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쭈~욱!
부드러운 아침 햇살이 너울거리는 레이스 커튼 너머로 살랑살랑 빛을 드리웠다.
어느 CF의 한 장면처럼 모닝커피 향이 퍼지며 여유로운 풍경이 이어질 듯하지만…
현실에 있는 나는 날파리라도 쫓듯 앓는 소리를 내지르며 얼굴 앞으로 손을 휘저었다. 어떻게든 눈부심을 차단하려는 일종의 몸부림이었다.
벌써 아침이라니. 아직은 이럴 수 없어!
아니야, 이건 꿈이야...
설상가상 목이 마르고 입안은 일주일 넘게 비 구경도 못한 논두렁처럼 바짝 말라 있었다. 하지만 몸을 일으키느니 어떡하든 참는 쪽을 택하는 게 나았다.
'아직 새벽일 거야. 그래, 난 아직 자는 중이야. 눈 뜨면 안 돼.'
지금은 잠이 절실했다. 근래 일주일 동안 비자 발급 날부터 여러 사고 같은 상황들이 연속적으로 터졌다. 짐을 싸고, 서류를 발급받고, 생필품을 사러 다니느라 쉴 틈이 없었다. 몸이 지친 데다 당면 과제들을 해결해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제대로 숙면해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하긴, 아이들을 출산한 이후 '숙면'이라는 단어와는 늘 내외하며 지내는 중이다. 언젠가 다시 친해지길 바라지만.
어제 눅눅해서 뒤척이게 하던 침대보가 그새 다 말랐는지 고슬고슬하기 그지없었다. 내 몸을 자석처럼 끌어당기며 포근하게 감싸왔다. 이미 한낮의 빛을 인식한 이성은 일어나라고 말을 걸지만 여기서 굴할 수 없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눈이 스르르 다시 감기려는 찰나.
“엄마, 일어나!!!”
갑자기 허공을 가르는 큰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쩌렁쩌렁 울려댄다. 엎드린 자세로 베갯잇에 고개를 더 깊숙이 파묻으며 아이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보았다. 하지만 우리 아들도 금세 포기할 녀석이 아니었다.
이내 어디서든 엄마를 단번에 일으켜 세울 비장의 세 단어를 외친다.
"엄마!!! 나!! 배고파!!!!"
'하아, 부지런한 녀석 같으니! 더 자지 않고….
어린이집 갈 때는 그렇게 눈 뜨는 걸 힘들어하더니!' 소심하게 속으로만 구시렁거려 보았다. 배고프다는 어린 자식 앞에서 최소한의 양심이 발동하는지 더는 태평할 수가 없었다.
“으응, 일어났어? 아직 더 자도 돼.”
눈도 뜨지 않고 심드렁하게 대꾸해 보지만, 아이는 이미 기운이 넘쳐 보인다.
“엄마 빨리! 일어나! 빨리!”
아이는 주변을 맴돌며 누워 있는 엄마를 재촉한다.
'빨리'가 이렇게 거슬리는 단어였던가. 어린이집 등원시킬 때 제일 많이 쓰던 말인데....
오늘도 조용히 혼자 반성했다.
“알았어, 알았어. 엄마 일어났어. 2분만 시간 줘.”
아들의 배꼽시계에는 시차도 없는 모양이다.
너의 알람은 오늘도 어쩜 이리 정확한 거니. 실은 나도 좀 억울했다. 전날 밤 낯선 천장을 마주 보다 스르르 눈을 감은 지 몇 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아침이라니. 누가 밤사이 시간을 통째로 잘라갔단 말인가. 현실을 부정하고만 싶었다. 나만의 굴속에서 쿨쿨 동면이라도 들면 좋으련만, 혼자 온 여행도 아니고 애를 둘이나 데려왔으니 별수 없었다.
옆에 있는 아기 침대에서도 옹알옹알 뒤척이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둘째도 일어났나 보았다. 둘째 아이는 어제 생애 첫 장거리 여행을 무사히 마친 후, 자기 전 타준 분유 한 병을 단숨에 비우고 바로 기절했었다. 아기 침대로 다가가 확인해 보니 이미 곧 기저귀가 터져 나갈 듯 부풀어 있었다. 침대 시트까지 젖지 않은 걸 감사해야 할 지경이었다.
작은 아이도 피곤한지 보채지 않고 눈만 말똥말똥하게 뜬 채 순하게 엄마를 기다린다. 서둘러 기저귀를 갈아주니 편안한지 까르르 웃으며 기지개를 켜느라 몸을 여기저기로 실룩댔다.
“이제 맘마 줄게.”
아이들을 챙기느라 정신이 팔려 있다가 뒤늦게 고요한 집 안 공기를 감지했다. 인기척이 없는 걸 보니 이모 내외분은 벌써 주변을 둘러보러 외출하셨나 보았다. 피곤해서 늦잠이라도 주무실 줄 알았건만,
역시 한국 관광객의 자세는 남달랐다.
