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면과 돼지국밥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들

by아인장

'부산 가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은 뭘까요?' 하고 물으면 밀면과 돼지국밥이라고 대답하진 않겠지만, 나는 그것들이 먹고 싶었다.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서 맛있게 두 가지 음식을 먹어보고 싶었다. 부산에서 만난 택시 기사님들은 밀면이랑 돼지국밥 먹으러 왔다고 하니까 그걸 먹으러 왔냐며 허허 웃으셨지만 저는 그게 그렇게 궁금했답니다. 두 번, 세 번 먹을지는 몰라도 한 번은 꼭 먹어봄직한 경험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에.


밀면_흰배경.png〈밀면〉 한국, 부산

밀면에 대한 나의 예상은 메밀에 가까웠다. 먹어보고 싶긴 했지만 무궁한 호기심을 동반한 철저한 사전 조사까지 필요한 정도는 아니었으므로 송도의 어느 식당에서 주문한 것이 밀면과의 진짜 첫 만남이었다. 내가 상상했던 밀면은 딱 메밀 국수 같은 면발 위에 빨간 다대기와 여러 고명이 있고, 조금 갈색빛을 띠는 육수가 낮게 깔린 것이었다. 아무 정보 없이 순수 상상만으로 완성한 밀면에 대한 개인적인 이미지는 실제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첫 비주얼은 그냥 냉면이었다. 평소 차가운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냉면을 제 손으로 주문해 먹는 일이 결코 없기에 꽤나 신기한 경험이었다.


"오, 이거 냉면이랑 잔치국수 섞인 것 같다."


그릇은 냉면 그릇이오, 면발은 노란 잔치국수 색깔이라. 한식인데 퓨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육수 위에 살얼음이 동동 떠 있고, 창백한 분홍빛의 고기 두 점이 얌전히 놓인 밀면 세 그릇. 주문할 때부터 물밀면과 비빔밀면 중에 밀면의 기본은 무엇이냐고 사장님께 물었을 때, 물이 기본이라 하셔서 나는 물밀면을 잘 비벼 먼저 한 입 먹었다. 냉면 맛이겠지, 생각하면서. 그리고 실제 밀면 맛은 예상과 아주 달랐다.


"면이 잘 끊기네. 목에 안 걸려서 좋다. 되게 신기한 맛인걸?"

"그러게. 얇은 냉우동 같기도 하고."


차가운 온도도 싫고, 안 끊겨서 목구멍과 식도를 잇는 듯한 탄력적인 면발도 불호라 냉면을 잘 먹지 않는 나인데 밀면은 비록 차갑지만 쉽게 툭툭 끊어지는 면발이 마음에 들었다. 먹기도 쉽고, 차가운 국물 속에 있는 면발이 얇고 부드러워 좋았다. 메밀을 생각하고 먹은 밀면이 이토록 다르다니 역시 상상과 현실은 예상치 못한 간극이 있다. 그래서 재미있고, 그래서 언제나 새로운 도전은 해봄직 하다.


돼지국밥_흰배경.png〈돼지국밥〉 한국, 부산

국밥을 먹자는 말에 '국밥은 좀 그런데' 하고 답할 한국인이 몇이나 있을까. 한여름 뙤약볕 아래만 아니라면 밥심의 민족은 국밥 어떠냐는 말에 선뜻 별로라는 말을 꺼내긴 어려울 테다. 부산의 돼지국밥은 그 이름 자체로 너무 유명해서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에서 먹는 것과 다른 점이 무얼까 궁금하기도 했고.


국밥집 역시 꼭 가고 싶었던 곳은 없었으므로 몇 개 찍어뒀던 곳 중 다음 일정과 가까운 집으로 골라 갔다. 웨이팅이 길다는 말에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앱으로 줄 서기를 시작했고, 그것은 참으로 완벽한 선택이었다. 도착해 보니 뜨거운 햇빛 아래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조금 있었고 만약 온라인으로 줄 서기를 미리 하지 않았다면 아마 포기하고 다른 집을 고르는 게 올바른 선택이 되었을 거다.


돼지국밥집이라고 한 종류의 국밥만 있지 않았다. 그래서 무슨 국밥을 먹어야 할까,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질 수 있었다. 대표 메뉴인 항정국밥을 먹느냐, 아니면 고기랑 순대가 들어간 모둠국밥을 먹느냐. 두 개 다 시켜도 충분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건 좀 오버겠지 생각하며 한참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리고 결국 서울에서 못 본 항정국밥을 먹기로 했다. 다른 고기랑 순대는 엄마 것을 뺏어먹기로 약속하면서.


뽀얀 국물 속에 얇은 항정살만 둥둥 떠다니는 모습은 정말로 처음 보았다. 국물과 파, 항정살만으로 승부하는 당찬 기세가 흥미로웠다. 항정살은 기름이 많은 부위라 국물 위에 기름이 많이 떠다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고 파란 부추 가득 넣어 휘휘 저으니 제법 먹음직스러운 국밥이 완성되었다.


무더운 날씨 속에 지친 속을 든든히 만들기 위해서라고 하기에는 그냥 정신없이 코 박고 국밥을 퍼먹었다. 솔직하게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설렁탕보다 덜 진하고 잡내도 없는 국물이 계속 들어갔다. 보들보들한 항정살은 일행들에게 한 점씩 나눠주고 고기도 얻어먹었다. 모두 부드러운 항정살이 맛있다고 했다. 국밥의 마무리는 역시 밥 아닐까? 하얀 쌀밥까지 야무지게 말아 검은 뚝배기 바닥을 보일 때까지 싹싹 퍼먹고 나서야 이제 나도 부산 돼지국밥을 먹었다는 뿌듯함과 함께 식도락 경험치가 한 단계 더 쌓인 기분이었다.




애초에 단순한 계획으로 시작한 여행이었으므로 꼭 가야지 마음먹은 밀면집과 돼지국밥집은 없었다. 그때그때 상황과 다수결에 따라 식당을 골랐을 뿐. 우리가 간 집이 부산 최고의 맛집이 아니어도 괜찮고, 최악의 맛집은 아니라는 점에서 족하다. 이런 맛이구나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생애 첫 부산 밀면과 돼지국밥은 흥미로운 기억으로 남았다. 비록 만나는 택시 기사님마다 '부산에 왔으면 꼼장어를 무야지' 말씀하셨지만 진짜 부산이 처음인 서울인은 밀면과 돼지국밥이 너무 궁금했던 탓이다.


어느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을 딱 하나만 꼽을 순 없겠지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유명한 음식은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어서 이번엔 부산의 두 가지 핫한 음식들을 먹어보았다. 기대한 것과 다르기도, 경험한 것과 비슷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모두 나의 선택으로 골랐고 느껴보았음에 만족한다. 이재모 피자와 밀면, 돼지국밥까지 — 부산에서 먹어야 할 대표 음식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맛보았으니 행복하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