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계발에 중독된 1인 가구

‘미래의 나를 바카라임질 사람은 결국 나밖에 없는데?’

by한유화

텅 빈 주말 일정표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기보다 오히려 초조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밀린 외국어 강의를 듣고, 주식 관련 유튜브를 틀고, 운동 계획을 세운다. 만약 당신의 고요한 시간이 ‘평온’이 아닌 ‘불안’으로 다가온다면, 당신 또한 1인 가구 특유의 ‘생존형 자기 계발 중독’을 앓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알고리즘은 ‘퇴근 후 3시간으로 인생 바꾸기’, ‘00대에 반드시 해야 할 것들’ 같은 콘텐츠를 밀어 넣는다. 누군가는 새벽 5시에 일어나고, 누군가는 월급 외 수익을 만들며, 또 다른 누군가는 운동과 공부와 브랜딩까지 완벽하게 해낸다. 누워서 그걸 보고 있는 자신만 뒤처진 사람처럼 느껴진다. ‘미래의 나를 바카라임질 사람은 결국 나밖에 없는데?’라는 생각이 더해지면 1인 가구는 더욱 조급해진다.






‘갓생’ 뒤에 숨은 1인 가구의 불안


1인 가구가 누리는 장점 중 하나가 ‘내 맘대로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자유를 얻은 우리는 스스로를 24시간 감시하는 가장 엄격한 감독관이 되기도 한다. 나를 돌보기 위해 확보한 시간이 나를 ‘개조’ 하기 위한 연마의 시간으로 전락하는 서글픈 풍경이다.


그림을 그려도 인스타에 올릴 '완성작'이 나와야 하고, 영화를 봐도 블로그에 쓸 '리뷰'가 남아야 하며, 운동을 해도 '바디프로필'이라는 증빙 서류가 있어야 만족한다면, 나도 혹시 ‘자기 계발 중독’이 아닌지 의심해 보자. 기록과 창작물이 남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재미 그 자체보다 활용 가능성을 먼저 따지게 되면서, 무형의 즐거움을 유형의 가치로 치환하려는 '취미의 노동화'가 이루어진다는 점을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취미마저 포트폴리오로 만들려는 강박이 생겨나면 휴식의 시간은 사실상 ‘잔업 시간’과 다름없다. '나'라는 자원을 소모품으로 대하는 태도가 지속되면, 자칫 스스로를 쉴 새 없이 착취하는 1인 기업의 악덕 사장이 될지도 모른다. 자기 계발이 나를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칫 시장에서 잘 팔리는 상품이 되기 위해 나를 '가공'하는 과정으로 변질되는 것이다.


자기 계발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그를 통한 자기 확장과 성장보다도 오히려 ‘자기 부족감’과 ‘자기혐오’를 키우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배우는 것이 많아질수록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지?’, ‘왜 저 사람처럼 꾸준하지 못하지?’라는 비교 대상이 무한히 늘어나기 때문이다. 더 나아지기 위해 시작한 일들이, 현재의 자신을 더 초라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문제는 ‘자기 계발’이 아니라 ‘자기 난개발’


성취를 향한 열망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몰려오는 공포를 피하기 위해 계속 움직이는 상태인 ‘불안 회피형 자기 계발’이 앞서는 것이 문제다. 이런 자기 계발에 중독되는 1인 가구는 쉬어도 죄바카라감을 느끼고, 생산성 없는 시간은 1분 1초도 견디기 힘들어한다. 이때의 자기 계발은 ‘자기 난개발’이라 할 수 있다.


도시 난개발이 방향성 없이 이곳저곳 건물을 올리듯, 우리의 삶도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지식을 증축하고 기술을 덧붙인다. 겉으로는 치열하게 ‘갓생’을 사는 열정 가득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내면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부실 공사 현장처럼 초조함으로 가득 차 있다.


가족이나 공동체 안에서는 굳이 성과를 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혼자 사는 삶이 길어지면, 종종 성취와 생산성이 자신의 존재감을 대신하게 되기도 한다. 자격증, 기록, 콘텐츠, 숫자와 같은 결과물이 있어야만 스스로 가치 있는 인간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성과가 없고, 쓸모가 없을 때의 나. 그러한 나를 애정하고 인정할 수 있는가. 성과 없는 취미, 돈 안 되는 활동, 기록되지 않는 시간을 회복해야 비로소 인간은 소모되지 않는다. 진짜 필요한 건 더 많은 개발이 아니라, 불안을 견디며 멈출 수 있는 힘, “덜 하는 용기”일 수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도태되는 중’이 아닌, ‘회복하는 중’이라는 것이라는 관점과 감각을 되찾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많은 1인 가구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미완의 프로젝트’처럼 다루고 있다. 나를 상품으로 대하지 않고, 생명 그 자체로 대하는 것. 그것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의 출발이다. 아무런 산출물이 없어도, 누구에게 증명할 필요가 없어도 우리는 존재 그 자체로 충분히 존엄하다. 이것은 넓게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인간 그 자체로서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의 시작이기도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