시원한 창가 쪽에 둔 생수병을 찾아 물을 끓이고 새 분유 통을 뜯었다. 누워 있을 때는 밥이고 뭐고 아무 생각 없었는데, 둘째의 달짝지근한 분유 향이 코끝을 스치자 갑자기 참을 수 없는 허기가 몰려왔다. 남편은 먼저 출근한 모양이었다. '나간다고 말이라도 좀 해주지!' 싶다가도, 내가 세상모르고 기절해 있었으니 말 붙이기도 미안했겠지 싶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작은 생수병 몇 개와 우유 한 팩만이 휑한 내부를 지키고 있었다. 그마저도 없었으면 작동 안 되는 냉장고인 줄 알았을 거다. 일단 급한 대로 내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첫째에게 아기 분유를 한 숟가락 듬뿍 떠서 입에 넣어주었다. 평소라면 어림없었겠지만 지금은 비상상황이다. 아이는 더 달라며 입을 다셨지만 계속 줄 수는 없었다. 이건 식사가 아니니까.
둘째를 먼저 수유하고, 여전히 배고프다고 시위 중인 큰아이에게 요깃거리 줄게 없을까.... 고민하다 다시 가방을 뒤져 기내에서 받았던 젤리와 과자를 건넸다. 식사 전에 간식이라니.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별수 없었다. 당이 충전되자 아이의 기분은 금세 좋아졌다. 지속 시간이 짧다는 게 아쉬울 뿐. 헤헤거리며 과자를 먹던 아이는 잠시 후 다시 배고프다며 성화였다.
비장하게 수유하며 한 손엔 젖병, 다른 한 손엔 휴대폰을 받쳐 들었다. 구글 지도를 켜고 근처 베이커리나 식료품점을 검색했다. 잠이 덜 깨 그런지 배가 고파 그런지 화면을 터치하는 손가락마저 덜덜 떨렸다. 멀지 않은 위치에 작은 마트가 하나 있는 것 같은데, 현 위치에서 동서남북 가늠조차 안 되었다. 도보로 다녀와도 될 거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여기 주소도 모르는데 괜히 나갔다가 국제미아가 되는 건 아닐까.' 길에서 아이와 정처 없이 헤매는 상상만 해도 왠지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나가긴커녕 애들 두 명의 옷을 갈아입힐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애들만 괜찮다면 머릿속 스위치를 끄고 그냥 시체처럼 늘어져 자고만 싶었다.
그때, 문 쪽에서 딸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누가 왔나 싶어 서둘러 현관으로 나가보니 남편이 신발을 벗고 있었다. 순간 내 눈에 확대경이라도 장착한 것처럼, 그의 품에 들린 다갈색 종이봉투가 유독 크게 들어왔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본 빵 봉지... 아니 아니, 얼굴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사람 마음이 참 호떡 뒤집듯 쉽게 뒤집혔다.
좀 전까지만 해도 청소도 안 된 방에 우리를 재웠다며 내심 투덜거린 것도 잊어버렸다. '아빠의 존재론'에 조용히 회의를 품었었는데. 어느새 내 입꼬리는 한도를 모르고 양옆으로 한없이 치솟아 있었다.
10년 넘은 우리 부부의 관성이 이토록 빛을 발할 줄이야!
역시 남편은 나를 잘 알았다. 배가 고프면 극도로 예민해지는 나를 걱정해서인지, 아니면 아이들에게 불똥이 튈까 우려해서인지는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가 가정의 평화를 위해 점심시간을 쪼개 달려왔다는 사실이었다. 적재적소에 '식량'이라는 이름의 안정제를 투여하기 위해 위문 방문을 온 셈이었다. 남편은 인근에서 유명한 베이커리라 맛이 괜찮을 거라며 봉투를 내밀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먼저 하려 했는데, 입의 움직임보다 손이 더 빨랐다. 봉지를 낚아채듯 끌어안으며 어정쩡하게 고맙다고 얼버무렸다. 남편은 어이가 없는지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하하' 소리 내어 웃어 버렸다.
그래, 재밌으라고 한 거야. 맹세코 남편보다 빵이 더 반가웠던 건 아니라고 변명해 보지만,
에잇, 이미 늦었다...
남편은 회사 동료들과 간단하게 쌀국수를 먹었다며 우리에게 샌드위치와 크루아상, 데니쉬를 접시에 담아 내쪽으로 내밀었다. 이모 내외분과는 이미 연락이 닿아 근처를 관광 중이시란다. 챙겨드리지 못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큰아이는 말없이 옆에 앉아 진공청소기처럼 빵을 와구와구 베어 물었다. 애가 저렇게 배가 고팠나 싶어 미안해졌다.
나도 입을 크게 벌리고 샌드위치에 집중했다. 토마토가 들어있어서 그런지 아들은 단호하게 안 먹겠단다. 이렇게 고마울 때가.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정말 맛있었다.
