



얼마 후 시계를 확인하고 이제는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교실 한쪽에 놓인 목재 놀잇감에 마음을 빼앗긴 아이를 어르고 달래 데리고 나가려던 찰나였다. 복도 너머 다른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들려왔다. 와글와글하던 소음을 단번에 잠재우는 싸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시선이 향했다.



한 선생님이 남자아이 앞으로 검지 손가락을 반복적으로 내밀며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우리 아이보다 조금 더 커 보이는 다섯, 여섯 살 정도의 아이였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라도 꽤 오랫동안 지적을 받고 있었다. 한두 번 경고하는 수준이 아니라 몇 분간 신랄하게 이어지는 꾸중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조차 살짝 위축될 정도였으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겁먹은 눈빛으로 눈치를 보던 그 아이는 결국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아... 이건 안 될 거 같은데.’


아이가 잘못했을 때 훈육이 필요한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말조차 통하지 않는 낯선 타국에 이제 막 도착한 어린아이만큼은, 가능한 너그러운 품 안에서 안정을 찾길 바랐다. 만약 우리 아이가 초등학생 정도만 되었어도 나의 잣대는 조금 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쯤에는 때때로 엄격하게 아이를 바로 잡아주는 훈육방식이 더 와닿았을지도. 누구에게나 상황에 맞는, 그 시기에 더 마음을 움직이는 기준이 있는 법이니까.



나중에 알게 된 한국 엄마에게 들으니 러시아 교육 현장에서는 교사들이 2인 1조로, 이른바 ‘엄부자모’처럼 엄격한 교사와 자애로운 교사가 짝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평소에는 아이를 무척 귀하게 여기지만, 훈육이 필요할 때는 단호하게 대하는 문화라는 것이다. 한 장면만 보았으니 전후 상황은 확실치 않지만 그날의 선생님의 꾸지람도 아이를 위한 가르침일 수도 있었다.



그날 밤 남편과 나는 짧은 시간이나마 직접 보고 느낀 각 기관의 분위기와 아이의 반응을 종합해 첫 번째 방문지였던 ‘루치크 유치원’을 선택했다. 솔직히 나름대로는 고민이 많았는데, 미리 한 번씩 다녀와 본 남편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지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는 곳이 좋겠다는 내 의견에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비록 거리는 멀고 닳고 닳아 반질반질한 계단 오르내리기가 다소 부담스러워도,

아이의 손바닥에 장난감을 쥐여주며 눈을 맞추던 그 따스한 온도가 수천만 원짜리 커리큘럼보다

훨씬 깊게 마음에 남았다.


그렇게 나의 모스크바 육아 생존기는 이름처럼 한 줄기 빛과도 같았던 ‘루치크 유치원’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제 다시 등원시작이다.

아들! 새로운 세계에서 본격적으로 잘 지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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