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 앞 해변으로 나가 슬리퍼를 벗었다.
발바닥에 모래가 닿는 느낌.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본다.
모래 사장 쪽보다 바다 쪽으로 딛으니 해변이 생각보다 단단하다.
앱을 켜고 30분 달리기 시작.
5분쯤 달렸더니 숨이 차서 입이 벌어진다.
입을 벌리지 않고 숨쉴 수 있을 정도로 속도를 늦춰 본다.
최대한 느리게 오래 걸려서 뛰어야 한다.
작은 해변이라
해변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느리게 뛰어도 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동네 도서관에 바카라 빌리러 가는 김에 뛴 적이 있다.
30분 측정 앱이 절반도 되기 전에 왕복이 끝나서 뒤이어 다시 동네를 더 뛰어야 했다.
걸어서 왕복 30분 거리의 동네 도서관이니 뛰면 30분이 안 걸리는 게 당연한데,
뛰어서 간 적이 없으니 그 거리감과 시간에 대한 감각이 없었던 것이다.
걷는 것을 기본값으로 하는 감각과는 완전히 다른 거리와 시간 감각이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작은 해변이라 30분 뛰려니 7-8번 가량을 왕복해야 했다. 그 해변이 크지 않다는 건 알았지만 거리감은 없었다. 뛰면 5분 안에 양끝을 다 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달리기할 때는 거리와 시간의 감각이 걸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다.
모래와 발바닥의 감각도 맨발로 뛰니 완전히 다르다. 시멘트 바닥이나 아스팔트 바닥을 뛰는 것과 모래 위를 뛰는 것도 다르고, 신발을 신고 달리는 것과 맨발로 달리는 것도 다르다.
맨발로 걷는 것을 좋아한다.
맨발로 뛰는 것은 처음인데 금방 좋아하게 되었다.
신발 없이 맨발로, 내 피부로 직접 세상을 만나는 느낌이랄까.
그 '직접'이라는 감각이 너무 좋다.
달리기 시작한 지 1년쯤 됐는데 여전히 초보자 중 초보자다.
게댜가 거의 한 달 만에 뛰는 것이라
15분쯤 뛰고 나면 종아리에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그 통증을 안고 뛰는 것이 좋았다.
15분 만에 이런 나의 연약함과 비루한 몸뚱이를 느끼고 또 그것을 안고도 뛰는 통쾌함을 느낄 수 있는 일은 그렇게 많지가 않다.
하도 안 뛰어 15분 밖에 안 됐는데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좋은 것이다. 그런 몸의 정직함이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것이다.
"근육은 기억하고 인내한다. 어느 정도 향상도 된다. 그러나 타협은 하지 않는다. 융통성을 부리지도 않는다." (주1)
(내가 말이 많아서일 수도 있는데)
말이 많은 사람보다 몸을 쓰는 사람을 좋아한다.
몸을 쓰는 사람은 정직할 수밖에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농사 짓는 분들, 시장에서 장사하는 분들, 택배일 하시는 분들, 돌봄 노동하시는 분들,,,
그런 일을 업으로 하는 것 자체로 존경한다. 세상 무엇보다도 정직한 일들이다.
나처럼 주로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발바닥과 온몸의 장기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아무튼 내 몸의 느낌은 온몸의 세포가 맨발의 자극으로부터 깨어나는 느낌이다. 그 느낌이 너무 좋다.
내가 지금 여기에 살아 있다는 느낌 같은 것.
다 뛰고 나서 셀카를 한 장 찍었다.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 있다.
ㅋㅋㅋㅋㅋ 너무 웃긴다.
(차마 공개 온라인카지노에 남길 수는 없다 ㅎㅎㅎ 슬롯적 지위와 체면이 있지 ㅎㅎㅎ)
보통은 저녁에 뛰니까
얼굴이 빨개진 것이 언제쯤 돌아오는지 신경쓴 적이 없는데, 오늘은 아침에 뛰었더니 확실히 알게 되었다. 30분 뛰어 빨개진 얼굴은 30분 만에는 평소 혈색으로 돌아오지는 못한다. ㅎㅎㅎㅎㅎ
1시간 이상 경과되어야 평소 혈색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아무튼 "맨발 바닷가 달리기"를 했고,
이런 건 기록해 두어야 한다.
2026년 8월 13일.
주1>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문학사상, 2009.
표지 이미지> pinterest (본인 사진 아님 주의)