'PAUL 베이커리'
포장지에 적힌 이름을 머릿속에 저장했다. 이곳은 이후 모스크바 생활에서 우리의 최애 단골 빵집이 되었다.
종류에 따라 싱싱한 야채와 햄, 치즈 등을 아낌없이 사용한 성인 여자 팔뚝만 한 샌드위치가 당시 환율로 4,000원 대였으니, 맛과 가성비 모두 훌륭했다. 나중에야 이곳이 유럽에서 꽤 유명한 체인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100년 넘게 자리를 지켰다면 맛은 이미 보증된 셈이었다. 남편은 며칠 굶은 사람처럼 빵을 흡입하는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사무실 들어갈 시간이 되었다며 다시 일어섰다.
배웅하러 나간 현관에서 남편은 열쇠 한 벌을 건넸다. 밖에 날씨가 좋으니 심심하면 애들 데리고 지리라도 익힐 겸 산바카라을 다녀오라는 말과 함께. 당시 우리 숙소는 열쇠를 사용했는데, 한국처럼 한 번에 돌리는 게 아니라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두 번 돌려 '딱' 소리가 나야 잠기는 복잡한 구조였다. 게다가 안에서 잠그면 밖에서 열 수 없다는 주의사항까지 들으니 기계치인 나는 손바닥 위 열쇠를 내려다보며 난감해졌다.
'여보, 나 안 심심해. 그냥 누워있고 싶을 뿐이야.'
속마음을 삼키며 일단 그를 보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하고 맑았다. 그냥 여행으로 왔다면 당장 카메라를 들고 뛰쳐나갔겠지만, 평소의 나답지 않게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다.
정말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둘째는 다시 우유 한 병을 비우고 거하게 트림을 하더니 꿈나라로 떠났다. 첫째는 뽀로로를 찾으며 리모컨을 내민다. 러시아 TV를 이리저리 돌려봐도 뉴스나 다큐뿐이었다.
"여기 너무 멀어서 뽀로로는 못 왔대. 비행기를 못 탔다나 봐."
순간 아이는 흠칫 몸을 굳히더니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소파 위를 구르며 오열했다.
"으아앙~ 뽀로로 가지 마!!!"
하아..... 부모가 돌아가셨다고 해도 저렇게 서럽지는 않을 텐데, 온 얼굴이 순식간에 눈물콧물 범벅이었다.
측은하면서도 괘씸했다. 달래주려 머뭇거리며 다가갔지만 엄마가 원망스러운지 야무지게 내 팔을 쳐냈다.
어쩔 수 없지.
난 내 할 일을 하러 간다.
휴식이 물 건너갔다면 뭐부터 해야 할까.
따지고 보면 할 일이 너무 많아 고민이었다. 어제 본 아이의 꼬질꼬질한 발바닥이 떠올라 바닥 청소부터 시작했다. 창문을 열고 물걸레를 비장하게 집어 들었다. 닦아도 닦아도 먼지가 어디선가 자꾸만 "까꿍" 하며 나타나지만, 맘 놓고 맨발로 다닐 날을 꿈꾸며 걸레질에 집중했다.
"아이고, 아이고야."
굽히고 펼 때마다 곡소리가 절로 났다. 한참 바닥을 닦고 나니 아이가 다시 간식을 찾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냉장고를 채워야겠다. 필요한 리스트를 머릿속으로 정리해 보았다. 시리얼이랑 유제품, 달걀이라도 사 와야겠다. 지금 텅 빈 냉장고 상태는 가정집이라기엔 조금 심했다.
다음은 빨래였다. 어제 대충 벗어 한쪽으로 벗어 뭉쳐놓은, 4인 가족 옷가지들이 수북했다. 어제 남편이 뭐라고 설명은 해주었는데 문장이 한쪽귀로 들어와 한쪽귀로 나가버렸는지 당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이얼을 조작하려고 보니 잉? 영어도 아니고 알파벳을 닮은 모르는 글자들이 잔뜩 쓰여 있었다. 나중에야 러시아에서는 독일제 생활가전이 많이 쓰인다라는 걸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슨 글자인지도 몰라서 번역기도 돌리지 못했다.
외계어와 다름없는 외국어로 가득한 버튼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 잘 모를 땐 일단 기본 코스를 살포시 눌러보았다. 잠시 후 윙~ 소리와 함께 힘차게 문 뒤로 빨래가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아갔다.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났다. 문득 느껴지는 이 익숙한 기시감은 대체 무어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낯선 시공간에 떨어졌는데, 나의 일상은 놀랍도록 변화가 없었다. 아침 조식을 기대하지도, 관광 스폿을 찾지도 않았다. 젊은 날 꿈꾸던 이국적인 낭만은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그저 지금은 아이들 굶기지 않고 하루를 잘 보내는 게 첫 임무가 되었다.
역시.... 국경을 넘어 시공간이 달라져도, 육아는 계속된다. 쭈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