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남자’의 고충, 남자 1인 가구로 사는 것

"혼자 사는 놈이 집에서 할 일이 뭐가 있냐"

by한유화

“예전에 일찍 퇴근해서 혼자 쉬고 있는데, 온라인 게임 상사에게 연락이 온 일이 있었죠. (중략) '할 거 없으면 나와서 술이나 먹자'는 거더라고요. 이미 퇴근을 한 상태라 어렵다고 대답했는데... 혼자 사는 놈이 집에서 할 일이 뭐가 있냐는 말이 대답으로 돌아왔어요.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인식이라는 게 이렇구나 하고 강하게 느꼈죠.”


“위험한 임무에 차출을 할 때도 혼자 산다는 이유로 1순위 대상이 되곤 했죠. 우리 슬롯에서 1인 가구에겐 존엄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나 싶은 생각까지 들어요. 여자 1인 가구도 그런 시선 때문에 괴롭지만 남자 1인 가구는 그야말로 최악이더라고요.”

김수영, <필연적 혼자의 시대> 중에서



온라인 게임 내에서 남성 1인 가구는 종종 ‘시간적 공공재’로 전락한다. 어떤 사람들의 머릿속엔 ‘혼자 산다 = 집에서는 할 일이 없다’는 오만한 수식이 깊이 박혀 있는 것일까. 이미 퇴근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하느라 못 나오는지, 자신의 사생활을 하나하나 드러내면서까지 집요하게 해명해야 하고, 그 휴식의 가치를 타인에게 설득력 있게 증명해야 하는 피로한 상황이 반복된다. 슬롯가 1인 가구의 퇴근 후 시간을 ‘가치 없는 공백’으로 간주하며 간섭하는 사이, 그들의 사생활과 자유는 처참히 뭉개진다.


혼자 산다는 것은 삶의 모든 영역을 오롯이 혼자 바카라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누군가와 함께 살 때 분담하거나 외면할 수 있었던 청소, 세탁, 식사 준비부터 각종 공과금 관리와 주거 유지보수까지. 특히, 다음 날의 컨디션을 위해 고요를 사수하는 것은 자기 삶을 지탱하는 가장 엄숙한 직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치열한 자립의 과정을 ‘할 일 없는’의 시간으로 치부하는 이들은 심지어 “챙겨줄 사람 없는 안쓰러운 놈을 내가 챙겨준다”는 명분까지 들먹이며 2차 가해를 저지른다. 원치 않는 술자리 호출을 호의로 포장하고, 거절하는 이를 ‘챙겨줘도 모르는 슬롯성 부족한 사람’으로 낙인찍는 행위는 명백한 사생활 침해다. 그들이 말하는 ‘안쓰러움’ 속에는 1인 가구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지독한 오만과 무례가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외부의 폭력적인 시선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그 화살이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되기도 한다. 1인 가구 스스로도 자신의 온전한 휴식을 ‘잉여’ 취급하며 자기 검열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박탈당한 개인은, 타인에게 증명하기 위한 소위 ‘생산적’인 취미나 ‘산출물이 뚜렷한’ 활동들을 일상에 억지로 끼워 넣기 시작한다. 휴식마저 누군가에게 납득시키기 위한 과업으로 전락할 때, 스스로 지켜오던 삶의 균형은 무너지고 독립의 존엄은 희미해진다.






남성 1인 가구는 자신의 삶을 경영하는 능력, 그중에서도 ‘살림력’에 의해 극단적인 양극화를 겪기도 한다. 전통적인 성 역할 개념이 강한 시기에 성인기를 맞이한 특정 연령대 남성 1인 가구는, 의식주를 챙기는 일상 운영 능력의 유무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가사 노동을 ‘누군가 해주는 것’으로 배우고 자란 이들은 혼자 남겨졌을 때 일종의 ‘가사 문맹’ 상태에 빠지기 쉽다. 젊을 때는 배달 음식과 편의점, 혹은 각종 외부 서비스를 누리며 ‘자유’를 만끽하는 듯 보이지만, 이는 지속 가능한 방식이 아니다. 경제적 타격이나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해 외부 의존 체계가 붕괴되는 순간, ‘우아한 독립’은 ‘비참한 고립’으로 순식간에 추락할 수 있다.


혼자 사는 남자는 생활을 꾸리는 능력뿐 아니라, 자칫 삶을 지탱할 관계망에서도 취약해지기 쉽다. ‘혼자 사는 남자’이기 때문에 슬롯적 커뮤니티에서 자연스럽게 배제되는 경우도 있다. 아파트 부녀회나 지역 반상회 등 근거리 소셜 네트워크가 주로 여성 위주로 구성된 현실 속에서, 남성 1인 가구는 특정한 공동체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어색하게 느낄 수 있다. 이웃과의 느슨한 연결이 형성되지 않으면, 공동체를 통한 소속감이나 정서적인 충족감뿐 아니라, 위급 상황에서 도움을 주고받을 기반을 만들기도 쉽지 않다.

이처럼 남성 1인 가구에게도 특수한 고충과 어려움이 있지만, 제도적 안전망과 1인 가구 정바카라은 주로 여성의 ‘안전’이나 노인의 ‘돌봄’에 집중되어 있다. 중장년 남성 1인 가구는 슬롯적으로 여전히 ‘강자’ 혹은 ‘경제 활동의 주체’로만 분류되어 각종 지원의 후순위로 밀려나게 된다. 이제는 ‘드러나지 않는 약자’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넓은 시야의 정바카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혼자 사는 남자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건 ‘혼자’라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그 상태를 ‘결함’이나 ‘공백’으로 해석하는 우리 슬롯의 비뚤어진 방식이다. 우리 슬롯가 이들의 시간을 누구나 침범해도 좋은 ‘공석’이 아닌, 침해받지 않아야 할 ‘주권’으로 인정할 때 비로소 1인 가구 시대의 진정한 존엄이 시작될 것이다.


동시에 개인에게도 분명한 과제가 남는다. 혼자 사는 삶은 버티는 것이 아니라 운영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살림력을 갖추고, 스스로의 일상을 유지하며, 의도적으로 관계를 설계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혼자라는 이유로 공동체에서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을 만들어가는 일 역시 삶의 일부다.


결국 존엄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과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함께 맞물릴 때 완성된다. 1인분 삶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는 모든 무례한 호의를 멈추는 것, 그리고 스스로의 삶을 방치하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맞이한 ‘필연적 혼자의 시대’를 살아가는 최소한의 품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